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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한의약한의약이 의료봉사의 중심이 되도록
‘온기를 전하는 한의사’ 송은성
쪽방의 사전적 의미는 ‘최저주거기준 미만의 주택 이외에 세면이나 취사, 화장실 등과 같은 부대시설이 없는 빈곤계층이 주거하는 공간’이다. 한 방을 여러 개로 쪼갠 1평(3.3㎡) 남짓한 방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이 쪽방촌이다. 서울 창신동 쪽방촌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진 사람들의 외로움이 베인 동네다. 게다가 건강이 온전치 못해 이중고를 겪는 이들도 많다. 이러한 의료 소외 이웃들을 위해 방문 진료를 다니며 건강 개선뿐만 아니라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있는 의료봉사 단체가 바로 ‘온기를 전하는 한의사들(이하 온전한)’이다. 온전한에서 활동하고 있는 송은성 한의사를 만났다.
손끝의 온기로 몸과 마음을 치료하는 방문 진료
유난히 추웠던 12월, 서울 창신동 쪽방촌을 찾았다. 창신동 쪽방촌은 서울 5대 쪽방촌 중 하나다. 현재는 180여 명의 주민이 거주하고 있으며 196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서울시 쪽방 건물 및 거주민 실태조사 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쪽방촌 거주자들은 가장 큰 고민거리가 건강 악화라고 했으며 그다음으로는 외로움을 꼽았다. 쪽방촌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60대 이상의 고령자라 거동이 불편해 병원을 가기가 쉽지 않다. 또한 건설 현장과 같은 고된 노동환경에서 근로하는 일용직 종사자들도 많아 근골격계의 만성질환을 지닌 주민들이 특히 많다.
2023년 1월 결성된 ‘온전한’은 의료계의 울타리에서 벗어난 이들을 위해 방문 진료로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지역 주민의 건강 개선을 목표로 공중보건의사 3명과 간호사 1명으로 시작한 모임에는 현재 한의사와 한의대생 등 약 50명이 참여하고 있다. 송 한의사는 공중보건의 시절 동료의 제안으로 방문 진료에 참여하게 되었다. 창신동 쪽방촌의 방문 진료는 2년 전 서울시립창신동쪽방상담소와 협력을 맺으며 시작되었는데 현재까지 월 1회 토요일마다 약 30여 명의 환자를 돌보고 있다.
건강을 전하는 두드림으로 선순환을 이끌다
오늘 방문 진료에 참여하는 인원은 총 다섯 명이다. 송 한의사를 포함한 한의사 두 명과 한의대생, 간호사 등 온전한 소속 네 명과 사업을 담당하는 창신동쪽방상담소의 간호사 한 명이다. 다섯 사람은 출발 전 방문 진료 대상자들의 진료 기록부와 거주지 등 환자들의 상황을 파악한다.
회의가 끝나자 다섯 사람 모두 흰 가운으로 갈아입으며 나설 채비를 마쳤다. 매서운 찬 바람이 부는 날씨인데도 흰 가운만을 걸치는 이유를 물으니 송 한의사는 멀리서라도 주민들이 의료팀을 쉽게 알아볼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송 한의사를 따라간 길 끝에는 거미줄처럼 얽힌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방문 진료의 편의를 위해 큰 도로를 중심으로 윗동네와 아랫동네로 부른다고 한다. 송 한의사와 함께 네 사람은 낡은 건물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한 층에 2평 남짓의 방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고 복도는 겨우 한 사람이 설 수 있을 만큼 비좁았다.
"안녕하세요, 어르신. 한의사입니다."
조심스레 문을 두드리며 인사를 건네자 말없이 방문이 열렸다.
"어르신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허리는 여전히 아프신가요?"
환자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자 송 한의사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고는 평소 허리 통증 치료를 받아온 환자의 진료 기록부를 본 후 능숙하게 허리에 침을 놓는다.

"한의 진료는 방문 진료에 가장 적합한 의료라고 생각합니다. 맥진이나 침술, 추나요법 등의 한의 치료 시 환자와의 신체접촉이 자연스레 이루어져 라포(rapport) 형성이 수월할 뿐만 아니라 부작용도 적고 부담감도 덜해 큰 제약 없이 많은 사람에게 시술할 수 있죠. 또, 진료 후 통증 완화나 건강 상태가 개선됨을 바로 체감할 수 있어 환자들의 만족감이 커요."
창신동쪽방상담소의 김현기 간호사도 "처음 방문 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많은 주민이 한의 진료를 받아본 경험이 없었어요. 방문 진료를 통해 한의 치료를 받고 나서 ‘효과가 좋다’라며 대부분 좋아하셨고, 입소문이 나 방문 진료를 요청하는 주민들이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더불어 주변 한의 의료기관에 꾸준히 방문하는 분들도 상당히 늘어났죠."라며 웃었다.
송 한의사는 이 같은 이야기가 들려올 때가 가장 보람차다면서 다른 한의사들과 함께 만들어 낸 값진 결실이라고 말한다.
경청으로 환자의 아픈 마음을 보듬다
윗동네에서 진료가 끝나자 아랫동네로 자리를 옮겼다. 아랫동네는 여인숙이 모여 있다. 한 여인숙 건물로 들어간 송 한의사는 한 발을 온전히 딛기도 힘들 정도로 좁은 계단을 서슴없이 올라가 환자의 방문을 두드린다.
"어서 와요. 오늘 머리가 벽돌을 올린 것처럼 무겁고 개운하지 않아요. 두통도 있고요."
이번 환자는 젊은 시절 교통사고의 후유증인 편두통으로 고생해 왔다. 송 한의사가 자리에 앉자마자 환자는 통증이 생긴 이유와 증상 등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방문할 때마다 듣는 이야기지만 송 한의사는 내색 없이 환자의 이야기를 묵묵히 듣는다. 그런 모습에 환자는 나지막이 고맙다는 인사를 전한다. 한의 치료 덕에 건강 개선에 도움이 되는 것뿐만 아니라 방문만으로도 마음에 큰 위안이 된다고.
"의료봉사는 중증 환자에게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온기를 전하는 한의사들은 주민들의 건강을 살피는 것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기본적인 의료 상담부터 치료, 정서적 케어, 생활 운동 지도 등 건강과 관련된 모든 활동이 저희의 일입니다. 특히 쪽방촌의 특성상 사회적 고립감을 느끼는 주민들이 많아요. 그래서 한의사들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만으로도 기뻐하시는데요, 방문 진료 횟수가 잦지는 않지만 방문했을 때 최대한 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으려고 합니다."
한의약이 방문 진료와 의료봉사의 중심이 되길
방문 진료가 끝나자 다섯 사람 모두 추운 날씨 탓에 코끝은 빨개졌지만, 표정만은 밝다. 혹여나 감기라도 걸리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물음에 송 한의사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겨울철에는 손이 차서 시술을 받는 환자분들이 불편할 수 있어 휴대용 손난로를 준비해야겠다며 환자를 먼저 걱정했다.
"현재 권위 있는 의료봉사단체들은 의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많은 분들이 봉사활동을 의과 의사들의 활동으로 생각하십니다. 그래서인지 의료봉사를 다니면서 ‘한의사들도 의료봉사를 하는 줄 몰랐네?’라는 말을 심심찮게 들어요.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한의약이 방문 진료에 있어 장점이 많아요. 그렇기에 한의약이 방문 진료와 의료봉사의 중심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있습니다."
송 한의사는 한의약의 진입 문턱을 낮추고, 많은 사람의 삶에 한의약이 깊숙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다. 창신동 쪽방촌의 방문 진료 외에도 살레시오 청소년 센터 봉사를 통해 청소년들의 건강을 관리하고 있으며 이와 관련된 논문도 준비 중이다.
‘온전한’은 경험과 의지를 가진 회원 수를 늘리고 경험을 많이 쌓아 국가의 지원을 받는 비영리민간단체로 거듭나는 것을 장기적인 목표로 삼고 있다. ‘온기를 전하는 한의사들’이 만들어 갈 한의약과 방문 진료의 미래가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