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진. 정환정
몸이 불편하거나 아플 때 우리는 병원에 간다. 일반적이고 일상적인 표현이지만, 이러한 말이 커다란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들도 있다. 의료 인프라가 충분치 않은 곳에서 생활하고 있어서, 병원에 가는 것마저 힘이 들 정도의 상태라, 내원을 도와줄 보호자가 부재해서 혹은 이 모든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병원이 너무나 멀게 느껴지는 이들이 있다. 거제 동방신통부부한의원의 방호열 원장은 그런 환자들을 위해 매일 같이 길을 달린다.
한 달 내내 쉬지 않고 비를 뿌리던 장마가 지나고 본격적인 무더위가 시작되던 시기, 어디로든 숨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따가운 햇살이 가득 내리쬐던 7월의 마지막 날, 거제 중심가에 위치한 동방신통부부한의원에는 휴진 안내문이 붙어 있다. 7월 30일부터 8월 3일까지 휴진이라는 안내와는 달리 안쪽에는 실내등이 켜져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환자 서너 명이 진료를 기다리고 있다. 혹시 안내문을 잘못 읽었나 싶어 다시 돌아봤지만, 지금은 분명 휴진 중인 상황.
“오늘 상처 드레싱을 해드려야 할 분이 계셔서 잠시 문을 열었는데, 어떻게 아셨는지 이렇게들 많이 오셨네요.”
잠시 진료실 바깥으로 나왔다가 마주친 방호열 원장은 “휴가 중이지만, 문이 열려 있어 들어오신 분들을 되돌려 보낼 수는 없어 계속 진료를 보고 있다”며 웃는다. 어쩌면 7월 중순 방영한 ‘인간극장 : 열혈 한의사 방호열’ 편으로 유명세를 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내원하시는 분들 중 30% 정도는 방송을 보고 찾아오시는 것 같아요. 후배의 권유로 출연하게 됐는데 덕분에 유명 인사가 됐죠.”
KBS의 장수 프로그램인 ‘인간극장’은 닷새 분량의 방송을 만들기 위해 보통 보름에서 이십 일 정도 근접 촬영을 진행한다. 그만큼 촬영 대상자 입장에서는 출연 결심을 하는 게 쉽지 않다. 대상자의 가족은 더욱 그러하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딸들이나 교편을 잡고 있는 배우자의 경우는 조금 더 예민할 수 있는 부분. 그럼에도 방호열 원장이 카메라 앞에 선 이유는 뭘까.
“방문진료와 재택의료라는 개념을 좀 더 널리 알려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2021년 9월부터 시작된 1차 의료 한의방문진료 수가 시범사업과 2022년 12월 출발한 재택의료센터 사업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낮은 상태거든요.”
‘인간극장’을 통해 전해진 방호열 원장의 모습은 일반적인 의료 서비스 종사자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한정된 공간에서 내원하는 환자를 맞이하는 게 아니라, 병원에 오가기 힘든 이들을 찾아 거제 전역을 달리고 있었다. 촬영이 끝난 후, 방호열 원장은 방송국에서도 공인할 만큼 활동량이 많은 출연자로 손꼽혔다.
환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방호열 원장은 방문진료용 가방을 챙겨 들고 급히 원장실을 나섰다. 병원 문을 나서기 전 떡 두 개를 손에 쥐었다. 점심을 챙길 틈이 없어 이동 중에 식사 대신 먹는 일종의 에너지바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저 다 똑같은 방문진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두 개의 기관이 추진하는 각기 다른 사업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습니다. 먼저 시작한 것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주관하는 한의방문진료 사업입니다. 재택의료센터 사업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시행하고 있고요.”
두 가지 사업 모두 환자가 있는 곳으로 찾아가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재택의료센터 사업의 경우 의무적으로 간호사 1인과 사회복지사 1인으로 구성된 팀이 존재해야 한다. 팀 관리는 당연히 방호열 원장의 몫이다. 인력 채용 역시 직접 진행했다. 처음 시작하는 일이다 보니 아무래도 혼선이 많았고, 그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적절한 인력을 구하는 일이 여의치 않았다. 한 달에 약 45명의 환자를 65~70회 방문진료하는 일도 힘에 부치지만, 육체적인 면보다는 심리적인 면에 있어서 부담감이 크다고 말한다.
“방문진료를 하다 보면 일반적 내원 환자의 상태와 전혀 다른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단순히 건강상의 문제뿐 아니라 주거 환경, 가족관계 등 환자에게 큰 영향을 끼치는 요소들이 상당히 열악한 경우가 많습니다. 이럴 때는 각종 기관과 연계해 통합 솔루션을 만들어야 하지만, 아직 그런 시스템은 구축되어 있지 않습니다.”
방호열 원장은 자신이 진료하고 있는 환자를 예로 들었다. 오랫동안 피부 질환으로 고생하고 있는 환자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의료 서비스보다 주거 환경 개선이었다. 이를 위해 행정기관 등의 도움을 받아 소독과 방역을 실시했고, 그 결과 오랫동안 병원을 다녀도 낫지 않던 환부가 상당히 호전됐다. 하지만 이와 같은 솔루션이 시스템으로 구동된 것은 아니었다. 방호열 원장과 팀원들이 이곳저곳 수소문해 동원한 인력으로 시행한 단발적 이벤트였을 뿐이다. 이런 현실에 답답함을 느꼈지만 그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았다. 심란한 마음을 다스리기 위해 그는 밭을 매고 음식을 하는 등 쉴 틈 없이 몸을 움직인다. 그러면 어느 틈엔가 머리가 맑고 개운해진다. 그만큼 그의 피가 뜨겁게 끓어오르고 있다는 방증일 것이다.
차에 시동을 건 지 약 한 시간 뒤 도착한 곳은 거제의 남쪽 끝에 위치한 저구항 인근. 이동하는 차 안에서 욱여넣다시피 먹은 두 조각의 떡 덕분인지 방호열 원장은 힘차게 운전석 문을 열고 거침없이 마당을 가로질렀다. “방문진료 왔습니다”라는 말에 보호자와 환자는 뙤약볕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온 방 원장을 반갑게 맞이한다.
혈압과 혈당을 측정한 후 침을 놓고 그간 불편한 곳이 없었는지 묻자 환자는 자신의 신체적 변화에 대해 차분히 설명했다.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이루어지는 진료인 만큼 환자는 훨씬 더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치료에 집중할 수 있다. 그래서일까. 방호열 원장의 손길도 한의원에서 진료를 보듯이 자연스러웠다. 덕분에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료는 순조롭게 진행됐다.
“외래에 비해 방문진료는 난이도가 높습니다. 아무래도 상태가 위중한 분들이 많으니까요. 그런 분들이 더 편하게 지내실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저와 같은 생각을 갖고 계신 분들과 함께하기 위한 방법도 모색 중이고요.”
누구보다 바쁜 점심시간을 보내고 다시 진료실로 향하는 방호열 원장. 그에게 이런 에너지를 불어넣는 원동력은 뭘까.
“거기 계시는 환자분들이죠. 만나지 않았다면 모를까 한 번 얼굴을 익힌 분들께 안 갈 수는 없잖아요. 이미 너무 깊이 발을 들여서 빼낼 수 없는 상태가 됐습니다. 하하.”
쏟아지는 한여름의 햇볕보다 더 환하게 웃는 그의 얼굴에는 밝고 건강한 기운이 가득했다. 거제 곳곳을 누비며 나누는 그의 남다른 활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