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김민진, 사진. 신성욱
대한민국의 초고령화는 교과서 속 이야기가 아닌, 우리 일상에 들이닥친 현실적인 위협이다. 유치원이었던 건물이 요양병원으로 탈바꿈하고, 결혼식장이었던 곳이 장례식장으로 바뀌는 일이 전혀 어색하지 않은 사회다. 노령인구는 매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지만, 그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케어하기 위한 사회 기반 제도와 시설은 아직 부족하다. 정부에서는 고령자가 저렴한 비용으로 의료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도록 관련 복지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 놓았지만 비용이 부담돼서, 혹은 거동이 힘들어서 병원을 방문하지 않는 이들은 이런 제도와 시스템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에 대전시에서는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취약계층에게 최소한의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통합돌봄 사업 내 한의 방문진료 사업을 활발히 시행하고 있다. 대전 원한의원의 조원 원장 역시 지난해부터 한의 방문진료 사업에 참여하며 지역사회의 의료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아침 8시 50분, 조원 원장의 첫 진료는 한의원이 아닌 근처 조그마한 아파트에서 시작된다.
앉아서 진료를 보기 위한 휴대용 의자와 왕진 가방을 들고 밝은 미소를 띤 채 대문을 두드린 그는 해맑은 인사를 건네며 진료를 시작한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아버지. 저 왔어요. 무릎은 좀 괜찮으세요? 변비는?”
가정집에 들어서자마자 두 환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반긴다. 조원 원장은 지난 일주일간의 환자 상태를 살펴보기 위해 많은 질문을 던지고, 환자들은 누워서 편안하게 답한다. 익숙한 듯 진료를 이어가던 조원 원장이 환자의 상태를 설명해 준다.
“이 집은 어머님과 아드님 두 분이 모두 대상자예요. 아드님은 폐지 줍다가 넘어지셔서 무릎과 허리가 안 좋고, 어머님은 95세가 넘어서 혈압이랑 빈혈, 당뇨, 욕창과 같은 관리가 필요해요. 치매가 조금 와서 인지능력도 떨어지고요.”
남성 환자의 경우 처음 한의 방문진료 사업을 신청했을 때는 수술 부위의 통증이 심해 한 걸음을 걷는 데도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200m 거리에 있는 병원을 두 시간에 걸쳐서 가야 할 만큼 상태가 좋지 않았는데, 꾸준한 방문진료로 지금은 날이 좋으면 산책도 가능할 만큼 회복했다. 반면 여성 환자의 경우에는 방문진료의 주목적이 완쾌가 아닌 관리다. 하루 종일 누워만 있는 경우가 많아 욕창이 생기는지 계속해서 확인해야 하고,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리는 빈혈과 변비 등을 주기적으로 관리해서 보다 편안한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준다.
방문진료를 신청하는 환자는 대부분 두 환자와 마찬가지로 거동하기 힘들 정도로 몸이 불편한 경우가 많다. 실제로 조원 원장이 방문진료하는 인원의 90% 정도가 거동이 힘든 장기요양 4등급 이상의 환자들이다. 개중에는 방금 진료한 남성 환자처럼 치료를 통해 완쾌하는 경우도 있지만, 여성 환자처럼 꾸준한 관리를 필요로 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다.
“이분들은 저희가 조금만 관리해 드리면 삶의 질이 무척 좋아집니다. 물론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해서 확인하지만, 변비약을 처방해 드리거나, 침을 놔 드리는 치료는 온전히 저희만 할 수 있잖아요. 일주일에 한 번 치료받고 약 받으시면 최소 4~5일은 편안한 상태로 지낼 수 있다며 좋아하는 분들이 많아요.”
조원 원장이 생각하는 방문진료의 첫 번째 목적은 지속적 관리다. 방문진료를 다니면서 그는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는 사실을 알았고, 작은 질병을 방치해서 상태가 악화된 안타까운 환자를 수없이 만났다.
“환자가 병원에 가지 못하면 절망감을 갖습니다. 적절한 치료를 받고 조금씩 꾸준히 관리하면 충분히 걷고 활동할 수 있는데, 치료를 받지 못하고 방치한 탓에 누워만 있는 분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방문해서 침을 놓고 재활치료를 하면 또 금방 상태가 괜찮아집니다. 그러면 삶의 질이 확 올라가게 되죠.”
조원 원장이 한의 방문진료 사업을 통해 만난 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우는 척추증으로 한쪽 발을 못 쓰는 환자였다. 발이 불편한데 오십견으로 어깨가 아파 목발도 짚지 못하는 상태라 첫 진료 당시 방 안에 누워서 조금도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방문진료를 통해 어깨와 허리, 발의 상태가 많이 호전되면서 마당으로 산책 나갈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회복해 삶의 질이 높아졌다. 조원 원장은 “어깨를 들어올리며 ‘이제 라면도 끓일 수 있다’고 웃던 환자의 해맑은 얼굴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말한다.
한의 방문진료 사업은 원내 진료와 별개로 취급되지만, 원내에서 하는 진료의 90% 이상을 방문진료에서 실시할 수 있기에 진료의 질에 큰 차이가 없다. 이처럼 직접적인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의료서비스에서 소외된 이들에게 필요한 의료 혜택을 알려주는 데도 효과적이다. 고령 환자는 장기요양 등급 판정만 제대로 받아도 누릴 수 있는 의료 혜택의 질이 달라진다. 하지만 대다수가 이런 사실을 명확히 알지 못한다. 이런 경우 방문진료하는 한의사가 환자에게 어떤 등급을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알려주기도 한다. 일례로 장기요양 2등급만 받아도 요양원에 들어갈 때 별도 서류를 작성할 필요가 없는데, 이를 미리 챙기지 못해 나중에 낭패를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런 환자들을 위해 조원 원장은 진료를 하면서 어떤 등급이 필요하고, 등급 신청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등을 알려주고, 심지어 직접 신청해 주기도 한다. 이렇게 구청 보건소나 지역 의료센터 등의 통합돌봄 시스템까지 연결만 시켜줘도 환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조원 원장의 다음 목표는 재택의료센터 개소다. 재택의료센터는 장기요양 수급자를 대상으로 재택의료를 전문적으로 서비스하는 의료센터다. 지난해부터 보건복지부가 시범사업을 실시해 현재 많은 재택의료센터가 개설되고 있다. 하지만 한의원 중 재택의료센터로 기능하는 곳은 전국에 단 3곳 뿐이다. 조원 원장은 몇 년 전부터 재택의료센터 개원을 위해 다방면으로 준비하고 있다.
“향후 지역의 개인 한의원이 재택의료, 방문진료 분야로 많이 진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고령인구는 나날이 늘어날 것입니다. 장기요양 환자도 계속해서 증가한다는 뜻이죠. 아직은 한양방 모두 본격적으로 이 분야에 진출한 이들이 많지 않습니다. 저는 지역마다 재택의료센터가 존재하고 이곳에서 지역 내 취약계층을 위한 방문진료가 이뤄지는 미래를 꿈꾸고 있습니다. 경력도 많고 실력도 좋은 지역의 한의원이 재택의료센터로 기능하게 되면 환자는 보다 질 좋은 방문 의료서비스를 더욱 자주 경험할 수 있고, 한의사들은 새로운 시장에서 주도권을 가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금의 한의 방문진료 사업에 많은 한의사가 참여해야 합니다. 환자의 접근성을 높이고, 한의약의 영역 확대를 위해서라도 우리가 제도권에 진입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현재 요양기관 포털에 등록된 조원 원장의 환자는 약 50여 명. 이 중 25명 정도가 주기적으로 한의 방문진료 사업의 혜택을 받고 있다. 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 있는 한의사의 방문진료는 자신의 건강을 체크하고, 삶의 질을 올릴 수 있는 귀중한 기회다. 지금보다 더 많은 이들에게 이러한 기회가 제공되기를 바라며, 조원 원장은 오늘도 거리를 누비며 자신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에게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