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진. 정환정
몸과 마음은 서로 떼어낼 수 없는 존재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마음이 깃들 듯, 건강한 마음이 있어야 건강한 몸이 유지된다. 우리가 병을 앓을 때 그 회복 속도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낫고자 하는 의욕’에 있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 여러 차례 증명된 바 있다. 하지만 고령자나 저소득층과 같이 의료서비스를 접하기 쉽지 않은 이들에게는 그러한 의욕을 가질 기회도 적어진다. 자신의 상태가 어떤지 전문가를 통해 확인하고 알맞은 처방을 받는 일부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한의 방문진료는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11월 중순에 접어든 어느 날, 가을비치고는 상당히 많은 양의 빗방울이 쉴 새 없이 떨어지던 광주광역시의 한 아파트 주차장에 자동차 한 대가 힘차게 달려와 멈춘다. 그곳에서 내린 남녀는 각자 어깨와 손에 가방을 하나씩 메고 쥔 채 아파트 현관으로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점심시간의 여유가 남아 있는 시간이지만, 엘리베이터에 올라 버튼을 누르는 손길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
“얼른 아버님 뵙고 얼마나 나아지셨는지 확인을 해야 하니까요. 일주일에 한 번 뵐 때마다 조금이나마 더 좋아지셨길 바라다 보니 괜히 마음이 급해지네요.”
사람 좋은 얼굴로 활짝 웃어 보이는 이동원 원장은 한의 방문진료 시범사업이 시작될 때부터 참여한 베테랑 중 한 명이다. 많을 때는 일주일에 세 명, 현재는 일주일에 한 명의 환자를 조무사와 함께 정기적으로 찾아가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진료와 치료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방문하는 시각은 점심 무렵. 환자들도 식사 이후 조금 더 편안한 마음으로 이동원 원장을 맞이할 수 있고, 이 원장 역시 오후에는 예약 환자를 받을 수 있어 서로에게 적당한 시간이다.
“어머님, 저희 왔습니다. 아버님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아버님, 수영 잘 다녀오셨어요? 자, 우선 이쪽으로 앉아보세요.”
집안의 가까운 조카처럼 들어서는 이동원 원장과 조무사 선생님을, 환자와 보호자는 무척이나 반갑게 맞이한다.
“수영도 다녀오고 원장님이 가르쳐준 운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덕분에 좀 나아지는 것 같아요.”
사고로 마비 증상이 온 환자는 한 주 동안의 경과를 설명했다. 이동원 원장은 그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부항을 뜨고 이어 침을 놓았다. 침을 놓고 숨을 돌리는 것도 잠시, 보호자에게 환자의 변화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이어갔다.
“아버님 부축하실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어머님이 힘이 좀 덜 들어가면 아버님이 좋아지시는 거죠. 맞아요. 날씨에 따라 컨디션이 변하기가 쉬워요. 그런 것도 잘 살펴보세요.”
다시 침을 뽑고 추나요법을 통해 통증 부위를 찬찬히 짚어가던 이 원장은 집 안에서 할 수 있는, 그리고 반드시 해야 하는 운동법을 상세히 알려줬다. 수영장에서 운동할 때 잊지 말아야 할 동작들도 안내했다. 환자와 보호자는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두 사람을 뒤로 하고 집을 나선 건 오후 1시가 훌쩍 지난 시간이었다.
“지금 다녀온 집은 드물게 환경이 좋은 곳이에요. 보호자도 계시고 생활환경도 좋고 무엇보다 환자 본인이 낫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거든요. 치료에 있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한의 방문진료의 특성상 대부분은 몸을 움직이기 힘든 고령자와 생활보호대상자와 같은 저소득층이 많다. 게다가 뇌졸중을 비롯한 다양한 원인으로 마비 증상을 보이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그러다 보니 처음에는 호전에 대한 의지가 그리 크지 않은 경우가 많다. 가까이에서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보니, 자신의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 거라는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하지만 한의 방문진료를 접하게 되면 조금씩 변화가 시작된다. 누군가 나를 위해 정기적으로 찾아와 건강 상태를 확인하는 한편, 더 좋아질 수 있는 전문적인 정보를 전해주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대해 나아가 삶에 대한 새로운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다.
“뇌 수술 이후 줄곧 누워 계시는 아버님 한 분은 저를 볼 때마다 먼저 반갑게 인사를 건네시며 치료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세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면 저도 ‘어서 이분이 스스로 움직이실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커집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 몸과 마음의 피곤함을 무릅쓰고 환자를 찾아 나서는 힘을 얻는다.
환자들이 가장 바라는 점은 방문진료 횟수의 증가다. 이동원 원장의 치료를 받을 때마다 호전된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은 그만큼의 지원이 이뤄지지 못 하는 상황. 특히 이동원 원장이 활동하고 있는 광주광역시의 복지시스템은 한정된 포인트를 어디에 사용할지 수혜자가 선택하도록 구성돼 있다. 그리고 한의 방문진료는 한 달 내내 다른 복지 혜택은 엄두도 내지 못할 정도로 많은 포인트를 사용해야 한다.
“현재 광주광역시 내에서 한의 방문진료 활동을 하고 계시는 원장님은 총 22명입니다. 그분들 모두 비슷한 고충을 토로하세요. 홍보가 부족해 널리 알려지지 않은 것도 안타깝지만, 더 자주 만날 수 없다는 게 한의사 입장에서는 무척 아쉬운 부분이에요. 그나마 혈압계와 혈당측정기는 사용하고 있지만, 보험약도 사용할 수 없다는 건 환자들에게 상당히 안타까운 일이죠.”
만성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가 “소화제라도 달라”고 요청할 때도 그저 죄송하다고밖에 할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여전히 한의 방문진료를 통해 환자를 만날 때면 한의사가 된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고 털어놓는다.
“처음 한의 방문진료 사업에 지원한 건 한의약이 환자들에게 좀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실제로 다양한 환경에서 환자를 만나다 보니, 그분들의 심리적 안정을 찾아드리는 데에 한의 방문진료 사업이 일정 수준 이상의 기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스스로를 더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건강에 대해 의욕을 보이는 환자가 한 명이라도 늘어난다면, 환자의 가족은 물론 공중 보건에도 큰 기여를 하는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더 많은 환자에게 더욱 질 좋은 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공부를 게을리지 않는다는 이동원 원장. 그의 발걸음은 굵은 가을비 속에서 그랬던 것처럼 계절과 날씨를 가리지 않고 광주광역시 서구의 많은 곳을 누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