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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한의약중종은 열병으로 ‘똥물’까지 마셨다
글쓴이: 한동하 / 한의사
중종은 57세가 되던 해인 음력 10월 22일경부터 아랫배에 통증이 나타나고 대소변이 시원하지 않았다. 그해 들어 벌써 여러 차례 비슷한 증상을 겪고 있었다. 그러던 중 대변이 며칠간 나오지 않더니 열까지 나기 시작했다.
의관들은 소마죽(蘇麻粥)과 피마자유 등으로 대변을 통하게 한 후 열을 잡기 위해서 생지황, 서과(西果), 죽엽, 갈근, 승마, 황연, 진사오령산, 소시호탕 등의 다양한 약재를 처방했다. 그런데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다.
「아침에는 맥이 어제보다 더 급박하고 열이 더 심했으며 말소리가 껄끄러운 듯하고 호흡이 급박했다. 즉시 청심원과 소시호탕 및 야인건수(野人乾水)를 들였다.」(중종실록 중종 39년, 11월 4일)
급기야 의관들은 야인건수(野人乾水)를 처방했다.
야인건수(野人乾水)는 어떤 처방일까? 야인건수는 <동의보감>에 죽은 사람이 관을 깨고 나올 정로도 효과적인 처방인 ‘파관탕(破棺湯)’의 일종으로 소개되어 있다. ‘상한열병으로 발광하고 가슴이 뛰며, 말이 일정하지 않고 인사불성이 된 경우를 치료한다. 말린 사람의 똥을 약성이 남게 태워 물에 담가 생긴 즙을 1~2잔 마시면 깨어난다. 이것을 민간에서는 야인건수(野人乾水)라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인건수는 바로 ‘말린 똥을 태워 갈아서 만든 탕’이다.
<의림촬요>에도 ‘고열과 번갈이 나타나며 혀 윗부분이 황흑색인 경우에는 야건수(野乾水), 월경수(月經水), 맑은 얼음을 복용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야인건수는 야건수라고도 했는데, 주로 열병에 처방되었다.
중종은 야인건수를 복용하고서 자신의 열이 약간 진정된다고 느꼈다.
「전일 열이 올랐을 때 야인건수를 써서 열을 물리쳤다. 혹시 밤중에 열이 심하면 쓰려고 하니 미리 준비해서 들여오라.」(중종실록 중종 39년, 11월 9일)
이후에도 양격산 등의 처방과 함께 야인건수를 처방했으나 심열(心熱)과 갈증은 여전했다. 안타깝게도 중종은 음력 11월 15일, 발병 25일 만에 승하하고 만다. 중종은 장폐색이나 게실염 등으로 인한 복막염을 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야인건수를 처방했으나 제대로 복용하지 못했던 왕들도 있다. 명종은 평소 심열(心熱)을 앓았는데, 명종 22년 음력 6월 27일 갑자기 인사불성이 될 만큼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의관이 야인건수를 올리려고 했으나 좌의정 이명이 더러운 약을 올릴 수 없다며 반대했다. 명종의 증상이 더욱 위독해지자 뒤늦게 야인건수를 구해왔으나 복용하지 못했다(이이의 「석담일기」 기록). 명종은 다음날 승하했다. 명종은 아마도 열병을 앓던 중 저혈당성 쇼크나 뇌간 중풍으로 사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야인건수는 인조 때도 처방된 적이 있다. 인조는 55세 때 학질(말라리아)에 걸렸다. 인조가 열이 심하게 나고 위독해지자 세자가 어의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야인건수를 올렸다(승정원일기 인조 27년, 1649년 5월 8일). 그러나 인조는 야인건수를 미처 열어보지 못하고 승하했다. 학질에 걸린 지 11일 만이었다. 학질에는 항생제가 필요했지만 당시에는 도리가 없었다.
속담에 ‘개똥도 약으로 쓰려면 없다.’라는 말이 있다. 이 속담은 아무리 하찮은 것도 막상 필요해서 쓰려고 하면 없다는 뜻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옛날에는 실제로 개똥을 약으로 사용했다.
개똥은 사분산(四糞散)이란 처방에 사용된다. <동의보감>에는 ‘사분산은 두창이 검게 꺼져 들어가서 위태로운 것을 치료하는 처방이다. 어린 남자아이의 변, 검은 고양이의 변, 검은 개의 변, 검은 돼지의 변을 취해서 말린 다음에 불에 태워 만든 가루를 꿀물에 섞어서 복용한다. 다른 이름으로는 무가산(無價散)이라고 한다.’라고 했다. 무가산(無價散)은 문자 그대로 아무 가치가 없이 버려진 분뇨를 모아 만든 약 처방이라는 뜻이지만, 반어적으로 ‘효과가 좋아서 가치를 매길 수 없다.’라는 뜻이기도 하다.
사분산은 영조 때 동궁의 열병에 종종 처방되었다. 그러나 의관들조차 처방하는 것을 조심스러워했다. 아마도 ‘분(糞, 똥)’이란 이름에서 오는 꺼림칙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승정원일기에는 약방의 제조 윤순이 "무가산(無價散)은 모두 사용하고 전에도 다용했지만 지존의 병환에 불결한 약을 사용함에 있어 여쭙기 전에 대령하지 못하였으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승정원일기 영조 6년, 1730년 1월 25일)라고 말한 내용이 나온다. 궁에서는 사분산(四糞散)을 무가산(無價散)이나 만금산(萬金散)이라고 불렀다.
결국 영조는 궁에서 사분산의 사용을 완전히 금하라는 명을 내렸고 궁 내에서 개를 기르는 것조차 금지했다. 이후 궁에서 사람이나 동물의 분변을 약으로 사용하는 처방은 사라졌다. 그러나 민간에서는 여전히 분변을 약으로 활용했다. 조선 후기 정약용은 이를 비판하면서 "우리 풍속에 똥 먹는 것을 매우 좋아하여 병이 나면 똥을 곧잘 먹지만, 똥에 대하여 분명히 알지 못하니 안타깝다."라고 하였다(여유당전서, 마과회통, 오견편, 잡론제10).
야인건수(野人乾水)나 사분산(四糞散)은 모두 포유류의 분변으로 주로 열병에 사용했다. 동물의 대변은 약성이 서늘해서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다고 여겼던 것이다. 일종의 해열제나 항생제 역할을 대신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야인건수와 사분산은 해열 작용이나 면역에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을까?
저자는 허무맹랑한 내용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포유류의 장 속에 있는 미생물들은 대사산물로 단쇄지방산과 항생물질들을 만들어 낸다. 이러한 대사산물은 대변 속에 고스란히 포함되어 있다. 이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다면 면역체계에 긍정적인 영향을 기대해 볼 수 있다. 대사산물은 열에 안정적이기 때문에 야인건수 등을 태워서 사용한다면 대사산물은 남고 병원성 미생물의 위험은 없었을 것이다.
요즘에는 건강한 사람의 대변을 장질환 환자에게 이식해 면역력을 개선하는 ‘대변 이식’ 치료법이 있다. 또한 최근에는 제왕절개로 태어난 신생아에게 엄마의 대변을 소량 섞은 우유를 먹이면 면역력이 향상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일명 ‘대변 밀크셰이크’다.
이처럼 과학적으로 정제된 방법으로 대변을 활용하는 연구는 계속되고 있으며, 그 효능도 점차 입증되고 있다. 중종이 열병 치료를 위해 복용했던 야인건수는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낯설고 비위생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당시 한계 속에서 열병 치료를 위한 창의적 시도였으며, 현대 과학의 관점에서 일부 가능성을 인정받고 있다.
현대에 ‘대변 이식’이나 ‘대변 밀크셰이크’가 있다면, 과거에는 ‘야인건수’가 있었다. 야인건수와 같은 전통 처방 역시 단순한 과거의 유물로 치부하기보다, 현대 의학과 접목해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