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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여는 사람들미국에서 한의원 운영과 후학 양성
"한의약 우수성 알리고 싶어"

메르시 박 / ‘생명주는 한의원’ 원장·사우스 베일로 한의대 외래교수

최근 한국무역협회는 글로벌 전통 의약 시장이 지난 2022년 약 5천186억 달러 규모에서 오는 2027년 약 7천682억 달러 규모로 커지며, 연평균 8.2%의 높은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또한 세계보건기구(WHO)가 전통 의약이 의료비 절감 및 만성질환 예방에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사용을 권장하고 있고, 세계 주요국도 그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미국과 유럽의 전통 의약 수요가 높아짐에 따라 기존 아시아 중심에서 서구권으로 시장이 다변화되고 있으며 웰니스 트렌드와 결합해 서구의 고소득층 소비자를 중심으로 소비가 꾸준히 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에서 한의원을 개원하고 현지 한의대학에서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는 메르시 박(Mercy Park) 원장을 만나 미국 내 한의약의 위상과 세계화에 대해 들어 보았다.

Q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캘리포니아에서 생명주는 한의원(Life Giving Acupuncture & Herbs Clinic)을 운영하고 있는 메르시 박 원장입니다. 현재 사우스 베일로(South Baylo) 대학교 한의과에서 석사 과정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방 내과와 한방 부인과 강의도 맡고 있습니다.

외증조할아버지와 외할아버지 모두 한의사였는데요, 어린 시절 외할아버지와 함께 지내면서 자연스레 한의약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2대째 내려온 가업을 이어 미국에서 한의약을 가르치고, 환자들을 치료하는 일을 저의 사명과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Q

운영하고 계신 ‘생명주는 한의원’에 대한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A

한의대를 졸업한 후 고대하던 캘리포니아주 한의사 면허(L.Ac., Licensed Acupuncturist)를 취득하고 2021년에 한의원을 개원했을 때, 상호를 짓는 데 고민이 많았습니다. 외할아버지의 한의원 이름을 그대로 사용할까도 생각했지만, 한의약을 공부하면서 가장 많이 떠올랐던 단어가 ‘생명’이었습니다. 모든 생명체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이잖아요, 이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의 자연과 인체 내 장기 그리고 마음과 정신이 서로 연결되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한의약 공부와 개인적인 경험을 쌓아가면서 경제적·사회적 불균형으로 인해 발생하는 질병으로부터 건강을 지킬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제가 직접 생명을 드릴 수는 없지만, 그동안 배운 의술을 통해 환자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건강을 지켜드리고자 하는 마음으로 ‘생명주는’이라는 이름으로 한의원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캘리포니아에서의 한의원 개원을 결심하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이주하기 전에는 한국에서 법학을 전공했습니다. 로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뉴욕으로 유학을 왔다가 남편을 만나 결혼하고 캘리포니아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미국에서도 한의약을 공부할 수 있는 전문대학원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그 사실이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사실 미국은 한국의 건강보험 제도와 달리 사보험 체계가 복잡하고 의료비 부담이 큰 편이라 가벼운 질병에도 검사나 진료를 받는 데 불편함이 많습니다. 그러다 일차 진료권(primary care right)을 가진 한의사를 만나 한의 치료를 접하고 건강이 개선되는 모습을 보면서 미국에서 한의약이 가진 가능성과 장점, 그리고 직업적 전망에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전공을 한의학으로 바꾸고 이 길을 걷기로 결심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미국은 50개 주로 이루어진 넓은 나라로,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어우러진 곳입니다. 그래서 동양의 전통 의약이 일부 주에서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제가 이주한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 아시아 각국의 전통 의약 전문가와 한의사들이 가장 많이 활동하는 곳이에요. 한의약이 캘리포니아에 깊이 뿌리를 내리며 오랜 시간 동안 발전해 왔기 때문에 한의원이 많은 편이고 한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비교적 잘 갖춰져 있습니다. 또한 침 치료에 대한 의료보험 적용 범위가 확대되면서 현지 환자들의 수요도 꾸준히 증가하고 있습니다.

Q

미국의 한의대는 한국의 한의대와는 어떤 점이 다른가요?

A

한국의 한의대와 미국의 침술 및 동양의학 전문대학원은 교육 체계, 기간, 교육 초점, 제도적 명칭 등에서 여러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의 한의대는 6년제 학부 과정으로 운영됩니다. 반면에, 미국의 침술 및 동양의학 전문대학원은 석사 및 박사 학위를 제공하는 전문대학원으로, 대학원에 입학하려면 학사 학위 이상이 필요합니다. 석사 과정은 3~4년, 박사 과정은 커리큘럼 및 연구 논문 여부에 따라 1~4년 정도 소요됩니다. 입학 요건은 영어 능력을 포함하고 있지만 한국보다 비교적 유연한 편입니다.

미국의 한의대는 중의학이나 한의학 등 특정 나라를 구분 짓기보다는 동양의학이라는 큰 틀 안에서 침구, 본초, 고전 및 서양 의학 기초 과목 전반 등의 교육이 이루어집니다. 미국은 통합 의료 환경과 실용성에 초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침술의 임상 실습 교육을 중시합니다. 석사 과정에서 일정한 교육을 수료한 후에는 제휴 병원이나 대학 부속 클리닉에서 임상 훈련을 시작합니다. 교수진의 지도와 감독하에 실제 환자를 진료하고 침술 치료와 한약 제조 및 처방 실습 등을 하게 됩니다. 또한 박사 과정 중의 하나인 임상 수련 과정에는 양방 의료기관을 참관하여 협진하는 프로그램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학생들은 미국 통합 의료 환경에서 요구되는 임상 능력을 키울 수 있게 됩니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미국 침술 및 동양 의학 자격증 위원회(NCCAOM)의 면허 시험과 각 주에서 인정하는 면허 시험 및 요건을 충족해야만 정식 면허 또는 허가를 취득할 수 있습니다.

Q

미국에서 한의원을 개원하기 위해서는 어떤 준비와 노력이 필요한가요?

A

한국과 마찬가지로 환자를 잘 치료할 수 있도록 한의약 지식을 철저히 습득하고 실력을 쌓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두 번째는 원활한 언어 소통을 위해 영어 실력이 필수이며, 스페인어를 조금 익혀두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마지막으로, 미국 의료 시스템에 대한 이해와 더불어 다양한 보험 플랜과 보험 청구 실무에 대한 지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준비가 뒷받침되어야만 한의원을 성공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주는 한의원의 메르시 박 원장
Q

주로 여성 건강과 비만, 스포츠 재활 등에 대해 진료를 보신다고 들었는데요, 어떤 환자분들이 많이 찾아오시나요?

A

다양한 연령대의 환자들이 내원하는데요, 제가 여성 원장이어서 그런지 환자의 절반이 20~40대 여성입니다. 전체 환자의 약 10%는 한국인, 나머지 90%는 영어권 환자입니다.

기본적인 근골격계 통증 치료 외에도 불임 및 난임 치료, 비만 관리, 다양한 질병 치료 등 폭넓은 진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만 환자는 생활 관리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한약 처방뿐만 아니라 전화 상담을 통한 비대면 진료를 진행하며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한스포츠한의학회의 팀닥터 과정을 수료해 스포츠 부상으로 내원하는 환자들의 재활 치료도 돕고 있습니다.

임산부 환자들도 종종 한의원에 찾아옵니다. 아무래도 임신 기간 중에는 약물 사용에 어려움이 있기에 자연 치료를 선호하는 환자들이 한의 치료에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습니다. 한국과는 상황이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양방 주치의나 산부인과 의사들이 환자를 한의원으로 리퍼(refer, 진찰 후 다른 병원으로 의뢰하는 것)를 많이 해주십니다. 임신 초기에 유산을 막기 위해 침 치료를 받고자 하는 환자들도 있고, 임신 중 동반되는 입덧(임신 오조), 감기, 두통, 허리와 골반 통증, 불면증, 불안감 등의 증상을 완화하거나 예정일에 맞춰 순산할 수 있도록 돕는 분만 유도를 위한 침 치료를 받는 분들도 있습니다. 출산 후에도 산후조리와 유선염, 체력 회복 등을 위해서 한의원에 내원합니다.

근골격계 질환의 환자를 진료하는 메르시 박 원장의 모습
Q

산후조리에도 한의 치료가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점이 놀라운데요, 산후조리를 위해 어떤 한의 치료가 이루어지나요?

A

한국과 달리 미국의 의료 시스템에서는 산후조리와 같은 전문적인 서비스나 편리함을 기대하기 힘듭니다. 일반적으로 자연분만은 출산 다음 날, 제왕절개는 출산 후 2~3일 이내에 병원에서 퇴원하게 되는데요, 산모 대부분은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몸을 조리하며 신생아를 돌봐야 하기에 실로 많은 어려움과 고충을 겪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에 산모들은 심각한 산후 우울증, 면역력 저하, 피로, 스트레스, 골반이나 허리 등의 다양한 통증 등에 노출됩니다. 제대로 된 산후 관리가 부족할 경우 여성 건강에 장기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특히 동양인들과 달리 대부분의 서양인은 산후조리에 대한 개념과 이해가 부족합니다. 그래서 임산부 환자들이 한의원에 방문하면 산후조리를 위한 한의 치료와 관리 방법을 알리는 데 더욱 힘쓰고 있습니다.

산후조리를 위해 좌욕, 온열 치료, 침 치료 등의 한의 치료로 오로 배출과 부기 제거를 돕습니다. 또한 어혈과 노폐물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한약을, 소진된 기혈을 보충하고 체력을 회복을 위해서는 보약을 처방합니다. 이와 함께 모유 수유와 건강 회복을 돕는 식이 요법에 대한 안내는 물론 골반 순환을 개선하고 자궁 회복과 건강 개선을 위한 요가와 운동법도 교육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임산부들이 건강한 출산과 산후 관리를 위해 한의원을 찾는다.
Q

한의약에 대한 미국인의 인식은 어떤가요? 침이나 뜸과 같은 한의 시술에 대한 거부감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A

침술이나 뜸과 같은 한의 치료는 오해를 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표적인 편견으로는 과학적 근거에 대한 회의감, 바늘에 대한 두려움, 안전과 위생에 대한 우려인데요, 한의약을 ‘대체의학’으로 분류해 정통적 치료로 인정하지 않는 문화적 편견도 존재합니다. 또 한약의 안전성과 품질, 그리고 서양 약물과의 상호작용에 대한 오해도 흔합니다. 그리고 보험 적용의 제한으로 인한 높은 비용으로 서양 의학과 같은 즉각적인 결과를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는데요, 그런 분들은 점진적인 치유 과정을 이해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한의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연구를 널리 알리고, 교육과 홍보를 통해 환자들에게 신뢰를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특히 한의약이 서양 의료 체계 내에서 통합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면 환자들의 이해와 수용도가 크게 높아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한의약에 대한 문화적 낯섦에도 불구하고 많은 환자가 의사의 추천으로 호기심을 갖고 한의원을 방문하며, 일부는 온라인 검색을 통해 이미 침 치료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와 신뢰를 갖고 오기도 합니다. 그래서 저는 침을 처음 접하는 환자를 진료할 경우 상담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침을 놓는 과정에서 환자에게 침의 위치나 사용 목적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고, 치료의 느낌이나 불편함 등을 물어봅니다. 특히 바늘에 대해 공포를 가진 환자는 바늘의 개수를 줄이고 통증이 강할 수 있는 부위를 피하며 치료합니다.

한약을 처방할 때는 특유의 맛과 향이 강한 탕약보다는 경제적이고 복용이 간편한 환제, 캡슐, 가루 형태로 먼저 처방합니다. 참고로, 미국에서는 한약이 의약품이 아닌 건강 보조제에 속하기 때문에 비타민이나 서양 허브 보충제에 대한 이해와 약물 상호작용에 대한 지식도 갖추어 한약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복용할 수 있도록 해드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Q

미국에서 활동한 경험으로 볼 때 한의약의 세계화를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나요?

A

첫 번째로, 한의약을 세계화하기 위해서는 과학적 연구와 데이터 축적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여러 현실적 제약과 한계로 한의약의 효과와 안전성을 입증할 수 있는 우수한 임상 연구를 수행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우수한 인프라와 인재들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국제학술지에 뛰어난 연구 결과를 지속적으로 발표하여 한의약의 우수성과 신뢰성을 세계적으로 알려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러한 노력이 한의약이 글로벌 의료 분야에서 인정받을 수 있는 날을 앞당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로, 다문화적인 접근과 열린 시각이 필수적입니다. 각국의 문화적, 의료적 특성을 고려해 한의약이 현지 의료 체계에 자연스럽게 통합될 수 있는 모델을 개발해야 합니다. 특히 서양 의학과 동양 의학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할 수 있는 융합 의료 모델을 구축하고, 현대 의학과 협력 사례를 만들어 세계에 제시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현지의 서양 및 동양 의료 전문가와 학생이 한국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한국의 한의과대학과 연구 기관에서 외국인 학생과 의료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임상 연구 참여, 단기 교육 프로그램, 학위 과정 등을 개발하고, 이를 활성화하여 국제적인 한의약 전문가를 양성하는 다양한 기회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저도 박사 과정 재학 중에 경희대학교 한방병원에서 연수를 받은 적이 있으며, 지난해 가을 제주도에서 열린 ICMART 국제학술대회 및 전통의약 국제 심포지엄에 참석할 수 있는 영광도 누렸습니다. 여담이지만, 그곳에서 한국한의약진흥원과 인연을 맺고 이렇게 인터뷰를 통해 저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Q

앞으로의 계획 및 포부가 궁금합니다.

A

미국에서 한의약을 알리며 환자들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한의약의 뿌리와 정체성을 잊지 않고 한의약의 효과와 장점을 환자와 학생들에게 알리고 싶습니다. 지속적인 연구를 기반으로 한 교육과 치료를 통해 많은 사람이 최적의 건강 상태를 달성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한의약이 단순히 신체적인 질병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건강까지 아우르는 전인적 의료이며 건강한 삶을 위한 생활 의학이라는 점에 대한 인식과 이해를 높이고 싶습니다.

이를 위해 현재 일반 대중이 한의약을 이해하고 일상생활 속에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돕는 영어책을 집필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한의약을 통해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과 웰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몸과 마음이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사셨으면 합니다. 앞으로도 열정을 가지고 연구와 교육, 그리고 한의 치료 활동을 지속하며 한의약이 미국에서 조금이나마 더 인정받고 사랑받는 의료 분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Q

마지막으로 독자 또는 해외 진출을 꿈꾸는 한의사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A

세상은 넓고 기회는 무궁무진합니다. 한국에는 유능한 재능과 실력 있는 한의사분들이 많이 계시지만, 치열한 경쟁과 현실적인 제약, 전통적 노선에 갇혀 있는 듯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열린 생각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한의약의 새로운 길을 개척해 주시길 진심으로 바라고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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