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사진. 정환정
아주 가끔, 특별한 누군가의 생활을 목격한 후 ‘타고나지 않으면 못할 일’이라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보통 사람이라면 지쳐서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을 묵묵히 이어가거나, 화수분처럼 끊임없이 에너지를 내뿜어 여러 사람을 즐겁게 하는 이들을 볼 때면 자연스레 드는 생각이다. 김해시에서 가장 바쁜 사람으로 손꼽힐 김종혜 원장은 이 두 가지 면모를 모두 타고난 사람이다.
겨울답지 않게 본격적인 비가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샛노랗게
겨울답지 않게 본격적인 비가 내리던 1월의 어느 날, 샛노랗게 머리를 물들인 한 사람이 촉촉이 젖은 아파트 단지 안에서 뛰듯이 바삐 걸음을 옮기고 있다. 무채색 외투가 많아지는 계절, 게다가 검은 아스팔트 위였기에 노란 머리의 그는 유독 도드라질 수밖에 없었다.
“앞선 진료가 예상보다 늦게 끝나 30분이나 지각을 했습니다. 안에서 환자분 기다리실 텐데 큰일이네요.”
바쁜 와중에 미소를 잊지 않는 모습이 흡사 30대 초반 청년처럼 보인다. 노란 머리의 주인공은 2018년부터 김해에서 현담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종혜 원장이다. 얼마 전 방문진료를 신청해 김종혜 원장과 처음 마주한 환자와 보호자가 ‘집으로 찾아온 한의사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란 건 당연한 일. 아무리 봐도 ‘한의사다운’ 면모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김해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친 후 다시 김해로 돌아와 개업한 지가 벌써 햇수로 6년째라는 설명을 듣고는 금세 반가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다.
“어머님, 그동안 침 안 맞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잘 놓아드릴 테니까 이번에 한 번 맞아보세요. 우선 약침부터 시작하겠습니다.”
허리 통증으로 걷는 게 여의치 않다는 환자는 옆으로 누워 김종혜 원장의 손길에 허리를 맡겼다. 김 원장이 그런 환자의 환부를 정성스럽게 살피며 조심스레 침을 놓는다. 그리고 곧이어 환자의 병력과 건강 상태에 대한 다양한 질문과 답이 오갔다. 이제 막 방문진료를 시작한 환자라 기록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혹시 허리 말고 더 불편하신 데는 없을까요? 다리가 저리지는 않고요? 아, 발목 떨리는 거요. 그건 운동을 조금 더 하시면 괜찮아질 겁니다. 제가 가기 전에 허리에 파스 하나 붙여드리고 갈게요. 혹시 가려우면 따님한테 바로 떼어 달라고 하세요. 잠도 잘 못 주무세요? 수면제랑 같이 드셔도 괜찮은 한방약 있으니까 다음 주에는 그것도 갖고 오겠습니다. 그때까지 편히 쉬고 계시고, 혹시 더 필요한 게 생각나면 언제든 연락주세요.”
다정하게 그리고 자세하게 설명을 이어가는 김종혜 원장을 환자와 보호자는 환한 얼굴로 배웅했다. 오전에 잡힌 두 번째 방문진료가 끝났고, 오후에도 또 한 건의 방문진료를 앞두고 있었다.
“스케줄만 잘 맞추면 오전에만 대여섯 건의 방문진료가 가능해요. 대신 오전에 그렇게 방문진료를 하게 되면 오후 2시에나 한의원 문을 열게 되니 좀 더 늦게까지 운영해야죠.”
김종혜 원장은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오전에 방문진료를 나가고 있다. 그리고 오후 2시부터 다시 한의원에서 환자들을 만나 밤 9시가 돼서야 그날의 진료를 마무리한다.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그는 싱긋 웃으며 “힘들죠”라고 답하며 “하지만 방문진료는 너무나 익숙한 일”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학생 때부터 의료봉사를 많이 다녔거든요. 공보의 생활을 하면서도 방문진료를 했고요. 지금 갖고 다니는 방문진료용 가방 속 내용물들은 학생 때의 그것들과 크게 달라진 게 없을 정도예요.”
김해에서 개원한 이후에도 쉬지 않고 방문진료를 이어오고 있다는 김종혜 원장. 그가 이토록 방문진료에 전력을 다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보람을 느낀다는 점이 아무래도 가장 큰 원동력인 것 같습니다. 방문진료 특성상 거동이 힘들고 형편이 좋지 못한 분들을 많이 뵙게 되는데, 그분들에게 제가 뭔가를 해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참 기분이 좋습니다.”
물론 힘들 때도 있다. 체력적인 문제는 아니다. 환자의 상태가 갑작스레 변해 예기치 못한 이별을 하는 경우가 바로 그런 때다. 그럼에도 방문진료를 이어가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어린 시절, 한의약을 통해 큰병을 이겨낸 경험을 갖고 있다. 김종혜 원장이 한의학을 전공한 것도, 조금이라도 더 많은 환자를 만나기 위해 방문진료를 이어가는 이유도 그런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기 위해서다.
김종혜 원장은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다. 본업인 한의사로서의 일정도 빼곡하지만 엔터테이너로서의 삶 역시 환자를 돌보는 것만큼이나 열정이 넘친다. 솔로보컬과 밴드의 리드보컬로 활동하고 있는데, 단순한 취미 수준을 넘어섰다. 그의 활동을 관리해 주는 소속사까지 있을 정도다. 각종 음원 사이트에는 그가 참여한 4곡의 노래가 등록돼 있다.
“방문진료를 가면 제 스타일을 보고 놀라는 분들이 계시지 않을까 궁금하시죠? 오히려 진료실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더 많이 놀라요. 곳곳에 기타를 비롯한 각종 악기들이 즐비하거든요.”
그야말로 끼와 에너지를 타고나지 않았다면 꿈도 꾸지 못할 활동을 활기차게 이어오고 있는 김종혜 원장. 물론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한의약을 통해 더 많은 환자가 건강해지도록 돕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방문진료가 더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혼자 생활하는 분들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앞으로 우리 사회가 그 무엇보다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분야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방문진료는 그러한 관심을 실질적인 정책으로 구현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서비스일 테고요.”
김종혜 원장은 “특히 한의약의 경우 침이나 뜸, 부항 등 간편한 기구를 통해 최대의 치료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에 방문진료에 더 없이 적합한 의료 서비스”라고 힘주어 말한다. 다만 홍보와 참여가 아직 미진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잠재적 수요자들은 아직 방문진료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한의사들은 진료실 바깥으로 나서는 데에 주저함이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김종혜 원장이 생활하고 있는 김해시의 경우 다른 지역보다 더 의욕적으로 방문진료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중이다.
“김해시에서는 노인의료·돌봄 통합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 사업에서 한의사들은 방문진료를 통해 한 마을의 주치의가 되는 걸 목표로 하고 있고요. 저 역시 그런 마을 주치의 역할을 더 꼼꼼하게 수행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한의약이 더 체계적으로 표준화·과학화됨으로써 더 많은 이들에게 신뢰와 사랑을 받길 바란다는 김종혜 원장. 환자를 위해 힘차게 내딛는 그의 발걸음마다 끊임없이 샘솟는 따뜻한 기운이 가득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