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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설(說)레어템 한의약으로 이세계 정복
글: 문수림 일러스트: 반짝임
등장인물 소개
한의사 유이태일생을 걸고 한의사가 되겠다는 목표로 정진하여 결국 젊은 나이에 유명한 한의사가 된 유이태. 운 좋게 재벌그룹의 사위 자리까지 꿰차게 되었지만, 어느 날 장인의 심부름으로 병원을 나서던 중 터무니없는 사고를 당하고 만다. 이후, 저승사자를 만나 그의 죽음이 급사, 객사, 요절, 미련과 억울함이란 조건을 충족하였다며, 이승도 저승도 아닌 ‘이세계’라는 곳에 머물게 된다.
유이태의 장인 박명주 회장국내 재벌 서열 10위 안에 드는 대부호. ‘대박’그룹의 회장. 막대한 부로 못 가진 것이 없는 그였지만, 죽음은 두려웠던 탓에 한의학계에서 유망주로 꼽히는 유이태를 사위로 맞이하여 그에게 불로초를 연구하게 한다.
유이태의 아내 박세아박명주의 장녀이자 유이태의 아내. 아버지와는 전혀 다른 성격으로 고운 마음씨와 빼어난 미모를 지녔다.
저승사자유이태에게 죽음을 알리고 ‘이세계’로 안내해 준다.
Ep 1. 진시황도 불로초는 못 드셨답니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전신(全身)을 내려다볼 수 있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 뿐이다. 하나는 천장이 대형 거울로 덮여 있는 곳에 반듯하게 누워 거울에 비친 모습을 들여다보는 경우다. 헌데, 이건 엄밀히 따지면 시선이 거울을 올려다보는 것이지 내려다보는 것은 아니다. 거울 속의 자신이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아도 그게 사실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렇다면, 반박 못 할 나머지 하나의 경우는 어떤 것일까?
그건 저승사자의 등장으로 사후세계가 열리며, 유체이탈(幽體離脫)의 순간을 겪을 때다. 인간이 마지막 숨을 거두기 직전에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경험이다.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 ‘유이태’처럼 말이다.
대체 이게 어찌 된 일입니까?
네, 귀하께서는 방금 육신과 혼이 분리되셨고요, 지금 발아래에 피를 철철 흘리며 누워 있는 게 귀하의 육신입니다. 일단 자살이 아닌 타살이시니 저를 따라오시면 되겠습니다. 저는 오늘 안내를 맡은 담당자 문, 태, 주. 저승사자라고 합니다.
네? 저승사자요? 혼이 분리돼요? 대체 그게 무슨 말인가요? 제가 죽기라도 했단 말입니까? 제가 가긴 또 어디를 간단 말입니까? 기다려보세요, 일단 아내에게 전화라도 한 통 해야겠습니다!
네, 네, 하실 수 있으면 하시면 되고요, 우선 시간이 별로 없으니까 제 뒤꿈치 보고 따라오시겠어요? 궁금한 게 많으시겠지만, 다음 포인트까지는 우선 따라만 와주세요. 아침이 오기 전까지 우리가 들를 곳이 아주 많습니다.
자신을 저승사자라고 소개한 자칭 ‘담당자’는 반복 업무에 찌든 베테랑이나 보일 법한 일정한 톤으로 유이태를 대하였다. 지나치게 사무적인데다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입을 다물어 버리는 탓에, 지금 막 사고를 당한 유이태는 그저 속이 답답할 뿐이었다. 게다가 저승사자가 억양의 기복 없이 별 것 아니라는 듯이 말했던 ‘할 수 있으면 해보란’ 말은 막상 당해보니 굉장히 무서운 말이었다.
유이태는 실성한 사람처럼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었다.
그의 품에 당연히 있어야 할 휴대폰이 없었다. 아니, 옷차림도 정장이 아닌 무늬 하나 없는 하얀색 면바지였다. 심지어 발은 맨발이었다. 더군다나 자신의 몸은 안개에 쌓인 듯 희미한 것이 윤곽을 구분하기조차 쉽지 않았다.
말씀드렸지만 하실 수 있으면 하시면 됩니다. 그런데 안 되시면 빨리 포기하시고 제 뒤꿈치를 보고 따라오셔야 합니다. 중간에 한눈파셔서 저랑 떨어지셔도 그건 제 책임이 아닙니다. 길 잃은 원귀(冤鬼)가 되더라도 제 책임 아닙니다. 저는 다 말씀드렸어요.
아니, 그러지 마시고 잠깐만, 잠깐만이라도 이야길 해봐요. 지금 제가 죽었다는 말인가요? 그런 거예요?
귀하께서는 육신과 혼이 분리되셨습니다. 최종 사망 판정이나 현생 복귀 판정, 환생 절차 등은 제 권한이 아닙니다. 저는 안내인일 뿐이고요, 지옥 입구까지만 안내해 드릴 겁니다. 자세한 건 거기서 다음 안내인을 통해서 들으시면 되시겠어요. 자, 자, 시간이 없습니다. 제 뒤꿈치만 보세요.
그렇게 학계에서 유망주로 추앙받던 한의학자 유이태는 생령(生靈)에서 혼령(魂靈)이 된 걸 얼떨결에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요란하게 울리는 휴대폰 벨 소리가 들려왔다.
통신보안, 통신보안, 상병 문, 태, 주입니다. 근무 중 이상 무. 네, 네, 알겠습니다. 충성.
검은 도포에 갓을 쓴 저승사자가 어이없게도 최신 휴대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했다. 분명 A사의 최신 모델이었다. 게다가 통신보안이라니? 저승사자의 기본 신분은 군인이었단 말인가? 그럼, 직속상관이 염라대왕이라도 되는 건가? 유이태는 어이가 없어 소리 내어 웃어버렸다. 이젠 자신이 개꿈을 꾸고 있는 중이라 확신을 하게 되었다.
유이태 씨, 유이태 씨, 방배동 유이태 씨. 옆으로 열외하십니다.
나? 싫어!
개꿈이라 확신한 유이태는 다짜고짜 저승사자의 요구에 반말로 응수해버렸다.
유이태 씨, 짜증난다고 반말하시면, 나도 반말한다? 어? 이게 진짜 길 잃은 원귀(冤鬼)가 되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야, 내가 저승짬밥 몇 년 차인지는 알고 반말이야? 하, 이거, 참, 어이가 없네. 너… 아니다, 시간 없어서 한 번만 더 참는다. 유이태 씨, 옆으로 열외하십니다.
순식간에 태도와 몸집, 억양과 얼굴을 바꾸어버리는 모습이 정말 군의관 시절 훈련소 조교를 다시 마주한 것 같아서 웃음이 연이어 나왔지만, 유이태는 속는 셈 치고 한 발짝 옆으로 걸음을 옮겨보았다. 그러자 곧바로 강한 바람이 한차례 불어오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는 둥근 원형 테이블에 앉아 푸른색 도포를 입은 다른 저승사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오늘 안내를 맡은 담당자 문, 태, 성. 저승사자라고 합니다. 귀하께서는 다른 혼령들과 달리 죽음에 억울함이 많으시겠더라고요. 그래서 이번에 저승에서 새롭게 신설한 프로젝트 대상자로 지목되셨습니다.
그러니까 제가 죽긴 죽었다는 겁니까? 하, 참, 아무리 며칠 무리해서 일했기로서니 꿈이 너무 엉망이네.
꿈 아니고요, 조금 전에 차에 치이고 깔렸던 본인의 육신 직접 확인하셨죠? 혹시 사고 직전에 있었던 일들 기억하시겠습니까?
기억? 글쎄요… 기억이라면, 아, 맞아! 껌!
다행히 기억하시는군요. 그럼 절차대로 프로젝트 시행하겠습니다. 절차라는 게 어렵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뭐, 대단한 건 아닙니다. 그저 여기 이승이 아닌 이세계(異世界)로 가셔서 잠시 생을 사시면 됩니다. 그러는 동안 저승에서 판결이 확정 나면, 다시 현생으로 복귀하시거나 바로 다음 생으로 환생하시게 되는 겁니다. 다른 원혼들이 일반적으로 지옥에서 몇 년씩 대기하다가 재판을 받고 결정이 난다는 점에서 유이태 씨는 정말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되시는 거라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허허, 꿈이라지만, 듣기는 참 좋군요. 그런데 왜 저만 특별우대인가요?
일단 다시 말씀드리지만, 꿈은 절대 아니고요. 그것보다 정말 죽기 직전이 기억나긴 하셨습니까? 이 부분 저희 쪽에서는 좀 중요한 문제거든요. 평소 성실하게 생을 사시던 분들 중에서 그것도 억울하게 타살로 요절(夭折)하게 되신 분만 프로젝트 대상입니다. 쉽게 말해, 유이태 씨 말고도 이 자리에 앉힐 사람은 차고 넘친다는 거죠. 그런데 유이태 씨가 지난 생에 미련도 없고, 기억도 못 한다면, 사실 그리 억울할 것도 없는 분이 되시는 거니까, 굳이 그런 분을 대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할 필요가 있겠냐는 거죠.
저승사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유이태의 얼굴이 험악하게 굳어졌다.
기억하다마다. 제가 분명 껌이라고 말하지 않았던가요?
유이태의 목소리에 격한 감정이 고스란히 실리게 되자 전체 공간이 일그러지나 싶더니 곧이어 저승사자와 유이태 사이의 공간이 구부러졌다가 펴지면서 순간 극장보다도 큰 스크린이 나타났다.
스크린에는 유이태가 그의 장인(丈人)인 박명주 회장과 차 안에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껌? 씹는 껌? 그걸 말씀하신 게 맞습니까?
당혹스러운 목소리 위로 가래가 끼어 있는 나이 든 목소리가 끈적끈적하게 내려앉았다.
그렇다네, 그런 형태로 만들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왜 어린애들 영양제 중에도 있던 것 같던데? 그걸 말랑말랑한 캔디라고 해야 하나, 젤리라고 해야 하나? 하여튼, 그것을 씹으면 꼭 껌처럼 질겅질겅 씹히기도 하고, 단맛도 나더란 말이지. 그렇게 씹는 맛을 따라 단물을 쪽쪽 빨아먹다 보면 어느 순간 입안에서 사라져 흔적조차 남지 않고 말이야. 어때? 멋지지 않나? 깔끔하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만들어져야 한다는 거야. 날 믿게나, 그렇게 만들어지면 사람들이 죄다 안달이 나서 달려들 테니까.
유이태는 자신의 귀가 의심스러워졌다. 불로초(不老草)는 과거 중국의 절대 지배자였던 진시황조차 평생을 들여서 찾았지만, 끝끝내 찾아내지 못한 전설의 약초가 아닌가? 존재 자체가 신선의 영역이라 불리는 불로불사의 영약. 그래서 지난 세기까지 환상에 불과한 것으로 치부되던 것을 당장 껌처럼 만들어 달라니? 그것도 약재 조합 연구로 정신없는 사람을 굳이 불러내 차에 태우더니 느닷없이 한다는 소리였다.
저… 자, 장인어른, 아니, 회, 회장님. 저… 그건…
정말이야, 내 말대로만 하면, 시장에서 유일무이한 히트 상품이 될 걸세. 상상해봐, 차세대 신약의 대중화를 말이야. 내 말대로만 한다면, 지금까지 양의학자와 제약업자들이 영양제 팔아먹어 왔던 것과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거야. 자네가 자네 입으로 직접 그러지 않았나? 과거에는 그저 상상력과 기술이 부족해서 불로초를 만들어내지 못했을 뿐이라고. 이제는 약재 조합으로 없던 약도 새롭게 만들 수 있는 시대가 열렸다고. 난 자네의 그 말을 전적으로 믿고 있다네. 그러니 자네도 내게 뭔가 신뢰를 보여야 하지 않겠나?
유이태는 차량 뒷좌석 등받이에 몸을 깊게 눕혔다. 앞으로 만들어질 단약(丹藥)의 주재료조차 찾지도 못한 상태에서 형태와 맛부터 구체적으로 주문받고 있자니 당혹스러움에 손발이 다 저릴 정도였다. 유이태는 두 손으로 얼굴을 덮고 마른세수를 했다. 차마 옆자리에 앉은 장인에게 자신의 두 눈에 서린 경멸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네, 네, 그렇게 해야죠.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래서 말인데, 생각난 김에 우리 껌이나 좀 씹는 게 어떻겠나?
네? 껌을요? 지, 지금 말씀입니까?
이번에는 고개를 돌릴 수밖에 없었다. 껌이라니? 대한민국 재계(財界)를 움직이는 굴지의 대기업 회장 요구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소박했고, 소박한 만큼 생뚱맞았다. 아니, 너무나 소박하고 생뚱맞은 탓에, 그 장단에 어떻게 어울려줘야 할지 감히 감조차 잡을 수 없었다.
그래, 지금 말일세. 바로 저기 길 건너편에도 마침 편의점이 하나 있구먼. 가서 껌이든, 젤리든, 식감이 좋은 걸로 좀 가져와 보게.
당황하는 유이태를 대신하여 운전석의 김 기사가 차를 정차하며 입을 열었다.
그런 거라면, 제가 다녀오겠습니다.
아니, 누가 자네보고 끼어들라고 했나? 김 기사, 자네는 운전이나 똑바로 하면 돼. 난 지금 내 사위가 아닌 프로젝트 책임자에게 지시하고 있어. 책임자가 앞으로 연구를 하려면, 벤치마킹할 기성 제품들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고. 이거 참, 하, 내가 자네에게 이런 것까지 직접 알려줘야 하나? 내 옆에서 몇 년이나 되었는데, 여전히 눈치가 없어!
노기를 띤 카랑카랑한 음성이 차 안을 순식간에 얼어붙게 했다. 유이태는 반사적으로 운전석의 김 기사를 향해 손사래를 치며 이미 뒷좌석 문을 열고 발 한쪽을 밖으로 뺐다.
노여워하지 마세요, 처음부터 제가 직접 다녀올 생각이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유이태는 재빨리 차 문을 닫고 등을 돌린 채 그대로 얼굴을 찌푸렸다. 갑갑증에 당장 욕설이라도 시원스럽게 내뱉고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일단 길부터 건너고 볼 생각이었다.
그래서 프로젝트 책임자씩이나 되는 사위에게 껌 심부름을 시키신 거다? 바쁜 사람을 이 야밤에 오라, 가라 한 것으로는 모자라서? 그냥, 솔직하게 당 떨어졌으니 뭐라도 씹을 거 좀 사 오라고 했으면 덜 미울 텐데… 하, 하필이면 저런 늙은이가 세아의 아버지라니…. 아… 학계에서 루키 소리를 듣던 내가 이 시간에 껌 심부름이나 하고….
유이태의 눈앞에 평소 자신을 시기하던 동기생들 얼굴이 떠올랐다. 그들이 더없이 기쁜 얼굴로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시시덕거리는 모습이 적나라하게 그려졌다. 저절로 어깨와 등이 굽고, 허리에서 힘이 빠졌다.
아니야, 이럴 때일수록 세아만 생각하도록 하자!
유이태는 애써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내 박세아를 떠올렸다. 회장의 딸이라고는 전혀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운 마음씨와 외모. 오늘날까지 애써 버티어 온 건 어디까지나 아내, 박세아 때문이었다. 재벌가의 혈육 같지 않은 겸손과 소박함을 갖춘 여자. 그건 필시 어린 나이에 사별한 그녀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리라.
그래, 내가 세아와 결혼하려고 어떤 시간을 견뎠는지 그것만 생각하자. 그때 이미 다 각오한 일이잖아.
유이태의 발걸음이 횡단보도 앞에 이르자 신호등 색깔도 기다렸다는 듯이 바뀌었다. 그대로 바쁜 걸음을 내딛는 유이태.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예측할 수 없었다. 그의 인생이 신호등 색깔과 함께 달라질 것을.
다행히 제대로 기억하시는군요. 아, 시선이 정면을 향하고 있어서 죽는 순간은 인지를 전혀 못하셨군요. 그건 오히려 다행인 것 같습니다. 고통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하셨다는 말이 될 테니까요. 급사(急死)에, 객사(客死), 요절(夭折). 기억도 멀쩡해서 억울함과 미련도 있으시고. 네, 그렇다면 자격조건은 충분하십니다.
억울하냐고요? 네, 무진장 억울합니다. 이제야 실력을 제대로 인정받고 살게 되었다고 생각했으니까요. 그리고 장인어른에게도! 그런데 이렇게 되니… 아내 생각밖에 나지 않네요.
네, 대략 살아오신 행적은 이미 저희가 알고 있습니다. 정말 공부만 열심히 하셨고, 의료 봉사 활동도 많이 하셨고, 처가의 덕으로 조금 뒤늦게 빛을 보는가 싶었는데, 타살로 인해 객사. 아내 분을 생각하시는 마음이 지극하시니, 아마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좋은 결과? …라는 건 제가 다시 깨어날 수도 있다는 말입니까? 분명, 아까 현생 복귀라는 말씀도 하셨죠? 그렇죠?
죄송하지만, 그건 제 권한이 아니라 상세 답변은 어렵습니다. 다만, 잠시 다른 세계에 머무시는 동안 그 시간을 잘 쓰시길 바랍니다. 그게 현생 복귀라는 결과에 반드시 유리하다고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솔직히 머물게 되는 그 시간이 사람마다 다 달라서요. 정말, 천차만별입니다. 어쨌건 잘 보내시게 된다면, 현생 복귀든, 환생이든, 그 경험은 혼에 얼마간 남게 될 겁니다.
말을 마친 저승사자는 펼쳐 들고 있던 다이어리를 닫더니 품에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통신보안, 통신보안, 병장 문, 태, 성. 혼령 하나 발송. 수신좌표는 CH 브라보 로미오, 공, 칠, 팔, 팔, 삼, 아홉, 삼, 아홉. 반복한다. 수신좌표는 CH 브라보 로미오, 공, 칠, 팔, 팔, 삼, 아홉, 삼, 아홉.
유이태는 다음 순간 자신의 몸이 저승사자의 휴대폰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굉장한 반동으로 하늘로 솟구쳐 오르는 걸 느꼈다. 마치 대포나 미사일을 허공에 날리듯이.
그렇게 이루어진 갑작스런 이동에 당황할 사이도 없이 모든 정신이 나락으로 떨어지는가 싶더니 다음 순간 옆구리에 숨이 멎을 듯한 강한 충격이 전달되었다. 거기에 귀를 찢어놓을 듯한 호통 소리 덕에 골 전체가 울리는 두통은 덤이었다.
이 머저리야! 죽고 싶어 환장했어? 몸을 굴려! 당장 일어나!
바닥을 뒹구는 유이태의 눈앞으로 검은 그림자들이 날아와 굉음을 내며 서로 부딪혔다. 덕분에 그의 시야는 온통 검은색으로 물들어 천지를 분간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고통으로 벌려진 입안으로는 흙먼지가 한 움큼 쏟아져 들어와 숨구멍마저 막으려 했다. 유이태는 반사적으로 몸을 데굴데굴 굴리며, 헛구역질했다.
우웨웨에에웩.
길게 이어지는 헛구역질 소리를 따라 그의 머리 위로 금속이 맞부딪히는 소리가 또 한 번 길게 울렸다. 온몸을 흔드는 진동 소리에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올려다본 하늘에는 커다란 검과 거대한 몽둥이가 맞물려 서로를 밀어내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어서 저 괴물의 허벅지를 찔러! 어서!
유이태는 괴물이란 말에 본능적으로 덩치가 더 큰 그림자로 시선을 옮겼다. 거대한 몽둥이를 따라 성인 남성의 허리만 한 믿지 못할 두께의 팔뚝을 보았고, 그 팔뚝이 초록색이란 것도 보았고, 그 팔뚝의 주인이 멧돼지처럼 어금니를 드러낸 짐승의 몰골이란 것도 보았다.
허벅지? 웃기지 마! 당장 오금이 저려서 거기까지 내 손이 닿지도 않겠다! 그래, 이렇게 바닥을 기고 있을 땐 태충혈(太冲穴)이지!
유이태는 어째서인지 다음 순간 허리춤에 꽂혀있던 단검을 능숙하게 빼들었다. 아마도 그의 혼이 담기기 전까지 몸의 원래 주인이 안고 있던 습관과 기억 덕분이리라. 어쨌든 당장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유이태는 바닥을 뒹굴며 온 힘을 다해 괴물의 발등을 단검으로 찍어눌렀다. 정확히 엄지발가락과 검지 발가락뼈가 발등에서 만나는 오목한 부위였다.
뭉툭한 단검에 괴물의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가 나고, 그 위로 괴물의 외마디가 튀어 올랐다. 그렇지만 그 어떤 소리도 다음 순간 이어진 유이태의 실성한 듯한 괴성보다 길거나 날카롭지는 않았다.
끄아아악! 이게 다 뭐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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