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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인(人)태초의 생명력을 간직한 약초군락으로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다

황지해 / 정원작가 · 환경미술가

약 200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세계 최대 정원박람회, ‘첼시플라워쇼’에서 한국의 약초군락으로 세계를 놀라게 한 이가 있다. 바로 황지해 정원작가다.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정원으로 그대로 재현해 극찬을 받은 그날 이야기를 함께 나눠보았다.

Q

영국의 대표적인 정원·원예 박람회인 ‘첼시플라워쇼’에서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조성한 작품으로 금상을 수상하셨어요, 작품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지난해 5월에 열린 ‘첼시플라워쇼’에 선보인 작품은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입니다.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는 ‘원시성의 회복’, ‘자연과 인간의 공생’이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어요. 태초부터 자연은 모든 생명체의 원천이자 삶의 터전이 되어주었죠. 산에서 자라나는 수많은 식물과 약초들이 우리의 생명과 건강, 삶의 질을 담당했어요. 이렇듯 우리가 자연에 의지하여 생존해 왔다는 점에서 출발해 지리산 약초의 생장 환경을 통해 식물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본래의 것으로 되돌려주는, 즉 원시로 돌아가고자 하는 식물의 관성을 존중해주는 것이 ‘원시성의 회복’이자 ‘자연과 인간의 공생’의 본질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 의미를 담아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모티브로 가로 10m, 세로 22m 땅에 지리산 멸종위기종인 ‘나도승마’와 오직 지리산에서만 서식하는 ‘지리바꽃’을 포함한 토종 식물 300여 종으로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200톤 바위와 개울이 흐르는 산비탈, 약초꾼들의 건조장을 본뜬 5m 높이의 목조건물을 만들며 지리산 야생의 약초환경을 그대로 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첼시플라워쇼에 방문한 많은 관광객이 황지해 작가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Q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에 주목한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A

우리가 겪고 있는 삶 속의 모든 문제는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멀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통해 인간과 자연은 분리된 존재가 아님을 알리고 싶었어요. 인간과 자연의 공존, 자연에 대한 태도를 이야기하기 위해 ‘우리에게 실질적으로 긴 시간 동안 건강과 삶의 질을 담당했던 곳이 어딜까’라고 생각했죠.

그래서 약 1,500종의 약초가 자생하는 지리산의 생태환경에 대해 관찰을 시작했어요. ‘한국 최후의 원시림’, ‘한국의 어머니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에는 아직도 이름 없는 산봉우리와 계곡이 많이 있습니다. 실제 지리산 약초꾼을 만나 지리산 산약초의 효능이 왜 뛰어난지 여쭤보니 “모든 약초는 이른 아침 햇살에 가장 좋은 기운을 받아요.”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지리산만이 가진 독특한 생육환경에서 자란 약초는 지리산만의 두터운 이야기를 피워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에 기록된 민간약초인 당귀, 오미자, 헛개나무, 가시오가피, 더덕, 층층둥글레, 산삼 등을 정원에 키 플랜트로 사용해 디자인했습니다.

첼시플라워쇼 금상 수상작 ‘백만 년 전으로부터 온 편지’
Q

해외에서 지리산을 그대로 재현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으셨을 것 같아요. 제작 과정과 해결 방법이 궁금합니다.

A

3주라는 짧은 기간 동안 작업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도 어려웠지만, 엄격한 규제로 인해 정원 조경 재료를 확보하는 게 가장 힘들었어요. 탄소중립 실천과 바이러스 문제로 수입이 통제되어 모든 재료를 영국 현지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특히 가장 큰 문제는 한국의 특산종과 희귀종, 멸종 위기 식물 역시 영국에서 구해야 한다는 거였죠. 다방면으로 수소문한 끝에 10년 전 DMZ 정원을 함께 제작한 영국 북쪽의 노스웨일즈에 거주하는 노부부가 30여 년 전 한국의 지리산과 한라산, 울릉도 등에서 씨앗을 가지고 와 키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어요. 그 덕에 30여 년 된 지리산의 때죽나무와 함박꽃나무, 산초나무, 노각나무 등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또, 지리산의 편마암을 구하기 위해 영국 전역을 돌아다니다 스코틀랜드 북쪽 지역의 돌이 지리산 바위의 형태와 질감이 가장 비슷하다는 것을 발견했죠. 200여 톤의 돌과 바위를 스코틀랜드에서 옮기고, 연출하는 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소요되어 많이 지치기도 했습니다.

정원 조성을 위해 제작팀과 논의하고 있는 황지해 작가
Q

정원작가로서 식물에 관해 많은 공부를 하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평소 약초에 관심이 있으셨나요?

A

어릴 때 시골에서 살았어요. 달리다가 넘어져 상처가 나면 할머니가 지혈을 돕기 위해 쑥을 빻아서 무릎 위에 올려주시곤 했어요. 또 제가 위장이 약해서 자주 배가 아팠는데요, 그럴 때면 어머니가 질경이 잎을 찧어서 먹으라고 주셨어요.

어머니의 텃밭은 제 인생 최고의 정원으로 남아 있어요. 빨간 앵두와 당근꽃, 파꽃이 만발하는 어머니의 텃밭에는 동생의 기침을 멎게 하려고 항상 도라지와 더덕이 심겨 있었어요. 이런 성장 환경과 기억이 정원작가로 활동하는 저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많이 주고 있어요.

Q

작품 속 가장 기억에 남는 약초가 있나요?

A

지리산의 미기후 속 강한 생명력을 대표하는 산삼이 가장 인상 깊게 생각나요. 백두대간의 산삼은 산삼 씨앗을 먹은 새들의 분변을 통해 세력을 확장해 나간답니다. 그래서인지 한국 토종 산삼은 마치 하늘을 나는 새가 그린 디자인 같아요.

토종 산삼을 통해 지리산만이 가진 독특한 땅의 모습과 형태, 지질적 특성을 유추할 수도 있어요. 지리산의 산삼은 일반적인 인삼과 달리 약성이 2배 이상입니다. 그 이유는 산삼의 생육환경에 있어요. 산삼이 잘 자라려면 뿌리 쪽은 습기가 많고 성장부는 일조량이 충분해야 합니다. 즉, 오전에는 햇볕이 잘 들어와야 하고, 오후에는 햇살을 피해야 하기에 계곡 주변에 풀이 많이 없는 곳 또는 물 빠짐이 좋은 곳에 서식합니다. 이렇듯 양지도 아니고 음지도 아닌 미기후만이 만들어내는 오묘하고 독특한 지리적 환경 속에서만 야생으로 생존하기 때문에 약성이 뛰어날 수밖에 없는 거죠.

지리산 동남쪽 약초군락을 형상화한 작품의 모습
Q

영국의 찰스 3세 국왕은 작품을 보고 극찬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의 작품을 본 해외 관객과 심사위원의 반응은 어땠나요?

A

심사위원과 해외 기사에서는 “진정한 한국 문화의 한 조각”이라는 말과 “전 세계를 가로질러 지리산의 숲속을 온 듯하다”라는 평이 많았습니다. 특히 찰스 3세 국왕은 “한국 정원을 영국에 가져와 줘 감사하다”라고 말씀하셨어요.

이번 첼시플라워쇼에서 금상을 수상할 수 있었던 건 한국 식물만이 가진 차별화된 미학적 가치와 잠재된 비밀 때문입니다. 억겁의 시간 동안 지리산 편마암이 길러낸 산야초의 조형성과 생태환경, 식물의 잠재력과 약학적 가치를 통해 한국의 정서와 문화를 엿볼 수 있어요. 그뿐만 아니라 지리산의 원시적 생태환경을 통해 현재 우리에게 놓여있는 기후환경과 미래 지구에 대한 생태관과 미래가치를 공감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지리산이 만들어 낸 생태계와 소생태계를 이룬 원시적 자연환경으로 한국의 정서를 전달하는 것은 물론 보편화된 감정과 공감을 일으켜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은 것 같습니다.

찰스 3세 국왕이 황지혜 작가에게 금상을 시상 후 악수하고 있다.
Q

작품 중 일부를 암센터인 영국 매기재단에 기부하셨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기부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A

2015년 이후 긴 시간 병마와 싸웠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몸이 아프면서 나 자신과의 긴밀한 시간을 가지며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영향에 대해 생각했어요. 자연 속에 일어나는 다양한 변화와 크고 작은 일들, 날씨와 계절의 변화, 다양한 질감, 빛의 정도, 바람의 움직임이 인간의 정서에 얼마나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지를 직접 느꼈습니다.

세상의 모든 식물은 의학적인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원 안에 모든 식물이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인간을 살리는 약초라고 봐요. 그래서 작품 중 한국 특산종과 자생종 위주로 암센터로 유명한 자선단체인 매기재단(Maggie’s Centre)에 기부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통해 병마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수많은 환자가 한국 식물을 직접 보고, 듣고, 만지며 마음의 위안과 힘을 얻길 바랍니다.

Q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A

개인적인 꿈으로 저만의 작은 터를 가지고 싶어요. ‘평생 살면서 우리가 몇 계절이나 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는데요, 사실 숫자로 보면 40번도 채 안 될 것 같아요. 평생 단 하나의 식물을 제대로 이해하고 생을 마감할 수 있다면 저는 세상에서 가장 고상한 사람으로 살다 간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쫓겨나지 않고 자유롭게 테스트하고 식물을 공부할 수 있는 평생의 터가 있었으면 하는 마음이 큽니다.

황지해 정원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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