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소정(한의사)
두루마기에 동파관(사대부가 평시에 쓰던 관)을 쓴 평상복 차림의 선비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다. 그림 속 주인공은 서화 애호가이자 문인화가인
서직수(1735~1822년 이후)로, 그의 나이 62세에 제작된 초상화다. 화폭 오른쪽 위의 글귀에 따르면 이명기가 얼굴을 그리고 김홍도가 몸체를 그린
합작인데, 김홍도는 서직수와 교유하는 사이기도 했다. 얼굴의 점, 검버섯, 주름까지 세밀하게 묘사했으며, 눈의 흰자위와 대비되도록 눈동자의 경계에 진한
선을 그려 고요하지만 강렬한 눈빛을 표현했다. 검은 동파관과 넓은 소매 아래까지 내려온 가슴의 세조대(도포나 전복, 창의에 착용하는 가느다란 띠),
도포 자락 아래 하얀 버선발의 흑백 대조도 인상적이다. 당시 왕(정조)의 어진을 그린 화가의 솜씨가 잘 드러나는 수작이지만, 막상 당사자인 서직수는
자신의 정신을 제대로 그려내지 못했다며 못마땅하게 여겼다고 한다.
우리나라 초상화로는 드물게 서 있는 모습을 담았으며, 발이 옷에 가리지 않고 온전히 드러나 있다.
‘사람은 발이 있고, 나무는 뿌리가 있다. 나무가 고사할 때는 먼저 뿌리가 메마르고, 사람이 늙을 때는 발이 먼저 노쇠한다’라는 말이 있다. 발은
수많은 경락이 존재하는 곳으로, 어떤 장부나 기관에 문제가 생기면 발에 반응이 나타난다. 중국 고대 의학서인 《중의경전》에서는 발을 ‘제2의 심장’으로
지칭하며 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첫날밤을 치르기 전 새신랑의 발바닥을 방망이나 북어 등으로 때리는 것도 발이 원기의 총집합점이기 때문이다. 특히 발바닥 중 오목한 곳에 있는 ‘용천’은
신장 경락의 첫 번째 혈자리로, 신장은 비뇨(,) 생식 및 성 기능과 관련이 깊다. 이 밖에도 용천혈은 의식 장애, 조울병, 고혈압, 두통, 어지러움,
두근거림 등 각종 신경정신질환 및 응급 시에 활용할 수 있다.
서양에서도 발의 각 부분들이 인체 각 기관의 건강 상태를 반영할 수 있다는 발 반사요법(Foot reflexology)이 근대부터 발전했다. 발바닥에는
반사신경이 많이 모여 있어 병의 진단 및 치료에 이용할 수 있다. 이러한 반사구(Reflex zone)는 몸에서도 특히 손발에 밀집돼 있으며,
그중에서도 발의 반사구는 손의 반사구보다 민감하다. 그렇기 때문에 테니스공이나 골프공 등을 밟으면서 발바닥을 마사지하는 것은 발뿐만 아니라 온몸
구석구석 영향을 미쳐 건강에 도움이 된다.
발이 붓는 양상으로도 내 몸의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부종은 그 원인이 다양하지만, 신장과 심장 기능이 나빠진 경우가 많다. 발끝부터 붓기 시작해 무릎
위로 올라가는 것은 대부분 심장 기능이 약해진 것으로, 울혈성 심부전(심장에서 혈액을 배출하는 기능이 떨어지는 질환, 심장질환 중 부종을 유발하는 가장
대표적인 질환) 등 심장이 안 좋을 때는 낮은 부위, 즉 서 있을 때의 발과 누워 있을 때의 엉덩이가 유독 잘 붓는다. 발과 얼굴이 모두 붓는 것은
신장병의 징조로 볼 수 있는데, 신부전 등의 질환이 있을 때 온몸이 붓는다.
갑상샘 기능 저하증으로 부종이 생기는 점액수종(피부 진피 속에 점액이 쌓이면서 피부가 붓고 단단해지는 증상)은 주로 눈꺼풀과 다리에 증상이 나타난다.
다른 부종과 달리 눌렀을 때 피부가 움푹 들어가지 않는 특징이 있으며, 심하면 얼굴, 손발, 혀, 목의 안쪽까지 부을 수 있다.
이 밖에 관절염약, 진통소염제, 항암제, 스테로이드, 일부 혈압약 등 약물로 인해 붓기도 하는데, 주로 하지부종으로 나타난다. 이때 환자들은 발등과
발목이 부어올라 양말을 신으면 그 부분이 움푹 팬다고 호소한다.
한의학에서 손발이 찬 증상은 ‘한궐’, 뜨거운 증상은 ‘열궐’이라 한다. ‘궐(厥)’이란 ‘기가 위로 솟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인데, 모두 아래쪽
하체에서부터 시작된다. 한궐로 싸늘해질 때는 발가락부터 시작해 무릎으로 올라가며, 열궐 역시 발가락에서 발바닥을 거쳐 위로 올라간다. 손발이 차거나
뜨거운 증상은 모두 신장의 기운이 쇠약해져서 생기며, 이때 신장은 성생활은 물론 인체의 정력과 정기를 모두 포함한다.
우리는 보통 손발이 찬 것은 걱정하지만, 뜨거운 것은 건강하다는 증거로 생각한다. 그러나 《동의보감》에서는 손발이 뜨거운 것은 위병(痿病) 때문에 생길
수도 있다고 경계한다. 위병이란 팔다리가 늘어지고 약해져 움직일 힘이 없어지는 증상으로, 마치 가을에 풀과 나뭇잎이 시들어 떨어지듯 마르는 것을
뜻한다. 《동의보감》에 다음과 같은 일화가 소개돼 있다.
어떤 사람이 복사뼈에서부터 그 아래가 늘 열나는 것 같이 느껴져 겨울에도 버선을 신지 못했다. 그는 “나는 본래부터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찬 것을 무서워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가 그에게 “족삼음경(간, 비장, 신장 경락)이 허약하니 성생활을 하지 말고 음혈(陰血)을 보하여 낫게 하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그러나 그는 웃으면서 대답도 하지 않았고, 50세도 안 되어 위병에 걸려 반 년 만에 죽었다.
여기서 의사는 중국 금·원대의 명의인 주진형으로, 식욕과 색욕을 절제해 보양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음정(陰精)을 자양해 허화(虛火)를 없애는, 즉
우리 몸의 물을 보충해서 화를 끌어내리는 치료법을 잘 사용했다. 족삼음경은 족태음비경·족궐음간경·족소음신경을 말하는데, 모두 발에서 시작해 다리
안쪽으로 올라가는 3개의 음경맥을 뜻한다.
말초신경에 손상이 있는 당뇨, 만성 신장병 및 하지정맥류 등 다리와 발에 혈액순환이 잘 안될 때 이렇게 발이 뜨거워질 수 있다.
하루 종일 혹사하고 더럽다고 무시하기도 하지만, 발을 자주 만지고 관리해 주는 것은 건강에 매우 좋다. 발가락 사이사이에 손가락을 끼워 넣고 벌려주면
순환에 좋고, 발등의 발허리뼈(발목뼈와 발가락뼈 사이에 있는 다섯 쌍의 발뼈) 사이를 눌러주는 것도 도움이 된다.
복사뼈와 아킬레스건 사이 오목한 양쪽 부분을 만져주면 발목을 튼튼하게 해줄 뿐 아니라 비뇨 생식기 및 뇌 혈류 순환까지 촉진한다. 안쪽 복사뼈쪽
혈자리는 신장 경락인 태계, 바깥쪽 복사뼈쪽 혈자리는 방광 경락인 곤륜이다. 이 중 방광경은 우리 몸의 뒤쪽을 중심으로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이어져
있어, 곤륜혈을 자주 만져주면 만성적인 어지럼증과 두통 증상을 완화시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