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유상(한국한의약진흥원 기획협력실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얼마 전 진도홍주를 구해다가 오랜만에 맛을 봤는데, 빛깔이 영롱하고 맛도 부드러워서 높은 도수의 술이라는 느낌 없이 목으로 잘 넘어갔다. 마신 뒤 끝에 오가피와 비슷한 맛이 약간 느껴지기도 했다. 문헌을 살펴보면 《동의보감》에서 〈속방〉을 인용해 홍소주(紅燒酒) 만드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홍소주(紅燒酒) 빚는 법: 소주를 끓여 취할 때 먼저 자초를 가늘게 썰어서 항아리 속에 담아놓아야 하며, 소주 1병에 자초 5∼7돈을 기준으로 한다. 그리고 뜨거운 소주를 자초 담긴 항아리에 내렸다가 오랫동안 두면 색이 선홍색으로 먹음직스럽게 된다. 속방. 《동의보감·잡병편》
여기서 자초(紫草)는 다년생 초본식물인 지치의 뿌리이며 실제로 붉은색을 띠고 있다. 홍지초(葒芝草) 또는 지초(芝草)라고도 하고 지혈(芝血), 자근(紫根), 자지(紫芝)라는 이름도 있다. 자초는 심장과 간장으로 들어가 핏속의 열을 내리고 독을 제거하는 효능이 있어서 마진에 복용하거나 창양, 습진, 화상 등에 외용으로 사용해 왔다. 또한 습열을 없애서 황달, 혈뇨, 복부 창만, 소변 임탁(淋濁) 등을 치료하고 기운을 돋우기도 한다. 즉 피부 질환뿐만 아니라 염증을 가라앉히는 작용이 있어서 다양한 질환에 활용할 수 있다. 홍소주는 민간에서 소주를 내리면서 손쉽게 자초를 활용해 만들었던 술이다. 그런데 민간뿐만 아니라 임금님이 계신 궁중에서도 이 붉은빛 소주를 애용했다. 홍만선이 지은 《산림경제·치선》에는 내국홍로주가 소개돼 있는데 만드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내국홍로주(內局紅露酒) 빚는 법: 술을 빚는 방법은 향온주(香醞酒)와 같으나 누룩은 2말까지만 쓴다. 향온주 3병 2복자[鐥]로 소주 1병을 낸다. 소주를 내려 받을 때 지초 1냥을 잘게 썰어 병 입구에 두면 홍색이 점점 짙어진다. 내국에서는 청주를 써서 은그릇에 끓여 취하므로 외처의 소주와는 같지 않다. 《산림경제·치선》
내국은 조선시대 왕실의 의약을 담당했던 내의원(內醫院)을 말하며, 홍로주는 붉은빛 소주라는 의미다. 궁궐 밖 민간에서 소주를 내리는 방식과 달리
임금님이 드시던 향온주를 청주로 떠내어 증류했고, 이때 내의원에서 약을 달일 때 사용하던 은솥 탕약기를 사용했다. 향온주는 궁중에서 술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사온서(司醞署)에서 담가 진상했던 술로, 향온곡이라고 하는 별도의 누룩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명종 때 간행된 《고사촬요》에는 통보리
가루에 녹두를 섞어서 향온곡을 만드는 방법이 나오고, 그보다 후대의 《음식디미방》에서는 통밀 가루를 추가하기도 했다. 내국홍로주는 《고사신서》,
《주찬》, 《임원경제지》, 《해동농서》 등에도 기재돼 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과 사단칠정 논쟁을 벌였던 기대승의 《고봉속집》에 ‘유두날 호당에 선온을 하사하다(流頭日湖堂宣醞)’라는 시가 실려 있다. 선온은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술로, 고봉의 시에 등장하는 선온은 바로 향온주로 만든 홍로주였다.
의관을 정제하고 공경히 하사에 절하며 자리를 펴고 좋은 벗들을 모으네. 은 술잔에 홍로를 따르고 아로새긴 도마에 진수를 진열했네. 취하고 배불러 편안하고 고요하니 천지간에 다시 무엇을 구하랴.《고봉속집》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선온을 하사하는 사례가 이미 태조 때부터 있었으므로, 자초가 들어간 증류주인 홍로주도 조선 중기 이전부터 궁중에서 만들어 쓰인 것으로 짐작된다. 한편 서유구가 지은 《임원경제지·정조지(鼎俎志)》에는 관서감홍로(關西甘紅露)를 빚는 방법이 나온다. 관서는 평양을 가리키며 감홍로는 평양의 명주로, 이규경이 《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한산(韓山)의 소국주(小麴酒), 홍주(洪川)의 백주(白酒), 여산(礪山)의 호산춘(壺山春)과 더불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술로 꼽기도 했다.
관서감홍로(關西甘紅露) 빚는 법: 화주(火酒)의 3배를 고아서 만드는데, 벌꿀을 소주 받는 항아리 바닥에 바르고 다시 자초 1냥을 넣는다. 맛은 매우 달고 독하며 색은 연지처럼 붉다. 소주 중에서 상품이다. 《임원경제지·정조지》
현재 국내에서 전승되어 제조되는 평양의 감홍로는 만드는 방법이 위와 달라서 증류한 소주에 용안육, 정향, 진피, 방풍, 계피, 생강, 감초, 자초 등의 약재를 침출시키는 방식이다. 1936년에 이용기가 지은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에 기재된 감홍로 만드는 방법이 이와 유사해 소주에 홍국을 넣고 다시 관계, 용안육, 진피, 방풍, 정향 등을 주머니에 넣어서 우려내는 방식이다. 같은 이름의 술이라 하더라도 시대와 만드는 사람에 따라 이처럼 다양한 방법이 나온다.
우리나라 복식의 색 중에서 자색(紫色)은 삼국시대부터 최고의 품위를 나타내는 색이었다. 이 자색을 만드는 데에 사용된 천연염료가 바로 지치다. 《고려사절요》 덕종 3년(1034년) 1월 10일 조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교서를 내리기를, “검소하고 아껴 사용하는 것은 백성을 풍족하게 하는 길이므로, 상의국(尙衣局)에서는 어의(御衣) 염색에 사용하는 홍지초(葒芝草)를 1년간 사용량을 계산하여 그 외로는 많이 거두지 말도록 하라”라고 하였다.
여기서 홍지초(葒芝草)가 지초(芝草), 즉 지치다. 지치를 사용한 염색의 역사는 삼국시대부터 시작해 오래됐으며, 조선시대에 와서도 자적주(紫的紬),
자적토주(紫的兎紬), 자적록피(紫的鹿皮), 자적소록피(紫的小鹿皮) 등 자염(紫染)에 지치가 사용됐다. 세종 때는 위로 경대부로부터 아래로 천민에
이르기까지 사치가 심해져서 자색 옷을 입으려 하니, 그 결과 염색 비용이 많이 드는 폐단이 생기므로 임금의 명령으로 일부 관직을 제외한 모든 경우에
자색 옷 착용을 금지한 일도 있었다. 성종 때에도 당시 호조판서 이극돈이 홍화, 지초 등의 공물이 모자라게 된 상황에서 다음 해 물량을 미리 거두면
백성들이 받는 피해가 클 것이므로 무역으로 충당하기를 임금에게 건의드린 것으로 보아, 여전히 자색 염색의 수요가 많았음을 알 수 있다.
지치의 뿌리에는 시코닌(shikonin)이라는 색소 성분이 포함돼 있어 염료로써 붉은색을 띠며, 의학적으로 항염증, 항종양, 항균 및 생기(生肌)의
효능이 나타나게 된다. 지치로 염색한 천을 피부에 대면 창독이 제거되고 종기가 생기지 않는다고 한다. 이러한 효능 때문에 일본에서 개발된 한방 연고인
‘자운고’를 만드는 주요 약재로 지치 뿌리인 자초와 당귀, 밀납 등이 사용된다.
홍주는 일반적으로 술의 빛깔이 붉은 술을 말하며, 소주류로 앞에서 소개한 홍소주, 내국홍로주, 감홍로, 관서감홍로 등과 진도홍주가 있고, 발효주로 천태홍주, 건창홍주, 홍국주 등이 있다. 붉은색을 내는 원료로 약재인 자초를 쓰거나 붉은 누룩인 홍국을 쓴다. 현재 전승되고 있는 홍주 중에서는 진도홍주가 유명하다. 만드는 방법은 보리쌀과 멥쌀로 고두밥을 짓고 여기에 밀과 보리로 만든 누룩을 섞어 15~30일간 발효시킨 후 증류한다. 증류한 소주 방울이 떨어져 지치 뿌리를 넣은 삼베 주머니를 통과하면서 붉은색의 홍주가 만들어진다.
진도에서 홍주를 만들게 된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그중 하나로 진도홍주가 양천 허씨 집안의 가양주이며, 진도로 옮겨 살게 된 허대라는 분이 후손들에게 방법을 전수했다고 한다. 또 진도에서 나는 자초가 다른 지방에서 나는 것보다 보기에 가늘고 뿌리가 작아도 효능이 더 좋다고도 한다. 음력 8월에서 1월 사이에 뿌리를 채취해 보관했다가 봄이 오는 음력 3~4월에 햇볕에 말려서 사용한다.
《승정원일기》 인조 7년(1629년) 3월 기록을 보면 내의원에서 5월부터 8월까지는 홍소주를, 9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는 향온주를 진상하겠다는 계를 올리는데, 이때 홍소주는 향온주를 증류한 내국홍로주를 말한다. 또한 《승정원일기》 인조 16년(1638년) 5월 기록에는 서습의 병사를 물리치기 위해 소주를 사용해야 하는데 준비해 둔 약재가 모자랄까 우려하는 내용이 있다. 아마도 홍소주를 여름철 습열 병의 치료에 사용한 듯하다. 홍소주의 뛰어난 효능은 중국에도 알려져 《조선왕조실록》 성종 11년(1480년) 7월 기록을 보면, 중국에서 온 사신인 정동(鄭同)과 강옥(姜玉)에게 준 물품 중에 홍소주 10병과 백소주 10병이 포함돼 있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전통적으로 애용해 온 자초로 만든 붉은빛 소주가 잘 계승되고 발전하기를 바란다. 단, 습열을 없애는 효능이 강해서 많이 복용하면 오히려 정기를 손상할 수 있으므로 적당한 복용량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지치는 현재 재배가 가능하므로 조선시대처럼 사치 품목으로 금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