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 人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학을 알리는 열정의 개척자
송영일 한의사

글. 오주이, 사진 제공. 송영일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글로벌협력의사로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파견근무 중인 송영일 한의사. 그는 대한민국 한의사로서 우즈베키스탄공화국 전통의학 과학임상센터에서 한국 한의학진료와 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우즈베키스탄 전통의학의 표준화, 산업화, 현대화를 위해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고 있는 송영일 한의사를 만나본다.

2016년 우즈베키스탄
글로벌협력의료진으로 파견됐는데,
합류 계기와 과정이 궁금합니다.

2007년 5월 11일부터 2010년 4월 1일까지 병역을 대체해서 우즈베키스탄에서 한국국제협력단(KOICA, Korea International Coope-ration Agency) 국제협력의사로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3년간 보람된 시간을 보내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평범한 한의사로 지내던 중 2016년 KOICA에서 새롭게 한의사를 파견한다는 소식을 듣고 망설임 없이 지원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너무 좋은 경험을 해서 언젠가 다시 해외 근무를 해봐야겠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당시 많은 한의사분들이 지원하셔서 경쟁률이 높았지만, 다행히 선발이 되어 다시 오게 됐습니다. 많은 분들이 원했던 자리인 만큼 항상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고, 열심히 해서 좋은 성과를 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현재 우즈베키스탄에서 활동 중인 한의사는 얼마나 되나요?

한의사를 대한민국에서 면허를 받은 사람으로 한정한다면, 우즈베키스탄에 상주하면서 환자를 진료하고 있는 대한민국 한의사는 저와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을 졸업하신 서은비 원장님 두 명입니다. 전통의학 관련 의사로 확대한다면, 한국의 한의사 외에 중국의 중의사와 우즈베키스탄 현지 의사이면서 전통의학 관련 진료를 하는 의사들 그리고 면허 없이 진료하는 현지 전통의학 시술자들이 있습니다. 특히 수많은 중의학 진료소가 이미 우즈베키스탄 각지에서 성업 중입니다. 중국은 국가 차원의 중의학 전파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은 전통의학과(4년제 학사 과정)가 2020년 9월 처음 만들어져서 2024년 6월에야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무면허 전통의학 시술자들을 근절하고 보건의료체계 내에서 관리감독의 폭을 넓히려 하고 있죠. 앞으로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의학 발전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기대가 됩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대한민국 한의학에 대한 관심이나 위상은 어떤가요?

우선 우즈베키스탄 정부 산하 의료기관에 있는 유일한 전통의학센터는 대한민국 한의사가 근무하는 우즈베키스탄-대한민국 한의학 진료센터입니다. 세계보건기구 내의 전통의학 양대 산맥인 중국과 인도는 아직 우즈베키스탄 정부산하 의료기관에 자리를 잡지 못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보건부에서 인정하는 침구치료 시술 자격증을 받을 수 있는 교육과정을 진행할 수 있는 기관 중 외국 의료진이 교육을 진행하는 곳 역시 우즈베키스탄-대한민국 한의학 진료센터가 유일하죠. 또 우즈베키스탄 전역에 분포한 의대 중 전통의학과가 있는 국립의대 모두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자국의 전통의학에 대해 특강과 정규 강의를 진행하는 나라도 대한민국이 유일합니다. 마지막으로 우즈베키스탄에 설립된 10개의 전통의학과에서 사용하는 교과서와 참고서 중 외국인이 작업에 참여해 발행한 것도 대한민국뿐입니다. 일례로 우즈베키스탄 부하라국립의대에서 사용하는 침구학 교과서에는 한국 침구학의 역사가 서술돼 있으며, 모든 혈자리 이름이 한글로 병기돼 있습니다.
대한민국 한의학에 대한 관심과 위상은 나날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결과는 한국국제협력단, 대한한의약해외의료봉사단, 대구한의대학교, 한국한의약진흥원을 비롯한 한의학계 여러 기관과 단체들이 합심해 노력해 주신 덕분이죠.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어느 날 아침 일찍 진료 문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러시아어를 잘 못할 때라 환자분이 곧 방문하겠다고 한 내용만 이해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분이 휴진일인 다음 날 저를 찾아오신 거예요. 하필 강의를 준비하고 있을 때라 타박하려던 찰나, 그분이 택시를 타고 1박 2일간 1,200km를 달려 왔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렇게까지 고생해서 찾아온 이유를 물으니 환자분이 “나도 성이 김이요”라고 하시는 거예요. 그 순간의 느낌은 무어라 말로 표현하기 어렵습니다. 고국, 정체성, 한국인, 한민족, 디아스포라(외국에 거주하는 한국인) 등 여러 단어들이 제 정수리에 날카롭게 꽂히는 것 같았죠. 그분과의 만남 이후로 우즈베키스탄에 거주하는 고려인 노인분들을 위한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가장 뿌듯하거나 보람을 느낄 때는 언제인가요?

농담처럼 들리겠지만, 하루하루 뿌듯하고 항상 보람을 느낍니다. 특히 수술밖에 방법이 없다는 진단을 받은 척추디스크 질환 환자분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저를 찾아와서 잘 회복되는 모습을 볼 때 가장 뿌듯합니다. 한의약이 강점을 가진 비수술 척추 치료를 보다 많이 우즈베키스탄에 알려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근에는 한국한의약진흥원이 주최한 한의약 해외 교육·연수 수기 공모전 최우수상 수상작으로 제자인 울마소프 지크릴로 아비도비치의 작품이 뽑혀 아주 큰 보람을 느꼈습니다. 지크릴로 의사는 우즈베키스탄의 페르가나란 도시에서 ‘아리랑우즈벡메디칼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의사를 이렇게 훌륭히 키워냈다는 것이 기쁘고,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며 한국식으로 예의를 갖추는 제자에게도 감사한 마음이 큽니다.

우즈베키스탄의 전통의학 상황은 어떤가요?
현지 전통의학과 한의학의 접점이 있나요?

우즈베키스탄은 오래된 전통의학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19세기에 시작된 러시아의 침략과 이후의 소련 체제로 전통의학이 거의 사멸되다시피 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샤브캇 미르지요예브 대통령의 ‘전통의학 발전 명령’을 기점으로 상황이 크게 달라졌습니다. 전통의학을 인정하지 않았던 우즈베키스탄 보건부가 현재는 전통의학을 발전시키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우즈베키스탄 의과대학에 전통의학과가 생겼고, 전통의학을 배우려는 의사도 계속 증가하고 있습니다. 전통의학 관련 석박사 학위 과정과 전문 과목 수련 과정도 생길 예정입니다. 이러한 전통의학 발전 단계에서 대한민국 한의학과의 접점도 점점 넓어지고 있습니다. 학문 분야에서는 양국에서 생산되는 천연 약물을 이용한 신약 개발과 침구학·추나의학 교육의 성과 향상에 가장 많은 힘을 쏟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최근 우즈베키스탄의 의과대학 학생들을 위한 추나 교과서 집필진으로 참여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기요법은 우즈베키스탄에서 전통의학 치료로 많은 각광을 받는 분야인데, 학교에 마땅한 교과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이에 한국에서 한의대 공통 교과서인 《추나의학》의 저자 중 한 명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어, 각 학교 교수들에게 공통 교과서 발간을 건의했습니다. 한국에서도 요즘 가장 각광받는 치료 분야가 추나의학인 걸 보면 우즈베키스탄에서도 한국의 추나의학을 기본으로 해서 발전시켜 나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향후 우즈베키스탄에서 수기요법 분야를 발전시켜 나갈 때 한국 추나의학이 그 롤모델이 되어 많은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계획과 목표가 궁금합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근무한 기간을 합쳐 보니 올해로 만 11년이 되어 갑니다. 제가 한국에서 한의사 면허를 받은 해가 2003년인데, 한국에서 한의사로 생활한 기간보다 우즈베키스탄에서 한의사로 지낸 기간이 더 길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계획이나 목표보다는 우즈베키스탄에 있는 대한민국 한의사이자 개척자로서 계획과 목표를 세워 일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우즈베키스탄과 중앙아시아에서 꾸준히 대한민국의 한의학을 알리고, 학술적으로 널리 받아들이도록 해 대한민국의 한의학이 중앙아시아에서 동양의학의 표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려 합니다. 덧붙여 대한민국의 《동의보감》을 러시아어와 중앙아시아 5개국 언어로 번역 출간하고, 《의학정전》과 같은 이븐 시나의 대표적 저작들을 한국어로 번역해 한국 한의학계에 알리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요?

우리 한의사의 졸업장과 면허가 전 세계적으로 인정된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즈베키스탄은 대한민국 한의사에게 별다른 시험 과정 없이 진료권을 인정해 주는 특이한 나라입니다. 이는 우즈베키스탄에 한의학이 진출한 지 20여 년 만에 이룬 성과입니다. 시간이 많이 걸리겠지만 한의계가 힘을 합쳐 계속해서 노력한다면 이를 인정해 주는 나라가 점차 늘어나지 않을까요? 저는 이런 희망을 가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생각은 어떠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