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유상(한국한의약진흥원 기획협력실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팔다리가 저리거나 아프고 간혹 무겁게 느껴지는 증상을 한의학에서는 비증(痺證)이라 하는데, 사지 관절에 나타나는 감각 이상을 통틀어 지칭한다. 계절로는 날씨가 추운 겨울에 증상이 심해지고 습기가 많은 장마철에도 나타난다. 반면에 팔다리가 마르고 힘이 없어지는 위증(痿證)은 활동량이 늘어나는 봄에 주로 발생한다. 이러한 만성 비증을 없애기 위해서 옛사람들은 소나무의 여러 부위로 술을 담가 마셨다. 우선 《동의보감》을 보면 송절(松節), 즉 소나무 송진이 엉긴 가지나 옹이를 술에 담가뒀다가 우려내서 마신다고 했다.
편풍(偏風)과 입과 눈이 비뚤어진 것과 독풍(毒風)으로 근이 뒤틀리고 뼈가 아픈 것을 치료한다. 술에 우려서 복용하는데, 이것을 송절주라 한다. 《동의보감 잡병편》역절풍(歷節風)을 치료한다. 《동의보감 탕액편》
빙허각 이씨가 지은 《규합총서》에도 송절주 담그는 법이 기재돼 있는데 멥쌀과 찹쌀을 주로 사용하고 여기에 송절 달인 물을 더해 만들며 계절별로 피는 꽃이나 유자 껍질을 같이 넣어서 풍미를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효능은 풍담(風痰)을 없애고 원기를 보하며 팔다리 못 쓰는 사람에게 좋다고 했다. 대체로 관절통과 근육 이상, 타박상 등에 광범위하게 쓰이는 약재다. 송절보다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나무잎을 써서 송엽주를 담그기도 했다. 김유가 지은 조리서인 《수운잡방》 하편에는 다음과 같이 송엽주 담그는 법이 나온다.
송엽 6말과 물 6말을 2말이 될 때까지 달여서 찌꺼기와 송진은 버린다. 멥쌀 1말을 여러 번 씻어서 곱게 가루를 내고 앞의 물로 개어 죽을 만든 다음, 차게 식으면 좋은 누룩 1되를 섞어 독에 담아 둔다. 세이레(21일) 후에 쓸 수 있으며, 여러 질환에 즉시 효과가 있다. 《수운잡방》
1800년대 초에 저술된 《주찬》에도 두 가지 송엽주가 소개돼 있는데 멥쌀 대신 찹쌀을 쓰며 그중 한 가지는 송절과 모과를 재료로 했다. 《동의보감》에 나오는 송엽주는 만드는 방법이 달라서 청주 1병에 소나무잎을 찧어 낸 즙을 넣고 하룻밤 더운 곳에 뒀다가 마신다고 했다. 효능은 입이 비뚤어지는 구안와사, 각기병, 풍비(風痺) 등을 치료한다고 했다. 송엽도 송절과 마찬가지로 풍한습(風寒濕)으로 인한 비증, 관절통, 근육 질환에 사용하며, 추가로 급성 염증을 가라앉히고 눈을 맑게 하며 두통을 없애고 피부 습진 등을 치료한다. 그 밖에 소나무꽃과 소나무 새순을 재료로 담근 술도 있다.
송화천로주(松花天露酒), 일명 홍로주(紅露酒)라고 한다. 쌀 총 15말. 5월에 송화를 따서 햇볕에 말린다. 찹쌀 5말을 곱게 가루 내어 송화 5되와 물 3말에 진하게 달여 그 찌꺼기를 걸러 낸다. 찹쌀가루와 송화수를 섞어 죽을 쑨 후 차게 식혀 누룩가루 7되와 섞어 담는다. 5일 후 멥쌀 10말을 찌고 역시 송화수 5말을 진하게 달여 섞은 다음 식기를 기다려 누룩가루 3되를 섞어 항아리에 담는다. 14일 후에 열어서 사용한다. 《산가요록》
장계향의 《음식디미방》에도 송화주 만드는 법이 나오며 전순의가 지은 《산가요록》의 위 내용과 유사하다. 소나무꽃, 송화는 풍습(風濕)을 없애는 동시에 여러 출혈 증상에 지혈 효과가 있고 습진이나 농양, 장염 등 염증 질환에도 사용한다. 소나무 새순을 송순(松荀)이라 하는데, 《규합총서》에서는 멥쌀과 찹쌀에 송순을 섞고 마지막에 소주를 넣어서 만든다고 했다. 《주찬》에도 두 가지 송순주가 나오는데, 이때는 소주를 사용하지 않고 만든다. 송순은 송엽과 효능이 유사하며 기운을 맑게 하는 성질이 더 강하다.
소나무는 애국가에도 나오듯이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나무다. 우리나라에서는 약 6,000년 전에 널리 퍼져 서식한 것으로 추정되며, 여러 용도로 활용돼 전통적으로 국가에서 자원을 보호해 왔다. ‘소나무 아래에서 태어나 소나무와 같이 살다가 소나무 그늘에서 죽는다’는 말처럼 우리의 일상과 늘 함께했다. 아이가 태어나면 금줄에 솔가지를 끼워 나쁜 기운을 막았고, 솔향기 나는 송편을 먹으며 뒷동산 소나무와 함께 놀았고, 목재로 집을 만들었으며, 늙어 죽으면 송판으로 짠 관에 뉘어 자연으로 돌아가고, 소나무 그늘에 묘소를 두는 삶이었다. 또한 늘 푸른 나무인 소나무는 시들지 않는 기상을 보여줘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소나무의 기운이 맑아서 기를 돌려주면서도 흩어지지 않고 안정시키므로, 우리 몸의 안 좋은 풍습(風濕)의 사기를 없애고 염증을 가라앉히며 정신을 맑게 하는 좋은 효능을 가지고 있다. 소나무에 기생하는 복령(茯苓)이나 송이버섯도 소나무의 기운을 먹고 자라므로 비슷한 작용을 한다. 특히 소나무 뿌리에 덩이를 이룬 균체인 복령은 우리 몸의 기운과 진액을 위아래로 원활하게 돌려주면서 정신을 맑게 해준다. 같은 균체로 형태가 조금 다른 복신(茯神)은 정신에 더욱 크게 작용해 건망, 불면 등을 치료한다.
오래전부터 도가에서는 내단 수련을 할 때 벽곡방(辟穀方)을 사용해 왔다. 소주천과 대주천 등 정기신 연단 수련을 하는 경우 음식의 섭취가 이를 방해한다고 봐서 밥을 먹지 않으면서도 수련을 지속할 수 있는 처방을 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적은 양을 섭취하고도 기운을 활발하게 하며 정신이 혼미하지 않고 맑게 유지하는 약재를 사용했다. 예를 들어 소나무의 기운을 받아 우리 몸의 기를 원활하게 돌려주고 정신을 맑게 하며 외부로부터 침입하는 병사를 막아주는 복령이 대표적인 벽곡방 약재에 해당한다. 벽곡방은 후대에 내려와 나라에 기근이 발생했을 때 백성들이 생을 연명하는 데에 사용됐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학적 용도로도 쓰였다. 현대에 와서는 영양 과다와 노동의 부족으로 인해 성인병이 만연해 있어 영양 섭취를 줄이면서 기운을 유지하고 정신을 맑게 하는 먹거리가 필요한데, 여기에 소나무와 관련 식품들이 제격이라 할 수 있다.
송절과 송화는 사상체질 약재 가운데 태양인 약에 해당하고 이와 효능이 유사한 태양인 약으로 오가피가 있다. 오가피주도 조선시대 조리서에 자주 등장하며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주찬》 등에 기재돼 있다.
오가피주. 깨끗이 씻고 목질을 제거한 오가피나무 뿌리껍질을 쓰며 줄기나 잎도 가능하다. 이것들을 달인 물에 누룩과 쌀을 섞어 술을 빚어서 수시로 마신다. 신선자주법. 외피를 벗긴 오가피와 지유(地楡) 각각 1근씩을 자루에 담아 깨끗한 좋은 술 2말에 담근다. 이것을 6개의 술 항아리에 나눠 담아 단단히 봉해서 큰 솥에 안치고 세지도 약하지도 않은 불로 끓인다. 술 항아리 위에 쌀 1홉을 얹어 익으면 꺼내서 화독을 막는다. 술지게미를 햇볕에 말려 환으로 만든다. 매일 아침 약주로 50환을 복용하며 잘 때 다시 복용한다. 풍습(風濕)을 없애고 근골을 튼튼하게 하며 기를 순하게 하고 담을 없애며 정(精)을 보태고 골수를 보한다. 오래 복용하면 늙지 않고 오래 산다. 이시진은 오가피는 풍습과 팔다리 힘없고 저린 것을 고치고 근골을 튼튼하게 한다고 했다. 《주찬》
《동의보감》에서도 각종 근골 질환에 오가피가 좋으며 특히 술로 만들어 복용하는 것이 좋다고 언급했다. 오가피는 소나무와 마찬가지로 풍습을 없애고 팔다리 비증을 치료하며 근골을 튼튼하게 하는 효능을 가지고 있으며, 추가로 부종과 어혈을 없애기도 한다. 단, 오가피가 더욱 성질이 강하고 양기를 돕는 차이점이 있다. 참고로 《주찬》의 송엽주에 쓰인 모과도 태양인 약이다.
태양인 병증은 크게 표병인 해역증과 리병인 열격반위증으로 나뉘는데, 해역증은 별다른 원인 없이 다리에 힘이 빠져 걷지 못하는 병이고, 열격반위증은 먹어도 음식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거식증과 비슷한 병이다. 두 가지 모두 생각이 지나치고 감정이 폭발해 나타난다. 표병과 리병 모두에 오가피와 모과를 쓰며, 해역증에는 송절을, 열격반위증에는 송화를 사용한다. 전체 인구에서 태양인의 숫자가 매우 적다고는 하지만 최근 육체노동의 감소와 정신노동의 증가, 사회 경쟁의 심화와 개인 소외, 이상주의적 사고와 현실 간의 큰 격차 등으로 인해 태양인 병증이 늘어나고 있다. 송절, 송화, 송엽, 오가피, 모과 등의 약들이 근골 계통의 질환을 치료하고 부종과 어혈, 염증 등을 없앨 수 있는 이유는 정신적 안정과 기의 원활한 운행에 관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정신적 안정은 단순히 마음을 고요하게 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고, 늘 푸른 소나무의 기상처럼 맑고 씩씩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다. 옛사람들이 소나무와 오가피 술을 빚어서 스스로 몸과 마음을 관리했던 지혜를 한번 따라가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