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최굴굴(한의사)
체온계에 빨간불이 들어오면서 40이라는 숫자가 뜨자 아들은 눈물을 터뜨렸다.
“이대로 2도만 더 올라도 난 죽는 거야….”
이틀이나 고열에 시달려 꼬질해질 대로 꼬질해진 꼬맹이 입에서 나온 말이 너무 웃기고 귀여워 나도 모르게
깔깔 웃었더니 정색을 한다. 분명 책에서 읽었단다.
한 번 더 꼭 안아주며 “괜찮아, 열 금방 내릴 거야. 안 죽어”라고 하자 이내 안심하고 다시 잠든다.
세상의 모든 병이 감기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을까.
고질병으로 이 병원 저 병원 전전하던 환자가 한의원에 오면 15년 차 한의사도 위축되는 것이 사실이다.
만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자만을 내려놓고 다만 최선을 다할 뿐이다.
책을 읽고, 논문을 찾아보고, 주변 동료들의 중지를 모아 보기도 하며 애쓴다.
그럼에도 빠른 차도가 보이지 않을 때면 환자는 불만을 쏟아낸다. ‘이번에는’ 하는 희망이 ‘이번에도’라는
실망으로 바뀌면서 토로하는 넋두리 같은 것임을 머리로는 알고 있다.
하지만 환자 본인만큼이나 그가 낫길 바라는 사람이 주치의임을 몰라주는 것 같아 한동안 마음앓이를 한다.
모처럼 주어진 오프 날, 독감에 걸린 아이를 돌보느라
진이 빠진 한의사 엄마는
잠든 아이를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조금씩 마음이 풀린다.
며칠 기다리면 나아질 걸 알아 조급해하지 않고, 아이가 병을 이겨내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 있는 지금이
행복한 것이라 위안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