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 한의약
지리산처럼 아늑하게, 생명과 생명이 보듬다
구례 생명수한의원

글과 사진. 정환정

산을 좋아하는 이들은 지리산을 ‘어머니 산’이라 부른다. 그 형세가 둥글고 부드러울 뿐 아니라 전북과 전남, 경남을 모두 아우르는 넉넉한 품을 자랑하고 있기 때문이다. 당연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생명의 숫자는 이루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지리산으로 향하는 가장 유명한 길목으로 손꼽히는 구례에는 그런 생명의 기운을 더욱 깊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아내 손에 이끌려 마주한 구례

“저는 구례에 올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요. 아내가 가자니까 그냥 같이 왔던 거죠.”
구례를 대표하는 고택 운조루 인근에 위치하고 있는 생명수한의원의 안송원 원장은 넉넉한 그의 한옥마냥 푸근한 미소로 구례에 자리잡게 된 계기에 대해 설명했다.
“아버지의 고향이 전남이지만, 태어나 성장한 곳은 서울입니다. 부원장 생활은 충북 제천에서, 개원은 경기도 광주에서 했고요. 구례와는 전혀 인연이 없었던 셈이죠.”
그랬던 그가 구례를 찾은 건 앞서 언급한 것처럼 아내의 요청 때문이었다. 여행을 통해 구례를 경험한 그의 아내가 구례에서의 생활을 원했고, 마침 자녀들도 모두 독립한 터라 안 원장 역시 삶의 터전을 옮기는 데에 큰 부담이 없었다. 그렇게 구례행을 결심하고 답사 차 내려와 만난 오미마을과 그 안의 한옥들은 마치 인연처럼 꼭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덕분에 구례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수익을 먼저 생각했다면 구례읍에 한의원을 개원하는 게 맞지요. 하지만 그래서야 수도권에서 생활하는 것과 크게 다를 것 같지가 않았어요. 기왕 구례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로 했으니 특색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생각으로 지리산 자락 아래에서 개원을 결심했습니다.”
2016년 11월 새롭게 개원해 어느덧 7년 이상 꾸준히 환자를 진료해 온 안송원 원장의 공간이 더욱 궁금해졌다.

자연과 생활, 치유가 공존하는 공간

생명수한의원은 구례읍에서 자동차로 약 10분 거리에 위치해 있는데, 앞으로는 오봉산이 뒤로는 지리산이 감싸고 있다. 섬진강도 멀지 않을 뿐더러, 집 앞에는 맑은 물이 개울을 이루고 있다. 겨울임에도 수량이 넉넉한 건 지리산으로부터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그런 물줄기를 내려다보고 서 있는 생명수한의원의 간판이 이 공간과 참 잘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
정다운 담장을 지나 마당으로 들어서면 너른 누마루가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다. 겨울을 제외한 모든 계절마다 사람이, 이야기가, 음식이 오가는 교류의 장이다. 늦은 시각 내원한 환자들과 함께 누마루에서 식사를 하는 경우도 많다는 게 안 원장의 설명이다. 경기도 광주에서부터 단골이었던 환자들도 종종 구례까지 그를 찾아오곤 하는데, 그런 분들을 위해 숙식을 해결할 수 있는 별채도 마련했다.
“아침 저녁으로 바라보는 지리산의 모습, 섬진강에 피어나는 물안개는 정말 아름답습니다. 저희 집에 오시는 분들도 그런 풍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해드리고 싶었어요. 덕분에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것 같다는 분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안송원 원장은 원래 주택 용도로 지어진 한옥의 분위기를 최대한 살리려 애썼다. 그래서 반듯하고 자연스러운 대들보와 서까래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한옥 본연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대기실이 더 없이 아늑하다. 침구실 역시 최대 4인만 들어갈 수 있는 아담한 공간이다. 실내 공간 구석구석에는 이곳을 찾는 이들이 더 편안하게 머물 수 있도록 배려하는 안 원장의 마음이 가득하다.

우리가 몰랐던 구례의 TV 스타

안송원 원장과 생명수한의원은 TV를 통해서도 여러 번 소개됐다. 처음 TV에 나온 건 KBS <한국인의 밥상>이었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안송원 원장의 아내가 섬진강 은어 요리를 선보였는데, 이후 EBS <한국기행>에서 여러 번 섭외 요청이 와 구례를 소개할 때마다 출연했다. 하지만 많은 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 건 SBS의 <TV 동물농장>을 통해서였다.
평소 생명수한의원을 제집처럼 들락거리던 이웃집 개 ‘띨띨이’가 제시간에 오지 않자, 안 원장은 늦은 시각까지 ‘띨띨이’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그런데 고요하기 이를 데 없는 깊은 밤 갑자기 천장 전등에서 누전이 발생해 불꽃이 튀기 시작했다. 잠이 들지 않은 덕분에 그 순간을 목격할 수 있었던 안 원장은 급히 소화기를 들어 진화에 나섰고, 다행히 불길은 곧 잡혔다. 온통 나무로 지은 한옥이었기에 조금만 늦었어도 큰일이 날 수 있었던 이 긴박한 상황은 제작진이 미리 설치해 둔 카메라 덕분에 TV를 통해 생생하게 방영됐다.
하필 그날 늦게 들어온 ‘띨띨이’ 덕분에 큰 화를 면할 수 있었던 안송원 원장은 그 후 ‘띨띨이’를 정식으로 입양해 함께 생활하기 시작했다. 이 사연이 전국적으로 알려지자 “동물에게 따뜻한 마음을 갖고 있는 원장님에게 진찰을 받고 싶다”며 일부러 먼 길을 달려 생명수한의원을 찾는 이들이 생겼다.
그래서 지금도 생명수한의원을 방문하면, 부끄러움이 많지만 안 원장에게만은 열심히 꼬리를 흔드는 ‘띨띨이’를 만날 수 있다. 안송원 원장 역시 그런 ‘띨띨이’를 한곁같이 아껴주고 있다. 덕분에 생명수한의원을 찾는 이들은 다른 어느 곳에서도 경험하지 못하는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낀다. 생명과 생명이 서로를 보듬는, 어머니 산과 가장 잘 어울리는 풍경 속에서 말이다.

# 생명수한의원 해시태그 #

#환자와의 활발한 소통 : 첫 개원 때부터 지키고 있는 안송원 원장의 철칙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자”는 것. 따뜻한 관계 형성을 통해 몸뿐 아니라 마음도 치유할 수 있다고 믿는 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처방에 대한 자세한 설명 : 한약을 처방할 때면 약재의 이름과 효능뿐 아니라 산지에 대한 정보도 자세히 설명한다. 어떤 약을 먹고 있는지, 그것이 어떤 도움이 되는지 알리는 건 의사의 당연한 의무라는 게 안송원 원장의 설명이다.

#부담 없는 비용 : 생명수한의원은 안송원 원장이 소유하고 있는 한옥에서 최소한의 인원으로 운영한다. 덕분에 고정비 지출이 상대적으로 적어 이곳에서 처방하는 한약 역시 낮은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멀리서 구례까지 발걸음한 내원객이 보람을 느끼는 포인트 중 하나다.

지리산에서 만나는 힐링 스폿

화엄사_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는 화엄사는 지리산 권역뿐 아니라 전국적으로도 손에 꼽히는 우아함과 웅장함이 단연 돋보이는 사찰이다. 국내 최대 규모의 목조 건물이자 국보 제67호인 각황전, 국보 제35호인 4사자 3층 석탑 등 다양한 문화재를 품고 있는 화엄사는 사시사철 관광객이 끊이질 않는다. 특히 눈이 내린 날에는 온통 하얗게 뒤덮인 경내 풍경이 마치 피안(彼岸)을 연상케 한다.

노고단_ 산을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지리산 종주를 꿈꾼다. 짧게는 1박 2일, 여유롭게는 2박 3일 혹은 2박 4일 동안 이어지는 지리산에서의 시간들은 다른 어느 산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특별한 기억을 선물한다. 그리고 노고단은 그 종주의 출발점으로 유명하다. 자동차로 성삼재휴게소까지 오른 후 잘 포장된 길을 따라 산책하듯 1시간 30분을 걸으면 노고단에 이를 수 있으니, 평소 등산을 즐기지 않는다 해도 지리산의 웅장함을 느낄 수 있다.

섬진강 대숲길_ 섬진강의 상징과도 같은 대나무숲은 1935년 조성됐다. 자연적으로 군락이 발생한 게 아니라는 점이 흥미로운데, 당시 김수곤이라는 농장주가 조성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사금 채취로 황폐해진 섬진강의 모래가 1935년 홍수로 유실되자 안타까운 마음에 직접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약 1km에 걸쳐 이어진 대나무숲은 해가 밝게 빛나는 날에도 짙은 그림자를 만들어낼 정도로 그 밀도가 높다.

사성암_ 2014년 명승 제111호로 지정된 사성암은 해발 531m의 오산 정상에 세워진 절집이다. 화엄사와 마찬가지로 백제 성왕 22년(544년) 연기조사가 건립했다고 전해지는데, 최초에는 오산암으로 불렸다. 하지만 이곳에서 의상대사, 원효대사, 도선국사, 진각선사 등 네 명의 고승이 정진했기에 이후 사성(四聖)암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자리한 모습도 아름답지만, 섬진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로서의 가치도 높다.

✽ 힐링 스폿 사진 출처_구례군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