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유상(한국한의약진흥원 기획협력실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조선 후기 정조 때의 실학자인 유득공이 지은 《경도잡지(京都雜志)》는 이후 1819년 김매순이 지은 《열양세시기(洌陽歲時記)》, 1849년 홍석모가 지은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 등과 더불어 당시의 풍속과 세시를 기록한 대표적인 책이다. 《경도잡지》의 〈원일(元日)〉에서는 설날에 마시는 술을 세주(歲酒)라 하고, 세주는 데우지 않으니 봄을 맞이하는 뜻을 포함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 세주는 구체적으로 어떤 술이었을까. 2세기 중반 동한의 최식(崔寔)이 지은 《사민월령(四民月令)》을 보면 정월 삭일에 초백주(椒柏酒)를 집안의 가장에게 올려서 장수를 빌었다고 나오며, 남북조 시기 양나라의 종름(宗懔)이 지은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는 정월 첫날에 도소주(屠蘇酒)를 올렸다고 기록되어 있다. 《본초강목》에 기재되어 있는 초백주를 살펴보면, 산초 21알과 동쪽으로 뻗은 측백나무 가지 7개를 술에 담가서 마신다고 했다. 중국에는 잣나무가 없으므로 이때 백(柏)은 측백나무가 맞을 것이다. 한편 도소주는 5세기경 동진의 진연지(陳延之)가 지은 《소품방(小品方)》에 수록되어 있으며 갈홍(葛洪)의 《주후비급방(肘後備急方)》에도 같은 내용이 나오는데 설명은 다음과 같다
설날 아침의 도소주법은 사람들이 온역(溫疫)에 걸리지 않게 한다. 대황 5푼, 천초 5푼, 출, 계, 각 3푼, 길경 푼, 오두 1푼, 발(菝) 2푼. 이 7가지 약을 얇게 썰어서 생사 주머니에 담고 섣달그믐날 한밤중에 우물 속에 바닥 가까이 매달아 두었다가 설날 새벽이 밝아와서 세배를 올리기 전 우물에서 꺼낸다. 설날 아침에 약을 꺼내서 술 속에 넣어두었다가 도소에서 동쪽을 향하고 마신다. 약을 우물 속에 두면 새해를 잘 맞이할 수 있어서 세상에 이 병을 없앨 수 있다. 이것은 화타의 방법이다.
같은 내용이 손사막의 《천금방》에도 나오며, 《동의보감》에는 도소음으로 소개되어 있다. 앞서 말한 《동국세시기》에서도 《형초세시기》를 언급하며 도소주가 세주의 시초라고 했다. 《본초강목》에서 이시진은 ‘도소’가 귀신을 물리친다는 의미라고 했으며, 다른 책에서는 가옥의 종류로 봤다. 약재 구성을 살펴보면, 우선 계, 천초, 오두 등의 더운 계열 약들이 주축이 된다. 계는 육계나무 껍질에서 코르크층을 제거한 것으로 오두와 함께 우리 몸 깊숙한 곳으로부터 양기를 회복시켜 몸을 따뜻하게 하고 외부의 병사를 몰아내는 효능이 있으며, 산초나무 열매인 천초는 특히 속이 차서 생기는 구토, 설사 등을 멎게 한다. 출은 우리말로 삽주인데 습사를 제거해 비위의 소화력을 강화한다. 발은 발계(菝葜)로 청미래덩굴이며 풍습을 없애서 관절통, 이질, 종창 등을 치료한다. 대황은 속에 열이 쌓여서 대변이 통하지 않고 어혈이 생겼을 때 설사를 시켜서 열을 내리고 혈을 돌게 하는 대표적인 약이다. 길경은 폐로 들어가 가래와 농혈을 없애는 작용이 있다. 종합해 보면 역병이 돌 때 우리 몸의 양기를 강화해 면역력을 높이고, 부작용으로 자주 나타날 수 있는 소화기와 호흡기의 각종 염증을 치료하는 약술이라 할 수 있다. 한편 초백주에 들어가는 측백엽도 각종 출혈과 기침, 가래에 효과가 있다.
조선 말과 근세에 거쳐 화원으로 활동했던 안중식(安中植, 1861~1919)이 친구인 위창 오세창의 집에서 새해 첫날 여러 사람과 도소주를 마시는 풍경을 그린 그림이 바로 ‘탑원도소회지도(塔園屠蘇會之圖)’이다. 당시 오세창의 집은 탑골공원 바로 옆인 돈의동에 있어서 원각사탑이 보였기 때문에 탑원이라 부른 것 같다. 도소회란 새해 첫날 함께 모여 도소주를 마시는 행사를 말하며 때는 바로 1912년이었다.
그런데 전반적인 화면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스름 달빛 아래 누각 앞으로 하얀 안개가 깔리고 그 뒤로는 제멋대로 내버려 둔 수풀이 무성하다. 색이 바랜 백탑이 보일 듯 말 듯 저 멀리 서 있는데 그 모습이 쓸쓸하기 그지없다. 누각에 앉아 술을 마시는 사람들도 흥겹기보다는 차분해 보이고 개중 한 사람은 먼 달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마루 위에 모여 앉은 여덟 사람 가운데에 두 사람은 당연히 안중식과 오세창이고 나머지는 지인들이었을 것이다. 오세창은 후일 자신과 가까웠던 손병희, 권동진, 최린 등과 함께 1918년 12월에 다음 해 3·1독립선언을 처음 기획하게 된다.
경술국치를 당한 지 채 1년여밖에 되지 않은 새해 첫날 밤 탑원에 모인 사람들의 마음은 짙은 안개처럼 길을 찾을 수 없이 막막했을 것이고, 이미 나라의 운명은 무성한 잡초와 빛이 바래서 희미해져 가는 탑의 모습과 같았을 것이다. 새해를 맞이하는 힘찬 일출의 광경도 없고 덕담을 나누는 훈훈한 미소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7년 후의 거사를 기약하는 비장함이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한 폭의 그림이 담아내는 의미가 남다르다. 한편으로 생각해 보면 도소주의 효능이 면역력을 높여서 밖으로 침입하는 사기를 몰아내고 안으로는 음습한 기운을 없애니, 그 힘으로 후일 3·1운동의 큰일을 해내지 않았을까.
이 그림을 그린 안중식은 3·1만세운동 직후인 4월에 내란죄로 수감됐고, 이후 병을 얻어 그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시(時)는 춘하추동의 사계절을 뜻하며, 옛날부터 각 계절에 맞는 양생법이 있었다. 예를 들어 《황제내경》의 〈사기조신대론〉을 보면 봄철의 경우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봄 석 달은 묵은 것을 펼치는 때[發陳]라 하니, 하늘과 땅이 모두 깨어나고 만물이 피어나므로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며 뜰을 큰 걸음으로 거닐고 머리를 풀어 내리며 옷차림을 느슨하게 하고, 뜻을 살리는 방향에 두어서 만물을 살리되 죽이지 말며 남에게 주되 빼앗지 말며 상을 주되 벌을 주지 말아야 하니, 이것이 바로 봄기운이 생을 기르는 원리에 상응하는 것이다.
봄에는 만물이 탄생하고 피어나는 때이므로 그에 맞춰 몸과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계절 양생의 방법은 단순해서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사이클을 잘 지키는 것이다. 피어나고 자랐다가 다시 안으로 거두어서 갈무리하는 순환이다. 한겨울 동지가 지나면 안으로 움츠러들었던 양기가 서서히 밖으로 나오기 시작하므로 설날에 초백주나 도소주를 마셔서 봄철의 양생에 도움을 줄 수 있다. 이처럼 계절별로 절기와 풍속에 맞추어 마시던 술을 세시주(歲時酒)라 한다.
대표적인 세시주로 설날의 도소주, 정월 해일(亥日)의 삼해주, 정월 대보름의 귀밝이술, 삼짇날의 두견주, 청명의 청명주, 단오의 창포주, 유두의 유두음, 추석의 신곡주, 중앙절의 국화주, 동지의 동지술, 섣달그믐의 제석술 등이 있다. 《동국세시기》에는 다음과 같이 귀밝이술을 설명하고 있다.
청주 한 잔을 데우지 않고 마시면 귀가 밝아지니, 이 술을 귀밝이술[牖聾酒]이라 한다.
귀는 우리 몸의 정기가 관여하는데, 정기는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안으로 잘 갈무리했다가 필요한 경우에 양기의 형태로 나와 쓰이게 된다. 추운 계절인 겨울에는 기운이 응축되므로 정기를 갈무리할 수 있고, 해가 바뀌어 음력 정월이 되면 천지자연의 양기가 싹트므로 정기도 조금씩 밖으로 나와 활동하게 된다. 이 시기에 도소주, 삼해주, 귀밝이술 등을 마셔서 정기의 활동을 돕는 것이다. 단, 술을 데우지 않고 차게 마시는 이유는 술의 기운으로 인해 정기가 지나치게 밖으로 나오는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새해가 밝아올 때 반드시 세주를 마셔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마침 술자리가 생길 때 한 해 동안의 건강과 안녕을 생각하면서 의미 있게 마신다면, 계절마다 세시주를 담갔던 선조들의 지혜를 따라갈 수 있지 않을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