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속 한의약
조반 부부 초상을 통해 본
‘건강한 입술’

글. 윤소정(한의사)

조반 부부 초상, 작가 미상, 조선 초기, 비단에 채색, 각 70.6×88.5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문신 조반과 그의 부인을 그린 초상이다. ‘조반 부부 초상’은 원본을 보고 다시 그린 이모본으로 추정되며, 비교적 보존이 잘 되어 색채가 선명하다. 조반과 부인이 각각 다른 의자에 앉아 있는 독립된 초상으로, 족자 형태다. 선묘 위주로 간략하게 그렸으며, 부부 모두 빨간 입술이 인상적이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여성의 초상화는 극히 드물다. 조선의 19대 왕 숙종은 왕비인 인현왕후의 초상화를 그리도록 명했으나, 사대부 화가였던 김진규를 비롯해 여러 대신들의 반대로 결국 그리지 못했다고 한다. 이는 조선시대 전반을 지배하는 유교 이념의 영향으로 ‘남녀칠세부동석’이란 말처럼 남성인 화가가 여성 게다가 중전을 그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점 남아 있는 여성의 초상화는 주로 부부를 함께 그린 것이다. 부부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을 그린 부부병좌상은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고려 말에서 조선 초 사이에 주로 제작됐다. ‘공민왕과 노국공주 초상’, ‘박연 부부 초상’, ‘하연 부부 초상’ 등이 지금까지 전해진다.

입술의 색깔은 기혈 성쇠의 지표

입술은 점막이 얇고 투명해 색깔 등의 변화가 뚜렷이 드러난다. 이러한 특징 덕에 전신의 기혈 상태를 보여주는 주요 지표가 된다. 기혈(氣血)이란 기와 혈을 함께 부르는 말로, 기(氣)는 힘과 기운을, 혈(血)은 피를 뜻한다. 즉 기혈은 장부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에너지원으로, 기혈이 원활하게 순환할 때 건강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건강한 사람의 입술은 적당한 두께로 도톰하고 좌우의 균형이 잘 맞으며 붉고 윤택하다. 입술이 붉고 윤기가 나는 것은 비위의 기운이 충분하고 기혈의 영양 상태가 좋은 것을 의미한다. 특히 아이들의 경우 비위가 건강한 것은 성장과 직결되므로, 건강한 입술의 색택이 나타나는 아이는 튼튼하게 자란다. 이에 비해 입술이 담홍색인 사람은 비위가 허약하거나 기혈이 부족하다. 또한 입술과 입안이 모두 벌겋고 부은 것은 열이 심한 것이고, 입술과 입이 검푸른 것은 찬 기운에 상한 것이다. 육부의 정기가 나타나는 입술 주위의 색은 살짝 하얗게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 육부는 주로 음식의 소화 흡수와 관계되는 6개의 부다.
이렇듯 입술의 색으로 건강을 판단할 수 있는 것은 입술이 비위, 즉 소화기관의 상태와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입술은 비에 속하고, 비는 입을 주관한다

《동의보감 외형편 2권: 구설》에는 다음과 같은 구절이 있다. 여기서 구는 ‘입’, 설은 ‘혀’를 의미한다. 입술은 비에 속하니 비에 풍(바람)이 있으면 입술이 떨리고, 한(추위)이 있으면 들리거나 오그라들며, 열이 있으면 건조하고 갈라진다. 혈이 허하면 혈색이 없어지고, 기가 울체되면 창*이 나고 붓는다. 그러므로 입술에 병이 있으면 증상에 따라 비를 치료하는 것이 좋다.
한의학에서 입술은 비에 속하고, 비는 입을 주관한다. 여기서 비는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비장**, 즉 지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한의학에서 말하는 비장은 소화된 음식물로 기와 혈을 만드는, 훨씬 포괄적인 의미를 가진다.
《동의보감》에서는 비위에 대해 “비(脾)는 원래 ‘시키다, 돕다(俾)’는 의미로, 위장의 아래에 있으면서 위기(위장의 기운)를 도와 음식을 잘 소화시키도록 한다”, “위는 받아들이고 비는 소화시킨다”라고 설명한다.
음양오행의 원리로 보자면, 비장(오장의 하나)은 위장(육부의 하나)과 짝을 이루는 장과 부다. 비와 위, 이 두 가지가 서로 돕는 장부의 관계를 맺어 소화에 관여하는 것이다. 위가 음식물을 받아들이는 그릇이라면, 비는 이것을 실제적으로 소화시킨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말인 ‘비위가 좋다’, ‘비위가 상하다’, ‘비위를 맞추다’, ‘비위에 거슬리다’ 등 이렇게 비위를 묶어서 생각하는 것은 모두 한의학에 근거를 둔 표현이다.

* 창(瘡): 부스럼, 종기 등 피부에 나는 질병. 심하면 고름이 생기고 짓무른다.
** 비장(spleen): 왼쪽 신장과 횡격막 사이에 있으며, 혈액 속의 혈구 세포를 만들거나 제거하는 데 관여한다.

입의 상태로 예측하는 질병

오장육부 중에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장부는 없지만, 특히 비위는 소화를 담당하고 기혈을 만드는 곳이기에 그 중요성이 남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입술을 살펴서 병의 예후를 추측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병이 있을 때 입술이 바짝 말라도 색이 붉다면, 병이 아직 깊지 않고 예후가 좋을 가능성이 있다. 반면 색이 검은 것은 병이 위중하고 예후가 나쁘다. 또한 입술이 허옇더라도 윤기가 있으면 예후가 좋지만, 입술이 허여면서 마른 뼈같이 되면 죽는다.
중병에 걸려도 스스로 음식을 섭취하고 소화시킬 수 있다면 체력을 회복하고 기운을 낼 수 있다. 하지만 사소한 병이라도 먹지 못한다면 병을 이겨내기 어려워진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비위를 건강하게 관리해야 하는 이유이고, 입술의 상태로 전신 기혈의 상태와 병의 예후를 알 수 있는 근거다.

윤소정

여해한의원에서 일하고 있다. 의미 있는 의학이자 과학의 가치를 지닌 한의학을 많은 이들과 나누고 싶어, 쉽고 재미있는 한의학을 알리기 위해 노력 중이다. 《중년을 위한 동의보감 이야기》, 《한의대로 가는 길》, 《얼굴과 몸을 살펴 건강을 안다》, 《유비백세》를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