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유상(한국한의약진흥원 기획협력실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세 가지가 잘 어울려 딱 들어맞을 때 ‘삼합’이라고 한다. 음식에 주로 ‘삼합’을 사용하는데 대표적인 예가 삭힌 홍어와 돼지고기 수육, 묵은 김치를 함께 먹는 ‘홍어삼합’이다. 술에도 삼합이 있다. 1800년대 초 조선시대에 저술된 것으로 추정되는 조리서인 《주찬》에는 ‘삼합주(三合酒)’라는 술을 담그는 법이 기재되어 있다. 《주찬》은 한문 필사본으로 전해지며 〈조주방(造酒方)〉 편에서 80종의 주조법을 기술하고 있다.
찹쌀 1말, 차조 1말, 메밀 1말, 누룩 1말로 술을 빚어 익기를 기다렸다가 다 익으면 소주로 고아낸다. 꿀 1되, 후춧가루 2돈, 천초가루 2돈, 건강가루 2돈을 소주에 넣어 중탕해서 쓴다. 중탕할 때 찹쌀을 중탕 그릇 위에 약간 얹어서 그 쌀이 익어 밥이 되면 그만하고 내고, 매우 가는 체로 다시 걸러서 따뜻한 곳에 두고 때때로 조금씩 마신다. 이 술은 장기(瘴氣, 음습한 나쁜 기운)를 물리치고 습증으로 기가 꺼진 것을 치료하며 비위를 보하는 데 가장 요긴하다.
여기서 삼합은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우선 찹쌀, 차조, 메밀의 삼합인데 여러 본초서와 《동의보감》을 보면 성미가 모두 서늘하면서 단맛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되어 있다. 우선 단맛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는 양기를 북돋을 수 있다는 것이고, 기운이 서늘하다는 의미는 섭취 후 몸에서 열이 나지 않으며 한편 소화하기에 조금 부담이 간다는 뜻도 담고 있다. 하지만 세 곡류는 조금씩 다른 점도 가지고 있다. 찹쌀은 밥을 지어 먹을 때는 기운이 서늘하지만, 술로 담그면 오히려 성질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아마도 속에 양기를 많이 함축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차조는 가슴이 답답하고 갈증이 있으며 잠이 안 올 때 쓰고 장의 기능도 좋게 한다. 메밀은 장을 편안하게 하고 기운을 돋우는 동시에 정신을 맑게 하는 특징이 있다. 서로 비슷하면서도 조금씩 색다르게 절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두 번째 삼합은 꿀, 후춧가루, 천초가루, 건강가루 등이다. 여기서 후춧가루와 천초가루는 성질이 비슷해 하나로 볼 수 있고, 아니면 꿀을 제외하고 나머지를 삼합으로 볼 수도 있다. 참고로 천초가루는 초피나무의 열매껍질을 가루로 만든 것이다. 후춧가루와 천초가루는 모두 배가 차고 아프며 설사할 때 주로 쓴다. 건강은 생강을 말린 것인데 몸을 따뜻하게 하며 폐로 따뜻한 기운을 올려서 기침과 가래를 없애준다. 꿀은 기운을 나게 하고 소화를 도와서 몸에 진액이 돌게 하며 열을 내리는 작용이 있어서 나머지 세 가지 가루의 효능을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옛사람들이 삼합주를 담가 먹은 목적은 분명하다. 늘 몸이 차고 건조하며 기운이 없어서 소화도 잘 안 되는 사람이 평소에 몸 관리를 하기 위함이었다. 두 번째 삼합에 방점이 있으며, 첫 번째 삼합은 그것을 돕는 역할을 한다. 술을 소주로 고아내는 것도 의미가 있고, 중탕하는 것도 약재의 기운을 다 날려버리지 않도록 하는 뜻이 있다.
비슷한 효능으로 속을 따뜻하게 하는 후춧가루가 들어간 전통 약술이 몇 가지 더 있다. 1809년에 빙허각 이씨가 가정 살림 전반을 한글로 자세하게 기록한 《규합총서》에는 ‘오종주’라는 술을 담그는 방법이 나온다. 오종주라는 이름은 후추, 계피, 생강, 대추, 잣 다섯 가지를 넣기 때문에 붙여진 것이다. 여기서 후추, 계피, 생강은 몸을 따뜻하게 하는 효능이 있고, 대추와 잣은 이를 돕는 역할을 한다. 대추는 비위로 들어가서 소화를 돕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독성을 완화시키는 작용이 있다. 잣도 정신을 안정시키고 장의 소화를 돕는다. 역시 밑술을 담근 후 소주를 부어서 만들며 대추와 잣을 쓴 것을 보면, 삼합주보다 소화력을 돕는 효능을 더 가지고 있다.
《규합총서》에는 ‘한산춘’이라는 술이 또 하나 있다. 춘주라는 명칭을 보면 청주 계열로 보이지만, 주조법을 보면 술을 담근 후에 역시 소주를 부어서 만든 것이다. 술을 담글 때 들어가는 재료는 잣, 후추, 대추 등이다. 효능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아마도 몸을 따뜻하게 하는 목적으로 사용한 듯하다.
조선 중기인 1540년에 김수(金綏)와 그의 손자 김령(金坽)이 지은 《수운잡방》이라는 조리서가 있다. 《수운잡방》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온전한 상태의 단행본 조리서로 한문 필사본이다. ‘수운’은 《주역》 수괘(需卦)에서 유래한 표현으로 격조 있는 음식 문화를 가리킨다. 이 《수운잡방》 하편에 ‘건주(乾酒)’라는 술 담그는 방법이 나온다. 참고로 건주는 묽지 않은 된술이라는 뜻이다.
건주는 백병을 다스리는 처방이다. 찹쌀 5말로 밥을 짓고, 좋은 누룩 7근 반에 부자 5개, 생오두 5개, 생강 또는 건강, 계피, 촉산 각각 5냥씩을 섞어 모두 같이 찧어서 가루를 낸다. 이것으로 일반적인 방법대로 술을 빚어서 독 아가리를 봉해 두면 7일 만에 술이 익는다. 술지게미를 짜내어 꿀에 반죽해서 계란 크기의 환을 만들어 두었다가 물 1말에 넣으면 바로 좋은 술이 된다. 춘주를 담글 때 만들면 더욱 좋다.
추가로 들어가는 재료 중에 촉산은 아직 고증이 안 됐고, 단지 《강희자전》에 복숭아와 비슷한 열매가 달리는 나무로 이 열매를 염장하면 매실처럼 시다고만 설명이 되어 있다. 오두는 천오라고도 하며 미나리아재빗과 식물 바꽃의 덩이뿌리이며, 부자는 그 덩이뿌리에서 다시 자란 자근을 말한다. 부자와 오두는 독성이 강하고 매우 뜨거운 성질을 가지고 있다. 두 약재 모두 몸이 차갑고 아프고 습한 것을 치료하며, 특히 부자는 우리 몸의 양기가 극도로 약해져서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위급한 상황에 사용하기도 한다. 독성이 있기 때문에 부자의 경우 우리나라에서는 동변에 담갔다가 감초, 검은콩과 법제한 경포부자를 주로 사용한다. 건주가 백병을 다스린다는 의미는 우리 몸에서 양기가 충만하고 원활히 순환하게 되면 그와 관련된 많은 질병과 증상들이 치료되거나 완화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처음부터 치료를 목적으로 담근 술임을 알 수 있다.
원래 체질적으로 양기가 부족하거나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넘어오면서 한기가 강해지면, 오한을 자주 느끼고 손발이 차며 피부와 모발이 건조해지고 공기와 접촉하는 부분에 알러지가 생기며 감기에 자주 걸리게 된다. 이런 경우에 양기를 북돋아야 하는데, 주로 따뜻하고 뜨거운 성질의 음식과 약을 먹게 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아서 위에서 말한 증상들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양기는 다시 우리 몸의 정기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정기는 근본적이고 순도가 높은 정밀한 기운을 말한다. 즉 무엇을 해도 양기가 제대로 회복되지 않는다면 정기의 보충을 추가적으로 고려해 봐야 한다. 《동의보감》과 《주찬》에는 동일하게 ‘신선고본주’라는 술이 수록돼 있으며, 이름은 신선이 수행하는 것처럼 근본을 견고하게 한다는 의미다. 통상적인 방법에 맞게 술을 빚는 과정에서 우슬, 하수오, 구기자, 천문동, 맥문동, 생지황, 숙지황, 당귀, 인삼, 육계 등의 약재와 찹쌀을 추가한다. 《동의보감》에는 비슷한 구성의 다른 고본주도 수록돼 있다.
정기가 충실해지면 몸이 전반적으로 건강해져서 질병을 예방하고 오래 살며 정신을 맑게 유지하고 몹쓸 병에 걸리더라도 수월하게 회복할 수 있다. 원래 정기는 규칙적인 생활과 편안한 마음가짐을 통해서 길러지지만, 보조적으로 약재와 음식을 먹는 방법이 있다. 특히 요즘 같은 사회에서는 근본적으로 정기를 기르기가 쉽지 않아서 보조적 수단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으니 옛사람들의 지혜를 빌려야 한다. 하지만 다들 여유가 없어 약술 빚어 먹을 겨를이 없다. 누군가 큰 뜻을 가지고 베풀어 주기를 기다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