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그림. 최굴굴(한의사)
“쉬어야 낫습니다”라는 말을 꿀꺽 삼킨다.
고작 그런 소릴 들으려고 나를 찾아온 게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옆에서 쉬란다고 쉬었을 분이면 이렇게까지 아프지도 않았을 거고 분명 쉴 수도 없는 상황일 거다.
“의사가 쉬어야 한대!” 하면서 집에 가 온갖 히스테리를 부릴지도 모른다.
그동안 너무 당연하게 해 왔던, 나를 쉬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괜히 원망스럽고 버겁게 느껴질 테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감성 진료를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환자분. 몸이 이렇게 될 때까지 어찌 버티신 건가요?”라는 말이면 환자와 보호자 울리는 건 일도 아니지만,
이런 과한 공감은 죄책감 들게, 후회되게, 누군가를 원망하게, 미안하게 만드는 말들일 뿐이다.
그러므로 말을 아끼고 “그간 고생하셨네요” 정도의 위로를 건넨다. 그렇게만 해도 마음은 풀어진다.
그리고 나는 힘이 나는 처방을 지어주면 된다.
의사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MBTI 유형이 ISTJ라고 한다.
‘너 T야?’라는 밈이 유행할 정도로 공감 능력이 떨어지는 상종 불가 인간으로 묘사되는 것이 T형 인간인데,
아픈 사람을 돌보는 의사에게서 왜 T가 많을까?
(사실 이에 대해서는 ISTJ가 수능 점수가 좋은 모범생 타입의 유형이라 그런 것 같다는 것이 내 솔직한 생각이다.)
하지만 앞으로의 치료 과정과 예후를 고지하고,
환자를 격려해 장기간의 치료가 마무리될 때까지 잘 이끌어가는 일련의 과정이 진료라고 본다면 T만한 것도 없다.
눈물을 흘리고 내 일처럼 여기지 않는다고 해서 공감을 못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 도움이라도 주어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는 것이
진짜 공감이라 생각하는 T는 오늘도 진료실에서 많은 환자들의 안녕을 위해 노력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