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오주이, 사진. 이일영
북한 의과대학에서 고려의학(한의학)을 전공하고 교수로 재직하다 2015년 남한으로 온 최한성 씨가 2022년 2월 한의사 국가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어떤 약재든 구할 수 있는 남한의 좋은 환경에 북한에서 쌓은 탁월한 침술을 더해 환자를 치유하고 있는 그를 만나본다.
한국에 와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병원에 갔을 때 양방 병원의 현대적이고 발전된 모습에 깜짝 놀랐습니다. 한의원도 마찬가지였고요. 그때 한국의 의료기관에 대해 아주 좋은 인상을 받았습니다. 치료 방법이 궁금해서 일부러 한의원에 찾아가 치료도 받아봤어요. 설비도 좋고 진맥 등 모든 것을 잘하는데, 침술이 너무 다르더군요. 그 부분에서 제 역할이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탈북할 때부터 한국에서 한의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제 경험을 살려 도전해 보기로 했습니다.
한국 생활에 적응하는 데도, 국가시험을 준비할 때도 가장 어려웠던 점은 학연이나 지연이 없어 소통하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한의대를 졸업하지 않고 한의사가 되려면 국가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검증받아야 하는데, 검증에 필요한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 못해 안타까웠습니다. 한국보건의료인국가시험원(국시원), 국가정보원, 보건복지부 등에 편지를 보내 제 상황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청했는데, 다행히 국시원에서 한의사 교수님들께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검증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 소통이었습니다. 외래어가 섞인 한국말, 북한과 다른 어휘 표현을 알아듣기 힘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 ‘오수혈’(손발 끝에서 팔꿈치 및 무릎 관절 사이에 있는 혈)이라고 부르는 용어가 북한에서는 ‘오유혈’이라고 부르는 식이죠. 질문을 이해하기 힘들다 보니 첫 번째와 두 번째 검증에서 떨어지고, 3년 만에야 승인을 받았습니다. 이후 국가시험을 치렀는데, 마킹이 익숙하지 않다 보니 첫 번째 시험에서 문제를 다 풀고도 마킹을 제대로 못해서 떨어졌어요. 두 번째 시험에서 합격해 결국 5년 만에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다르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북한에는 중의학이 없는데, 남한의 한의학은 중의학을 많이 받아들여 좀 더 폭이 넓은 것 같습니다. 북한에서는 한의학을 우리의 세계적 유산인 《동의보감》, 《향약집성방》, 《의방유취》를 바탕으로 한 민족의학이라고 해서 ‘고려의학’이라고 부릅니다. 침술의 수준은 중국보다 북한이 더 높습니다. 남한에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침을 놓을 때는 환자의 병 상태에 따라 침날의 굵기, 깊이, 시간이 다르고, 환자의 병이 실증인가 허증인가에 따라 보사법이 다르죠. 침을 뽑을 때도 여러 방법이 있고요. 이에 따라 치료 효과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따라서 침을 놓을 때는 술기를 연마하는 게 중요합니다. 침을 가지고 어떻게 재주를 부리느냐에 따라 효과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남한은 약초 시장의 활성화 등 한약 제조 환경이 잘 마련되어 있어 다양한 처방이 가능한 반면 북한은 한약이 부족하다 보니 침술 처방과 술기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북한은 남한에 비해 한양방 협진이 잘 돼 있습니다. 대학에서도 교수들 간 소통이 잘 되고, 한양방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하며 같은 교정에서 공부하고 함께 식사를 합니다. 또 모든 양방 병원에 내과, 외과처럼 고려학과가 있어 서로 협진하고 소통을 잘하기 때문에 환자를 치료할 때 효율이 높습니다.
북한에서 사용하던 침법과 술기는 물론 그곳에서 침으로 할 수 있는 치료를 현재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많이 활용하고 있습니다. 침술에 대해 충분한 지식을 겸비하고 옳은 술기와 함께 철저하게 원칙을 지키며, 조심히 다루면 침은 아주 효과적인 치료 방법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저의 지론입니다. 특히 북한에서는 의사는 물론 환자도 침술에 대한 선호도가 높습니다. 신기한 경험을 하나 말씀드리면, 북한에서 치핵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는데요. 치핵 때문에 외과수술을 4차까지 받은 환자였는데, 침술로 큰 효과를 봤습니다. 치핵의 원인은 변비와 설사인데, 이것이 개선되지 않으면 수술을 해도 재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때 이백혈(손목 쪽에 있는 혈)에 침을 꽂고 독맥의 백회(보법), 지양, 중추, 현추, 삼초수혈에 변비는 사법(20분 유침하면서 5분에 한 번씩 염전), 설사는 보법(5~15초)으로 침을 써야 합니다. 치질 출혈에 대해서는 위중 척택에 침자하면 신기하게도 침 한 번에 항문 부위로 빠져나와 있던 내치핵3기로 탈항과 출혈이 심해 괴로워하던 환자의 치핵이 환납된 것을 보고 저도 환자도 깜짝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때 침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느꼈습니다. 그후에도 치핵 환자를 많이 치료했는데 효과가 정말 양호했습니다.
‘중심성 장액성 맥락막염’이라는 난치병 환자를 치료한 적이 있습니다. 눈에 물이 차서 앞이 잘 안 보이고 찌그러져 보이거나 작게 보이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치료를 하지 않으면 황반변성으로 이어져 실명까지 가는 질환입니다. 이 병으로 고생하시던 환자분이 20일가량 침을 맞고 나았습니다. 지금도 눈 상태가 좋지 않으면 가끔씩 방문해서 침을 맞습니다. 그분 덕분에 비슷한 증상을 앓고 있는 환자분들이 많이 내원했습니다. 맥락막염 환자는 시력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감과 불안, 스트레스가 심합니다. 섭생과 스트레스 조절, 시력장애를 일으키는 요소들을 차단하면서 침구 치료 등으로 꾸준히 치료하고 관리하면 충분히 고칠 수 있는 병인데, 난치병이라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생활하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안과 전문 한방병원을 세우는 것이 목표입니다. 개인적으로 어려서부터 시력이 나빠서 눈에 대한 애착이 있었고, 북한에서도 안과 질환을 많이 치료했습니다. 특히 눈병의 시초인 결막염 환자가 많았는데, 귀에서 피를 뽑으면 효과가 바로 나타나죠. 눈이 시원하고 밝아진다고 합니다. 눈 질환도 변증을 잘하고 그에 맞는 한약 처방과 침구법을 병행해 치료하면 좋은 효과를 거둘 수 있습니다. 앞으로 남한의 한약 처방과 북한의 침술을 잘 병행해 치료 효과를 극대화하고, 양쪽의 장점을 두루 살린 남북한 통합 한의사로 자리매김하고 싶습니다. 또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국민 건강 증진을 위해 더욱 노력하고 많은 진료 성과로 보답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