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약 人
나의 부캐는 ‘철인 3종 프로선수’
정나래 서초나래한의원 원장

글. 오주이, 사진. 신성욱

수영, 사이클, 달리기 중 하나도 제대로 하기 쉽지 않은데, 한 경기에서 3종을 모두 소화하는 이들이 있으니 그야말로 철인이라 부를 만하다. 국내에서 철인 3종(트라이애슬론) 장거리 여자 프로선수는 단 세 명뿐인데, 그중 한 명이 정나래 원장이다. 지금은 출산으로 잠시 출전을 뒤로 미뤘지만, 자신의 부캐(부 캐릭터)를 다시 만나기 위해 오늘도 훈련장을 찾는다.

언제부터 철인 3종 프로선수로 활동했나요?

철인 3종의 경우 단거리는 엘리트부, 장거리는 프로선수로 나뉩니다. 저는 장거리 하프 선수로, 수영 1.9km, 사이클 90km, 달리기 21km를 소화합니다. 프로선수로 활동하게 된 건 2017년 아마추어로 출전한 하와이의 ‘아이언맨 월드 챔피언십(IMWC)’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 대회는 프로선수에게는 꿈의 무대라고 할 수 있는데, 당시 동양권에서 여자 프로선수로 출전한 사람이 한 명밖에 없었습니다. 당시 ‘나도 하프 챔피언에 도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을 갖게 됐고 다음해 프로선수로 전향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여러 대회에 열심히 나가서 포인트를 쌓으면 IMWC 출전 기회가 생겼어요. 하지만 중간에 제도가 바뀌었고, 코로나 팬데믹이 시작됐죠. 이후 임신과 출산 등으로 운동을 잠시 쉬어야 했고요.

한의원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선수로 활동하기가 쉽지 않았을 텐데 당시 하루 일상은 어땠나요?

대개 오전 4시 40분께 일어나서 5시쯤 본격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전에 훈련이 있는 날은 오후 3시에 진료를 시작했고, 오후에 훈련을 하는 날은 오후 3시에 진료를 끝냈습니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기가 금요일이나 토요일에 열리기 때문에 가장 환자가 많은 금요일과 토요일에 병원을 비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훈련을 병행하다 보면 시간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고, 병원 운영에도 영향이 없지 않죠. 하지만 남들과 비교하거나 적절히 균형을 맞춰 살기보다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에 집중해서 기량을 향상시키고 목표를 이루고 성과를 내는 것에 더 만족하는 편입니다.

원래 운동을 좋아했나요? 원장님이 생각하는 운동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워낙 움직이는 걸 좋아하고 승부욕이 있는 편입니다. 대학 때 권투를 시작했고, 마라톤 대회에도 나갔어요. 유도도 잠깐 배웠고요. 졸업 후 권투선수로도 활동했지만, 당시에는 선수로 등록해야 대회에 나갈 수 있어서 본격적으로 선수로 뛰었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이후 생활체육대회가 생겨서 몇 번 대회에 나갔는데, 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재활을 하면서 그만뒀습니다. 좀 더 안전한 운동을 찾다가 친구 소개로 철인 3종을 알게 됐습니다. 철인 3종이 얼핏 거칠어 보이지만 비접촉성 스포츠거든요. 안전한 대신 자전거 낙차나 잔부상이 많기는 하지만요.(웃음) 운동의 매력은 충분한 몰입감과 몸을 움직이는 감각으로부터 오는 쾌감, 또 다양한 방법으로 자연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이에요.

아무래도 현역 운동선수나 운동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방문할 것 같은데 어떤가요?

실제로 현역 선수들도 있고, 마스터즈 대회 출전 등 생활체육을 즐기는 분들이 많이 찾습니다. 특히 마라톤과 트레일 러닝(산악 달리기) 하는 분들이 많은 편입니다. 운동을 하다가 삐끗하거나 사이클 낙차 등으로 다친 분들도 있지만, 처음 운동에 입문해서 몸이 만들어지는 시기에 부상으로 오는 분들도 꽤 있습니다. 갓 시작한 분들은 부상에 대한 걱정이 크고, 오랫동안 운동하신 분들은 몸 전반적으로 양기가 쇠해 허약한 경우가 많습니다.

다양한 운동 경험이 환자를 진료하는 데도 도움이 되나요?

그럼요. 체력적인 도움은 물론 몸을 쓰고 움직이는 감각이 발달해 분명 이점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진료를 볼 때 손가락을 움직여서 침을 놓고 팔을 쓰는 것도 몸을 움직이는 감각인데, 운동을 하면 이런 감각들이 훨씬 발달하기 때문에 좀 더 예민하게 파악할 수 있습니다. 부상에 따라 환자의 잘못된 동작이나 습관 등을 쉽게 알아차린다거나 문제에 대해 좀 더 본질적인 진단과 예측이 가능하기 때문에 환자의 통증이나 상태 등을 보다 잘 이해하고 그에 맞는 치료를 할 수 있죠. 국부적인 것에 집중하기보다는 좀 더 깊숙이 한 단계 더 들어가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또 경험자로서 부상 관리나 보강 운동에 대해서도 충분히 조언할 수 있고요. 꿈과 로망이 삶의 추동력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왜 그런 걸 하죠? 하지 말고 쉬세요”, “돈 안 되는 일을 왜 그렇게 열심히 하세요?”와 같이 환자의 욕구와 거리가 먼 이야기나 접근은 하지 않죠.

침, 뜸과 같은 한의 치료와 한약이 운동 선수에게 어떤 도움을 줄까요?

침이나 부항 치료는 조직의 염증 치료, 빠른 조직 재생에 확실히 도움이 됩니다. 마사지로는 심부까지 접근하기 어렵지만, 침은 피하로 바로 접근이 가능하니까요. 저는 약침을 많이 쓰는데, 복용하는 것보다 간편하고 효과가 좋습니다. 다양한 약침을 개발해 주시는 원장님들께 새삼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또 한약은 환자 상태에 따라 조절해서 쓸 수 있기 때문에 부작용이 덜하다는 면에서 추천할 만합니다.

운동을 즐기는 분들께 한의사로서 조언 한 말씀 부탁드려요.

몸은 기계가 아니에요. 철인 3종을 하는 분들은 참 부지런한데, 늘 명심해야 할 것은 휴식과 훈련을 함께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종목 운동은 몸이 만들어진 만큼 기량을 발휘합니다. 유행에 따라 여러 건강기능식품을 복용하는 것도 도움이 되겠지만, 비용 대비 효과가 약한 것 같습니다. 몸을 만들 때는 한약과 치료를 병행하는 게 중요합니다.

운동 선수로서의 계획, 한의사로서의 포부를 말씀해 주세요.

저는 복싱으로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을 땄습니다. 전문스포츠지도사 자격증은 선수 경력 4년 이상 자격으로 취득했고요. 그리고 철인 3종으로 국제코치자격증을 땄죠. 지금은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철인 3종에서 어떤 수준이나 목표를 가지고 대회를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은 못 하고 있습니다. 마음은 늘 이전보다 잘하고 싶지만, 운동 목표를 정할 때는 현실적으로 냉정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죠. 한의사로서는 일과 삶이 하나로 통합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저를 찾아오는 환자들과 즐겁게 소통하며 함께 운동하고 싶습니다. 대회장에 가면 환자와 치료자가 아니라 같은 운동을 하며 꿈을 이뤄가는 친구들이거든요. 저의 말과 글이 좀 더 향상되면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 경험과 이론을 나누는 세미나 형식의 자리도 마련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