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윤소정(한의사)
조선 말기의 애국지사인 면암 최익현(1833~1906)은 “내 목을 자를지언정 머리칼은 자를 수 없다”라고 주장한 유학자이자, 7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의병을 일으킨 실천적 활동가이기도 했다.
초상화는 모관(털 모자)을 쓴 최익현의 모습을 그렸으며, 오른쪽 위에 ‘면암 최 선생 74세 초상 모관본’이라 쓰여 있다. 최익현의 또 다른 초상은 사모관대를 한 것으로, 벼슬아치가 쓰던 모자와 관복을 입고 화문석 위의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다. 조선 시대 관리를 그린, 우리에게 익숙한 형태의 초상이다. 두 작품 모두 화가 채용신(1850~1941)이 그렸다.
서양이나 다른 나라의 그것에 비해 우리 조상들의 초상화에서 두드러지는 특징은 놀랍도록 정직하게 있는 그대로 그렸다는 점이다. ‘터럭 하나라도 같지 않으면 다른 사람이다’라고 하여, 작은 털 한 가닥까지 실제 인물과 같게 정확히 담으려고 노력했다.
특히 두툼한 옷을 입고 털 모자를 쓴 최익현의 초상은 이마와 눈가의 주름, 피부의 검버섯까지 사실적으로 묘사돼 있다. 이 초상은 그의 생존 시에 그려진 유일한 작품인데, 의병장으로 활동했던 시기의 강직한 모습을 보여준다. 모관의 털을 비롯해 모자 아래로 살짝 나온 머리카락, 코와 턱의 수염, 눈썹 등을 수없이 많은 선으로 집요하고 탁월하게 표현한 것이 돋보인다. 다만, 숱이 적고 하얗게 센 콧수염과 턱수염에서 기울어져 가는 나라를 지켜보던 그의 아픔과 고뇌를 읽을 수 있다. 일제에 의한 감금 중 단식 끝에 숨을 거둔 말년의 고초가 엿보이기도 한다.
눈, 손톱, 발, 피부 등 건강을 알려주는 척도는 여러 가지 있다. 털 역시 건강 상태를 대변한다. 『동의보감』의 「외형 편」에서도 ‘모발’을 다루고 있다. 「외형 편」은 눈, 코, 입, 귀 등 몸의 겉에서 관찰되는 부분의 의학적 기능과 그곳에 생기는 질병에 관해 서술한 부분이다.
건강한 눈썹은 너무 가늘지 않고 어느 정도 굵기가 있다. 광택과 윤기가 있으며, 색이 짙고 길다. 일반적으로 눈썹이 진한 사람은 체질이 튼튼하고, 숱이 적고 듬성듬성 난 사람은 약하다. 정력도 떨어지는 편인데, 이때 정력이란 남성의 성 능력뿐 아니라 인체의 정기와 에너지를 포괄한다. 머리카락이 유연하지 않고 뻣뻣하며, 색이 누렇고 푸석푸석한 것 또한 정기가 약한 것이다. 나이가 들면 머리숱이 적어지고 검은 머리가 희어지는 것도 인체의 정기가 쇠약해지기 때문이다.
한의학에서는 머리카락을 ‘혈(血)의 여분, 나머지’라고 한다. 혈은 혈액(피)으로, 온몸을 끊임없이 순환하면서 영양 작용을 한다. 영양분이 부족해지고 혈이 허해지면 탈모가 나타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젊은 사람이라도 다이어트를 심하게 할 경우 머리카락이 빠지기도 한다. 탈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머리털이 윤기 없이 메마르고 푸석해지기 쉽다. 실제로 머리카락의 주성분은 케라틴이라는 단백질이며, 그 밖에 아연, 구리, 마그네슘 등의 원소도 미량 포함돼 있다.
머리카락에는 수많은 인체의 정보가 담겨 있다. 마약 검출, 중금속 검사를 할 때도 머리카락을 이용한다. 친자 확인을 비롯한 유전자 DNA 검사 또한 가능하며, 질병을 진단하기도 한다.
한의학에서는 머리털과 눈썹, 턱수염이 각기 다른 장부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머리털은 심장에 속하며, 머리털이 위로 향해 나오는 것은 화(火)의 기운 때문이다. 눈썹은 간에 속하고, 목(木)의 기운을 받아 옆으로 향해 나온다. 턱수염은 신장에 속하는데 수(水)의 기운을 받기 때문에 아래로 향한다. 불길이 위로 솟고, 나뭇가지가 옆으로 자라고, 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모습을 머리털과 눈썹, 턱수염이 자라는 모양과 연결시키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오행이라 하는데, 세상 만물을 목(나무), 화(불), 토(흙), 금(금속), 수(물)의 다섯 가지로 나누는 것을 뜻한다. 심장과 화, 간과 목, 신장과 수를 연관시키는 것도 오행이다. 이 외에도 오장의 나머지인 비장은 토, 폐는 금과 각각 관련이 있다.
그러므로 늙어서도 턱수염만 희어지고 눈썹과 머리칼이 희어지지 않거나, 머리칼만 희어지고 눈썹과 턱수염이 희어지지 않는 것은 오장의 기능이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오장 중에서 일부분이 성해지거나 쇠약해진 것이다.
여기서 신장의 기운이 약하다는 것은 꼭 콩팥에 직접적인 병(신장염, 신부전 등)이 생겼다는 의미는 아니다. 간이나 심장에 비해 신장으로 향하는 흐름이 원활하지 못하고 기혈의 소통이 좋지 않다는 뜻이다. 이는 상대적 개념으로 오장의 균형과 조화가 흐트러진 것을 의미한다. 현재 질병이 있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질병이 생길 수 있는 가능성을 내포한 정도로 판단할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운이 잘 통하지 않고 혈액 순환이 안 돼 다리가 저리다고 해서 당장 다리에 큰 병이 있는 것이 아니듯 말이다. 하지만 이런 증상이 반복되고 오래되면 발목을 자주 삔다거나 족저근막염, 하지정맥류 등의 질환으로 발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건강을 위해서는 어느 한쪽으로 기운이 치우치지 않는 오장육부의 균형, 몸 전체의 조화가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