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경 속 한의약
오순도순 정다운 사람들이 모이는 공간
수선 사랑방한의원

글. 정환정 사진. 손호남

대부분의 공간은 그 목적이 뚜렷하다. 회사에서는 일을 하고, 카페에서는 차를 마시며, 식당에서는 식사를 한다. 그리고 한의원에서는 치료를 한다. 그런데 이 당연한 명제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간 곳이 있다. 경주의 오래된 동네 황오동에 위치한 수선 사랑방한의원이 바로 그곳이다.

고즈넉한 황오동의 분위기를 담다

나지막한 건물들이 고만고만하게 어깨를 기대고 있는 황오동은 옛 경주역과 멀지 않은 고즈넉한 동네다. 쌀과 연탄, 부식 등을 판매하는 정다운 가게들이 여전히 문을 열고 손님을 맞이하고 있다. 이런 고색창연한 공간에 하얗게 빛나는 2층 건물이 유독 눈에 띈다. 건물에는 水善(수선) 사랑방한의원이라는 글자가 단정하게 새겨져 있다.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는 의미의 상선약수(上善若水)에서 따온 말입니다. 사랑방한의원은 말 그대로 동네 사랑방과 같은 역할을 하는 한의원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지은 이름이고요.”
서울에서 나고 자라 강원도 원주에서 부원장 생활을 한 이상우 원장이 경북 경주로 삶의 거처를 옮긴 것은 10년 전이다. 여행으로 만난 황오동이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곳에 자리를 잡았다. 수선 사랑방한의원은 바로 이런 동네 분위기를 고스란히 함축하고 있는 공간이다.

진료 공간을 가득 채운 수많은 책

문을 열고 들어서면 단정하게 정돈된 접수처와 마주하게 된다. 접수처를 중심으로 실내를 한 바퀴 돌아봤을 때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것은 다름 아닌 책이다. 물론 대기하는 환자를 위해 책을 진열해 두는 한의원이 없지 않지만, 수선 사랑방한의원의 책장은 조금 남다르다. 깨끗하게 관리된 책마다 ‘열람용’이라는 표식이 붙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재미있는 것은 이상우 원장이 처음 이 진료 공간에 책을 갖고 온 목적이 판매를 위해서였다는 점. 미니멀 라이프를 추구하기 위해 갖고 있던 책들을 권당 1,000원씩 판매하다 보니 어느 틈엔가 한의원이 중고 서점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곳을 찾는 환자들이 저마다 아끼는 책을 기탁하기 시작한 것. 아예 중고 책방을 열까 고민했을 정도다.
실제로 이상우 원장은 서점 사업자로 등록하기도 했다며 웃는다. 하지만 현재 수선 사랑방한의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책들은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치유를 위해 진열돼 있다. 반면 수많은 책들과 달리 이 공간에서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한의원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침대다.
저는 손과 발에만 침을 놓다 보니 침대가 필요 없어서 의자만 준비해 두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 좋은 자세로 앉아 계시게 되는 거죠. 그래서 내원하시는 분들이 침을 맞는 동안 읽으면 좋을 책들을 추천해드리기도 합니다. 침을 맞는 동안 마음이 편해지는 책을 읽으면 치료 효과가 더 좋아지니까요.”

공존을 통한 치유, 독서를 통한 마음 처방

『마음병에는 책을 지어드려요』라는 책을 쓰기도 한 이상우 원장의 바람대로 이곳을 찾는 환자들은 저마다 원하는 책을 읽으며 몸과 마음을 편히 다스리는 데에 익숙해졌다. 덕분에 수선 사랑방한의원은 비슷한 질환을 가지고 있는 이들끼리 정보를 나누거나 안부를 물으며 일상을 공유하는 공간으로도 기능하고 있다. 이상우 원장이 바라던 가장 이상적인 사랑방의 모습으로 자리매김한 셈이다.
“비록 아파서 찾는 곳이지만 통증과 질환을 잊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책에 집중하는 순간, 또 일상을 공유하는 잠깐 동안이라도 스스로 환자라는 사실을 잊을 수 있도록요.”
이곳에서는 지금도 속 깊은 이웃들이 도란도란 일상의 치유를 공유하고 있다.

# 수선 사랑방한의원 해시태그 #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 : 가정집처럼 개방적이고 밝은 인테리어로 내원 환자의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는 곳. 그 이름처럼 누구나 쉽게 드나들 수 있는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기에 몸뿐 아니라 마음의 치유도 기대할 수 있다.

#다양한 연령층이 찾는 곳 : 한의원은 여성 중장년층이 많이 찾는 곳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수선 사랑방한의원은 20~30대와 중년 이상의 남성 환자도 많이 찾는다. 환자 층이 어느 한쪽으로 쏠리지 않은 덕분에 보통의 한의원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마니아가 많은 한의원 : 내원 환자가 조금이라도 더 편안하고 즐거운 마음을 갖길 바라는 이상우 원장의 마음 씀씀이는 진열해 놓은 책을 통해서도 엿볼 수 있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이런 그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초진보다 재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이유가 여기 있다. 덕분에 진료나 다른 환자에 방해가 되는 방문객이 없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치유가 있는 경주 힐링 스폿

첨성대_ 경주를 상징하는 장소와 유물은 여럿이지만, 첨성대만큼 접근성과 상징성 모두 부합하는 공간도 찾기 힘들다. 푸른 하늘 아래서도, 어둑한 땅거미 가운데서도 유독 하얗게 빛나기에 경주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으로 더 없이 훌륭한 곳이다.

계림_ 한 숲에서 문득 닭이 우는 소리가 들려 탈해왕이 신하를 보내 확인해 보니 조그만 금빛 궤짝 안에 사내아이가 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훗날 경주 김씨의 시조가 된 김알지다. 그 후 김알지가 태어난 숲을 계림(鷄林)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인근 유적지를 둘러보다 잠시 쉬어가기에도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동궁과 월지_ 경주의 밤은 낮보다 화려할지도 모르겠다. 수많은 유물이 쏟아져 나온 보고(寶庫)이기도 한 월지는 해가 진 이후 더 많은 관람객이 모여드는 야경 명소다. 특히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해 밤마실이 더욱 즐거워지는 8월 말부터는 ‘달이 뜬 연못’이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을 더 쉽게 유추할 수 있다.

감은사지동서삼층석탑_ 죽은 후에도 용이 되어 동해를 지키겠다 다짐한 문무대왕의 휴식처로 알려진 감은사는 이제 그 절터만 남아 있다. 하지만 절과 함께 쌓아 올린 두 개의 석탑은 동과 서 양쪽에서 여전히 웅장한 모습으로 동해와 경주 시내를 잇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기하학적 조형미가 돋보이는 이 탑은 새벽안개가 주위를 감싸고 있을 때 감상하는 것이 제격이다. 경주의 그 어떤 유적보다 신비로운 감정을 느끼게 된다.

양남 주상절리_ 경주는 다양한 유물뿐 아니라 지질학적 가치도 뛰어난 곳이다. 화산암 지대에서 주로 발견할 수 있는 주상절리를 경주에서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기둥 형태의 주상절리가 아닌 부채꼴 주상절리가 특히 눈길을 끈다. 동해 특유의 힘찬 파도가 검푸른 배경 위에서 하얗게 빛나는 모습은 ‘물멍’의 길로 안내하는 활기찬 안내자 역할을 한다.

✽ 힐링 스폿 사진 제공_경주시 관광자원 영상 이미지(동궁과 월지), 그 외 정환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