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백유상(한국한의약진흥원 기획협력실장, 경희대학교 한의과대학 교수)
우리 술 먹으러 가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서 회포를 풀 때 이렇게 말하곤 한다. 물론 술을 ‘마신다’는 표현도 쓰고 있지만 액체인 술을 왜 먹는다고 하는 것일까. 짐작해보면 매일 먹는 음식과 마찬가지로 늘 곁에 같이 있어서 우리 삶의 한 부분을 차지해 왔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실제로 우리의 술 문화 전통 속에서 만들어진 술은 대부분 가양주(家釀酒)였다. 즉 일반 가정에서 보편적으로 술을 담가서 ‘먹었다’는 말이다. 웬만한 집에서 술을 담갔던 이유를 단지 우리 민족이 원래 술을 좋아해서라고 쉽게 단정해버릴 수는 없다. 기본적으로 술은 곡식을 다시 가공해서 정제한 것으로 고급 음식의 하나로 여겨졌고, 따라서 제사에 사용하거나 어른이나 귀한 손님을 대접하거나, 잔치 등 의미 있는 행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먹거리’의 하나로 준비됐다. 술을 담그는 것을 ‘빚는다’라고 하는 것도 정성과 기술을 쏟아서 만들기 때문이다.
전통이 오랜 명문 집안일수록 제사용 술을 담그는 주조법을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고, 여러 날에 걸쳐서 목욕재계하고 정갈하고 엄숙한 마음으로 제사주를 담가 왔다. 제사에 술을 쓰는 것은 귀한 음식으로 올리는 의미도 있지만, 독특한 술의 풍미 때문에 돌아가신 조상님이나 하늘님과 접신하는 매개물로 여겨져서가 아닐까 한다.
한편 인류 문명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농경 사회로 바뀌면서 하늘에 지내는 제사(천제, 天祭)가 매우 중요해졌다. 철기의 주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안정적이고 높은 생산성을 가진 농업이 발달하게 됐으며, 이전의 유목 생활에 비해 모든 방면에서 사회와 문화가 변화되어 갔다. 농사는 혼자서 지을 수 없으므로 가족이나 집안 단위의 팀나 큰 태풍이 한 번 휩쓸고 지나가면 한 해 농사를 망치게 된다. 농사의 성패는 곧 생존의 문제와 직결되므로 하늘에 제사를 지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많이 알려진 『삼국지·위지』의 내용을 다시 떠올려 보자.
그 나라 백성들은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좋아하여, 나라의 읍락에서는 밤이 되면 남녀가 무리 지어 모여들어 서로 따라서 노래하고 논다. 큰 곡식 창고는 없고 집마다 각각 작은 곡식 창고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부경(桴京)이라 한다. 사람들은 성격이 깨끗하고 맑고 유쾌한데, 집에 술을 빚어 두기를 좋아한다… 10월이 되면 하늘에 제사를 올리는데 나라 안 사람들이 모두 모이니 이것을 동맹(東盟)이라 한다.
(고구려전)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서는 특히 고조선 시대부터 쌀농사가 발달했다. 쌀농사를 위해서는 노동력을 집중적으로 투입해야 하고, 각 시기에 맞춰 관리를 해줘야 하는 고도의 기술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가족이나 집안, 또는 마을 단위로 협력해 농사를 지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대부터 신분이 낮은 노비도 가족을 꾸리는 경우가 있었고, 심지어는 삼국 시대부터 귀족이 아닌 평민도 이름에 성(姓)을 가질 수 있었다. 가족 단위로 경제적, 군사적 활동이 이루어졌던 것이다. 고구려에서 집집마다 작은 곡식 창고를 가지고 있었다는 기록도 어느 정도 경제적 독립성을 부여해 주었음을 말해준다. 아무튼 한 해 동안 힘든 농사를 마무리하고 가을에 수확할 때 햅쌀로 술을 빚어 하늘에 감사의 제사를 올렸으니, 그 결과 우리나라에서는 전통적으로 쌀을 재료로 하는 술 문화가 발달하게 됐다. 또한 집안에서 술을 담가서 하늘에 계신 조상님께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풍습도 보편화됐다.
우리 전통술을 빚을 때 잘 익은 술덧을 가만히 놓아두면 맑은 황금색 윗물이 뜨는데, 이것을 약주라 하고 탁주와 비교하여 청주라고도 한다. 이 약주는 술독에 용수를 박아서 걸러내거나 술주머니에 넣어 짜낸다. 알코올 함량이 15~16도 정도로 제법 독하고, 깨끗하게 보관해 숙성시키면 더욱 귀한 술로 만들어진다. 그런데 특별한 한약재가 들어가지 않은 맑은 술을 약주라 한 것은 약식동원(藥食同源)의 의미처럼 좋은 음식 자체가 약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렇게 정성스럽게 만들어진 가장 맑고 정갈한 약주는 가끔 특별한 의미를 생각하면서 조금씩 약처럼 먹어야 했고 함부로 흥청망청 마셔버릴 수는 없었다. 그런데 좋은 술이 정말 약처럼 효과가 있는 것일까. 기원전에 지어진 한의학의 고전 『황제내경』에서는 다음과 같이 술의 작용을 설명하고 있다.
술은 곡식을 숙성시켜서 나온 액(液)이다. 그 기운이 빠르고 맑으니, 밥을 먹은 뒤에 마셔도 밥이 소화되기도 전에 소변으로 나온다… (영추·영위생회) 술을 마시면 위기(衛氣)가 먼저 피부로 가서 낙맥(絡脈)을 채우니 낙맥이 먼저 성해진다. 그러고 나서 위기가 안정되면 영기(營氣)가 가득 차서 경맥(經脈)이 크게 성해진다… (영추·경맥)
술은 곡식을 이미 정제한 것이므로 소화 흡수가 빠르고, 처음에는 낙맥이 퍼져 있는 피부로 술기운이 가서 얼굴을 불그스름하게 만들고 다시 안으로 경맥을 흥분시켜 맥박을 크게 뛰게 한다는 설명이다. 우리가 보통 밥을 먹고 나서 식곤증을 느끼는 이유는 음식을 소화할 때 많은 에너지가 소모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술은 힘든 소화 과정을 거칠 필요 없이 정제된 상태로 바로 흡수되니 소화력이 약한 사람에게는 훌륭한 ‘음식’이 되는 것이다. 밭에서 힘들게 일하다가 기운 없고 정신도 멍해질 때 농주(農酒)라 불리는 막걸리 한 잔을 들이켜면 눈이 번쩍 뜨이고 입 안에 진액이 돈다. 또한 술은 체표와 몸 안으로 혈액 순환을 활발하게 해주니 손발이 평소에 차고 기운이 없는 사람에게 몸을 따뜻하게 하고 활력이 생기도록 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황제내경』에서는 음주가 가져오는 부정적 측면도 같이 설명하고 있다.
술의 기운과 음식의 기운이 (위장에서) 서로 섞이면 속으로 열이 성해져서 온몸에 열이 나게 되니, 안으로 열이 나면서 소변이 붉어진다… (소문·궐론)
술은… 그 기운이 빠르고 사나운데 위장으로 들어가면 위장이 붓고 기가 거슬러 올라 가슴에 가득 차며 간장과 담도 붓는다. 이렇게 되면 평소에 용기 있는 사람에 비해 기운 없고 위축되어 있던 자가 갑자기 용감한 사람처럼 되어 아무에게나 거리낌 없이 마구 행동하니, 이를 술주정(주패, 酒悖)이라 한다… (영추·논용)
지금 사람들은 건강하게 살지 않고 술을 음료처럼 마신다… (소문·상고천진론)
술을 지나치게 마시면 몸 안에 열이 쌓여서 온갖 병을 만들고 성질이 사나워져서 남에게 행패를 부리게 된다고 하니, 몸과 마음을 모두 상하게 하는 부작용을 지적하고 있다. 특히 술을 음료처럼 마신다는 것은 반복적인 음주가 습관이 된 것을 의미하며, 이는 술을 지나치게 권하는 사회 문화적 요인, 개인적으로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고 하는 심리적 기제 등과 관련이 있다.
외국인이 우리나라를 방문했을 때 처음에는 사람들이 술을 많이 마시는 것에 놀라고, 회식이 잦고 늦은 시간까지 이어지는 것에 다시 놀란다. 고조선 시대부터 제천 의식을 할 때 밤까지 음주 가무를 즐겼던 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구성원의 단결력을 고조시키는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많은 사람이 모이는 잔치에서 같이 흥겹게 놀면 서로 동질감을 느끼고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도 커지게 된다. 또한 평소에 해결하기 어려웠던 고민도 모두 잊어버리고 심기일전해 새 출발을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회식과 음주가 잦아지면 긍정적 측면은 사라지고 습관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의존성(중독 현상)이 생긴다. 『황제내경』에서 술을 마시면 위기(衛氣)가 먼저 움직인다고 했는데, 이때 위기는 우리의 정신 활동과 관련이 깊다. 처음에는 정신을 각성시켜 흥분하게 만들다가 정점에 도달하고 나면 몸과 마음을 마비시킨다. 이러한 사이클은 마약류의 그것과 유사하다. 알코올 의존성에 대한 정확한 메커니즘은 계속 연구가 진행 중이지만 사회적, 심리적 상태를 개선하는 종합적 치유가 필요하다.
결론적으로 술이 약의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잘 빚은 술’을 여럿이 함께하는 의미 있는 날에 적당한 양으로 마시거나, 평소 소화력이 약하고 양기가 떨어지는 사람이 가끔씩 반주로 먹는 것이 좋다. 이 글에서 다루려는 주제는 잘 빚은 술, 특히 우리나라 고유의 전통주와 관련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전통주의 방대한 내용을 모두 말할 수는 없고, 그 가운데 질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며 우리 몸을 근본적으로 건강하게 만드는 특별한 효능을 가진 술을 소개하려고 한다. 이러한 술을 본 글에서는 일반적으로 맑고 정제된 전통술을 지칭하는 ‘약주’와 혼동하지 않도록 ‘약술’이라 표현하겠다.
『삼국사기·고구려본기』를 보면, 신무대왕 11년에 후한의 요동 태수가 쳐들어와서 성을 포위했는데 왕이 좌보 을두지의 말에 따라 잉어와 지주(旨酒)를 태수에게 보내 성 안에 물이 충분함을 보여주어, 결국 한나라 군대가 포위를 풀고 물러났다는 기록이 있다. 여기서 지주는 고급 술(美酒)로 약주를 가리킨다. 일본의 『고사기』에는 백제로부터 주조의 장인인 인번(仁番)이 건너와 천황에게 술을 만들어 올렸다는 기록이 있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송나라 사신 서긍(徐兢)이 그림과 글로 고려의 문화와 풍습을 기록한 『고려도경』에서 우리나라 술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다. 주로 멥쌀로 술을 만들며 색은 깊고 맛이 강해 쉽게 취하지만 빨리 깬다고 했다. 또한 임금이 왕실에서 마시는 술은 양온(良醞)이라 하여 맑은 법주이며, 서민들이 집에서 마시는 술은 맛이 강하지 않으면서 색은 짙다고 서로 비교했다. 대체로 신분이 높은 사람은 약주를, 일반 평민은 탁주, 즉 막걸리를 즐겼음을 알 수 있다. 탁주는 약주를 뜨고 남은 술덧에 물을 붓고 섞은 후 체에 밭쳐 대충 걸러낸 술이다. 또 다른 우리나라의 대표적 전통주인 소주는 고려 말기에 몽골의 영향을 받아 증류주 제조법이 유입되면서 전국적으로 빠르게 확산해 유행하기 시작했다.
기본 재료와 만드는 방식의 틀이 같더라도 밑술을 담그는 쌀의 처리 방법이나 부재료로 들어가는 과실, 약재, 기타 식물류 등의 차이, 증류 여부 등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술이 만들어졌다. 고려로부터 조선에 이어지는 대표적 전통주로는 춘주(春酒)와 법주(法酒), 삼해주(三亥酒), 이화주(梨花酒), 부의주(浮蟻酒) 등을 들 수 있다. 춘주는 고급 약주의 총칭으로 주로 풍미를 높이기 위해 세 번 담그는 삼양주(三釀酒)이며, 법주는 그 가운데 제사 등 특별한 의례에 사용하는 술이다. 삼해주는 정월 첫 해일(亥日)부터 술을 빚기 시작해 돌아오는 두 번째, 세 번째 해일에 덧술을 한 술로 저온에서 오랜 기간 숙성시켜 청주로 만들었으며, 조선 후기에는 증류하는 소주의 원료로 쓰이기도 했다. 이화주는 대표적 탁주로 일반 막걸리와는 달리 이화국(梨花麴)이라는 쌀누룩을 쓰며 물을 사용하지 않아 요구르트같이 걸쭉하게 만들어진다. 부의주는 청주의 하나로 술덧이 가라앉으면서 위로 밥알이나 거품이 개미처럼 떠오르는 것을 같이 취해 이름이 붙여진 술이며, 보통 위로 동동 뜬다고 하여 동동주라 한다. 그 밖에 증류주로는 고려 말기 몽골군 주둔지에서 주조하기 시작한 안동소주가 대표적이며, 조선 시대로 넘어오면서 지방별로 다양한 형태의 증류주가 개발됐다.
앞으로 본 글에서 우선 소개하고자 하는 약술은 앞에서 설명한 우리나라 전통주 가운데 약효를 가진 부재료를 일부 첨가한 것 그리고 처음부터 한약재를 재료로 하여 만들어진 것 등이다. 이 약술들은 주로 『산가요록』, 『수운잡방』, 『음식디미방』, 『규합총서』, 『주찬』 등 조선 시대 주요 조리서에 수록된 것으로, 그 주조법의 특징과 효능을 설명하고자 한다. 추가로 『동의보감』에 기재된 약술도 덧붙여 소개하려는데, 원래 의서에 나오는 약술은 그 기원이 치료를 주목적으로 하고 있어 민간에서 즐겨 애용하던 술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하지만 『동의보감』은 우리나라의 실정에 맞는 의학 지식을 잘 선별한 책이므로 한국인에게 적합한 약술의 내용을 일부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선 다음 편에서는 이화주 등 전통적으로 민간에서 유행하던 술의 효능을 소개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