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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끝에서 내딛는 배움의 첫발
한반도의 한가운데, 사방으로 뻗은 철도와 도로가 만나는 교통의 요지 대전. 그 대전에서도 조금 더 동쪽, 점차 폭이 좁아지는 도로를 따라 계속 가면 도시의 풍경은 서서히 옅어지고 산자락의 기운이 짙어진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건물들을 지나 굽이진 언덕을 몇 번 넘으면 금세 대전의 동쪽 끝 경계에 닿게 된다. 바로 그곳에 대전대학교가 자리하고 있다.
대전대학교의 설립자인 고(故) 지산(志山) 임달규(林達圭) 선생은 한의사로, 1957년 동양의약전문학교(현 경희대학교) 한의과를 졸업해 1980년 대전대학을 설립하였다. 설립자 개인사를 잠깐 들여다보아도 알 수 있듯이, 대전대 한의과대학은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학교 서문의 가파른 언덕을 오르면 수백 명의 학생들이 매일 수업을 듣는 한의학관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있는 이 건물에서 예과 1학년부터 본과 3학년 1학기까지, 4년 반 동안 한의학도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겉으로 보기에 그리 커 보이지 않는 학관이지만, 그 안에는 각 학년별 대형 강의실뿐 아니라 변화하는 국가고시 기조에 따라 새로 마련된 CBT(컴퓨터 기반 시험)실부터 기초과학 분야를 연구하는 각종 실험실과 특수한 장비를 필요로 하는 각 과목 실습실 그리고 국가고시를 앞둔 본과 4학년 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까지 한의대 학생들이 필요로 하는 모든 시설을 갖추고 있다.
각 학년별 대형 강의실에는 고유한 이름이 하나씩 붙여져 있다. 요즘의 한의대 학생들이 이 이름으로 각 강의실을 부르는 일은 많지 않지만, 가끔은 강의실 입구에 걸린 팻말에 쓰인 그 이름과 뜻을 찬찬히 살펴보는 것도 흥미로운 일이다. 예과 2학년의 강의실은 ‘지상에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 용’이라는 뜻을 담은 ‘현룡실(見龍室)’로 불린다.
강의실 팻말
한의학관책상에서 병원으로, 지식이 경험이 되는 시간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은 대전, 서울, 천안에 3개의 부속 한방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본과 3학년 2학기부터 시작되는 임상실습은 미리 계획된 과별 교육과정에 따라 3개의 한방병원을 순회하며 진행된다. 본과 3학년 2학기와 4학년 1학기에는 대전병원에서, 4학년 1학기 말부터는 천안과 서울병원에서 실습한다. 이 세 병원 중 가장 규모가 큰 곳은 둔산동에 위치한 대전한방병원으로, 한방내과, 한방소아과, 한방부인과 등 12개 과가 운영되고 있다. 필자 또한 이번 학기부터 이곳에서 실습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1주일에 한 개 과씩, 한 학기인 12주에 모든 과의 진료 과정을 참관하며 지난 4년간 배웠던 책 속의 지식을 실제 임상 경험으로 다져가고 있다.
아직은 한의사가 아닌 학생이기에, 실습은 교수님이나 수련의 선생님의 뒤를 쫓으며 진료 과정을 참관하거나 일부 보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외래와 병동을 따라다니며 환자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교과서 속에 정리되어 있던 병명과 증상이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과 연결된 현실이라는 사실을 체감하게 된다. ‘요통’이라 적힌 같은 차트라도, 누구에게는 몇 년간 이어진 생계의 고민이자, 또 다른 누구에게는 육아와 돌봄의 부담으로 인한 고통이라는 점을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러한 임상실습 과정을 통해, 책으로만 배운 병리와 진단 기준을 실제 환자의 얼굴과 목소리에 겹쳐 보며, 앞으로 한의사가 되었을 때 어떤 시선과 태도로 환자를 대해야 할지 스스로 질문하고 다듬어 가고 있다.
대전한방병원 전경
실습 학생들이 강의를 듣는 둔산캠퍼스공부와 사람을 함께 잇는 동아리 스터디
학교 수업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교과서와 강의가 탄탄한 토대를 마련해 준다면, 그 위를 더 넓고 깊게 쌓아 올리는 작업은 결국 학생들 스스로의 몫이다.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의 학술동아리 활동은 바로 이런 지적 갈증에서 출발한다. 관심 있는 주제를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모여 스터디를 꾸리고, 임상에서 자주 마주치는 질환이나 최신 논문, 고의서 강독 등 학교 수업에서 다 미처 다루지 못한 부분을 함께 파고든다.
이 과정에서 선배들은 강사가 되고, 후배들은 수강생이 된다. 선배들은 자신이 공부하며 정리한 내용을 바탕으로 교안과 발표를 준비하면서 배운 지식을 다시 구조화하고 자기 언어로 재해석해 내재화한다. 후배들은 편한 분위기에서 마음껏 질문하며 강의실에서는 미처 묻지 못했던 궁금증을 하나씩 해소해 간다. 이렇게 전해진 배움은 몇 년 뒤, 지금의 후배들이 다시 누군가의 ‘선배’가 되었을 때 또 다른 형태의 가르침으로 되돌아간다. 학술동아리의 스터디는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자리를 넘어, 선배에서 후배로 이어지는 내리사랑이 숨 쉬는 곳이다.
학기 중 바쁜 일정을 피해 주로 방학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학술동아리 스터디는 배움에 목마른 학생들에게 단비 같은 시간이다. 동시에, 함께 머리를 맞대고 책을 읽고, 토론하고, 밤늦도록 발표를 준비하는 과정은 선후배 간 거리를 자연스럽게 좁혀 준다. 학술동아리는 그래서 공부하는 자리이자 사람을 잇는 자리다.
학술동아리 수업 사진서로 다른 길, 하나의 한의학
다양한 배경과 꿈을 가진 학생들이 대전대학교 한의과대학에 모여 있다. 일반적인 길인 한의원 개원이나 병원 임상의로서의 진로를 준비하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전문의 과정을 통해 특정 분야에 특화된 수련의를 목표로 하는 이들도 있다. 임상 근거를 쌓고자 연구실과 대학원을 오가며 연구자의 길을 준비하는 학생, 한의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보건의료행정이나 정책과 교육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학생, 혹은 디지털 헬스케어나 콘텐츠 제작 등과 같은 새로운 영역에서 한의학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학생들도 있다.
모두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지향점은 다르지 않다. 각자가 선 자리를 달리하더라도, 한의학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이해하고 더 나은 삶을 돕는 학문이라는 믿음을 바탕으로,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위치에서 그 가치를 확장시키고자 한다는 점에서 모두 같은 문장을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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