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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 평야에서 시작된 꿈,
환자를 향한 길 위로 이어져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예과 2학년 유기선

호남은 오래전부터 우리나라의 곡창지대로 불려왔다. 그중에서도 삼례(參禮)는 이름만큼 조용해 보이지만 알고 보면 전북 곡창의 중심이자 일제강점기 군산항으로 식량을 실어 나르던 교통과 유통의 거점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의 진원지이기도 한 이 땅은 지금은 소박한 도농복합도시의 느낌을 풍긴다. 서울에서 내려온 내게 이 지역의 첫인상은 음식이었다. 대학 입학보다 더 빨리 기억에 남은 건, 반찬 하나하나까지 신경 써서 차린 밥상과 맛의 강렬함이었다. 말로만 듣던 호남의 손맛이 이렇게 맞닿는구나 싶었다.

우석대학교 근처의 논과 밭

그렇다면 이곳에서 배우는 한의학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솔직히 말하면, 삼례 출신 명의라는 말은 아직 들은 적이 없다. 하지만 예과 1학년 시절, 의학사 자료를 찾다가 조선 최고의 침의(鍼醫) 허임이 임진왜란 시기 바로 이 삼례에서 광해군에게 침을 놓았다는 기록을 발견했을 때, 나도 모르게 오! 하고 감탄했다.

물론 여전히 외지인인 내겐 이 동네가 잘 와닿지 않기도 한다. 그래도 익숙지 않다는 건 때로 신선함의 다른 말이기도 하다. 우석대학교는 전북 지역을 대표하는 종합 사립대학이고, 전국에서도 몇 안 되는 한의과대학이 설치된 대학 중 하나다.

가끔 같은 전북에 있는 다른 한의대와 혼동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마다 전주, 삼례! 하고 외치게 된다. 설명이 귀찮을 때도 있지만, 우리는 안다. 우리만의 캠퍼스, 병원, 교육 클러스터가 그 자체로 우석대 한의대만의 뚜렷한 정체성임을.

솔직히 나도 여기 올 줄 몰랐지…

동기들과 이런 얘기를 나누다 보면, 십중팔구 비슷한 대답이 돌아온다. 우석대라는 이름을 알게 된 계기를 물으면, 다들 말한다.

아 형, 그거 몰라? 그 본과 23층 건물! 고속도로 타고 가다 보면 딱 그거 하나 보여!

맞다. 전북 평야 한가운데 솟은 그 건물, 진짜 삼례의 명물이다.

전주캠퍼스, 전북 평야 위에서 기초를 다지다

우석대학교 전주캠퍼스의 상징, 본관

우석대학교 전주캠퍼스의 상징은 단연 23층 규모의 본관 건물이다. 이는 국내 대학 본관 중 가장 높은 층수로, 심지어 북한의 김일성종합대학(21층)이나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22층)보다도 한 층 더 높다. 이 건물은 도서관, 강당, 박물관, 행정부서, 교수 연구실 등 대학의 모든 기능이 집약된 지적 타워라 할 수 있다. 호남고속도로에서 멀리서도 눈에 띄는 덕분에, 전주를 오가는 많은 이들이 이 건물을 통해 우석대를 기억하게 된다.

우석대 전주캠퍼스는 호남고속도로를 기준으로 1지구와 2지구로 나뉜다. 1지구에는 대학 본부를 비롯한 각 단과대학이 위치해 있으며, 한의과대학도 바로 1지구에 있다. 2지구에는 생활관과 타 학과 건물이 자리한다. 캠퍼스는 전북 평야 한가운데 자리해 지형이 평탄하고 이동이 편리하다. 산기슭이나 도심 언덕에 위치한 대학과 비교해 보면, 학생들에게는 꽤 실질적인 장점으로 작용한다.

캠퍼스가 워낙 넓어서 이곳을 걷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 저녁 무렵이면 지역 주민들과 학생들이 삼삼오오 유산소 운동을 즐긴다. 이걸 보며 "우리도 몸과 마음을 같이 챙기자!"는 취지로 동기들에게 러닝 크루를 제안한 적이 여러 번 있었지만, 결국은 맥주집에 앉아 각자의 소회를 푸는 시간으로 끝나곤 했다. 뭐, 즐거웠으니 그것도 추억 아닌가.

동기들과 함께하는 생일 파티

한의예과 학생들은 이 캠퍼스에서 1·2학년을 보내며 해부학, 생리학, 본초학, 생명과학 등 기초 한의학을 포함한 의생명과학 전반을 학습하게 된다. 생활은 주로 기숙사 또는 인근 원룸에서 이루어지며, 점심은 학생식당, 간단한 분식집, 프랜차이즈 음식점에서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도서관과 본관, 강의동을 오가는 일상이 반복되지만, 이 안에서 학생들은 한의사가 되기 위한 초석을 착실히 쌓아간다.

우석대 앞 식당들의 천편일률적인 메뉴에 질릴 즈음이면 누구랄 것 없이 다들 운전면허를 따고 차를 몰기 시작한다. 나 역시 차를 일찍 샀고, 경차 한 대에 여섯 명이 우겨 타는 위법적(?) 방식으로 맛집 탐방을 다닌 기억도 있다. 요즘은 차 있는 동기들이 많아져서 그런 일은 없지만, 문득 그 시절의 위태롭고 유쾌했던 일탈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삼례(전주)캠퍼스가 가장 아름다운 계절은 단연 봄, 그중에서도 벚꽃이 만개한 시기다. 지역 매체나 블로거들이 전북의 벚꽃 명소로 우석대를 자주 언급하는 건, 매년 경험적으로 증명된다.

신입생 단체사진을 벚꽃을 배경으로 찍는 것도 일종의 전통처럼 자리 잡았고, 우리 학번도 어김없이 찍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진 속 벚꽃만 환하게 나왔고, 정작 사람들 얼굴은 하나같이 모두 어둡게 나왔더랬다. 물론, 기록은 남기는 데 의의가 있는 거라 생각하지만… 많은 이들이 그 사진을 차마 공유하진 못하겠다고 부끄러워하니 그 장면은 독자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

벚꽃이 흐드러지는 캠퍼스 풍경

그 시절 벚꽃이 흐드러지던 캠퍼스 풍경을 아버지께 사진으로 전해드렸더니, 한참 후 옛날 노래 하나를 보내오셨다. 무려 1953년에 나온 백설희의 〈봄날이 간다〉. 가사는 젊은 봄과는 또 다른 결을 가진, 묘한 감성을 전해줬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맞다. 봄은 단순히 젊고 들뜬 계절이 아니라, 꽃이 지는 순간의 쓸쓸함까지도 품고 있다. 30대에 접어든 내게 두 번째 대학생활에서 맞는 이 벚꽃은, 어쩐지 더 애틋하고 살짝은 쓸쓸하다.

혹시 봄철 우석대 캠퍼스를 방문하신다면, 조금 색다른 방식으로 벚꽃을 즐겨보시길 권한다. 바로 퀵보드를 타고 벚꽃길을 천천히 달려보는 것. 물론 선루프 있는 차를 가진 분에겐 감흥이 덜할 수도 있겠지만, 온몸으로 봄바람을 맞으며 달리는 오픈형 퀵보드 위의 벚꽃은 생각보다 깊이 있게 다가온다. 그렇게 한 바퀴를 돌며, 문득 수업 시간 교수님이 말씀하신 생장수장생(生)이 무엇인지를 몸으로 체감한 적도 있다. 한의학적 관점에서도, 퀵보드 벚꽃 구경은 꽤 괜찮은 체험이라 자부한다.

대학 생활의 꽃, 동아리 활동

우석대 한의대에는 다양한 과 동아리가 있다. 그중 공연 중심의 두 동아리는 학과 소속이 아닌, 오래된 전통을 자랑하는 학교 중앙동아리다. 바로, 필자가 회장을 맡고 있는 풍물 동아리 과 밴드 동아리 울림이다. 이 두 동아리의 부원들은 동아리 연습실이 있는 삼례캠퍼스에서 유독 자주 보인다. 학기 중은 물론, 방학에도 시간을 내어 연습하고 준비한다.

풍물동아리 연습 모습

그 결실은 매년 1학기 한의과대학 총MT 및 본과진입식에서의 공연으로 이어진다. 이 본과진입식은 우석대만의 문화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진지하고 상징적인 의식을 담고 있다. 본과 진입 소감과 포부를 직접 PT로 발표하고, 진정한 한의사로 거듭나겠다는 다짐으로 허준 선서를 낭독한다.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각자의 의미를 새겨넣는 순간이다.

그렇다면, 그런 의미 있는 자리에서 축하 공연이 빠질 리 없다. 1년간 갈고닦은 실력을 동아리 부원들이 무대 위에서 마음껏 뽐내며 분위기를 한껏 끌어올린다. 풍물 공연은 일반 공연과 달리, 학우들이 원을 이뤄 둘러싼 중심에서 펼쳐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건, 공연 중간 학우들이 서로 손을 맞잡고 풍물 장단에 맞춰 강강술래를 돌았던 장면이다. 물아일체란 이런 것일까? 그 장면은 나에게도 오랫동안 잊히지 않는 깊은 여운으로 남아 있다.

공연 중 강강술래 모습

풍물 공연의 또 다른 특색은 막걸리다. 공연자들은 십수 병의 막걸리를 준비해 관객들과 나눠 마시고, 본인들도 가볍게 기분을 돋우며 공연에 임한다. 나 역시 공연 직전, 긴장을 풀 요량으로 막걸리를 제법 마셨는데… 공연 도중엔 여기가 MT인지 무대인지 헷갈릴 정도로 몽롱한(?) 몰입감이 들었던 기억이 있다. 어쩌면 내가 느낀 그 감동에는 숙취적 요소도 조금 섞여 있었을지 모르겠다.

저녁 식사 후에는 레크리에이션과 함께, 밴드 울림의 공연이 이어진다. 학우들이 일제히 휴대폰 라이트를 켜고 리듬에 맞춰 흔들어주는 장면은, 웬만한 소극장 콘서트 못지않다. 무대 위에 오른 친구가, 평소와는 다른 진지한 표정으로 악기를 다루고 노래하는 모습을 보면 괜히 휴대폰으로 몰래 찍어 박제(?)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핸드폰을 흔들고, 친구 사진을 찍다 보면 어느새 무대보다 관객석이 더 바빠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게 바로 MT 공연의 묘미다. 주최자, 참가자, 관객이라는 구분 없이 모두가 함께 만들어가는 이 무대야말로, 진정한 대동단결의 장이라고 할 수 있다.

실습과 임상의 중심, 전주 중화산캠퍼스

본과에 진입하게 되면 학생들은 전주시 중화산동에 위치한 우석대학교 한의학관으로 생활의 터전을 옮긴다. 이곳은 우석대학교 부속한방병원과 나란히 자리한 소규모 전용 캠퍼스로, 실질적인 임상 교육과 실습의 중심지다.

중화산캠퍼스는 본과생들을 위한 맞춤형 교육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동은 주로 학생들이 강의를 듣고 자율학습을 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나동에는 교수 연구실, 실습실, 행정실이 위치해 있다.

가장 큰 특징은 병원과 캠퍼스 간의 물리적 거리의 최소화, 내지 일체화이다. 강의실에서 실습복을 입고 몇 걸음만 나가면 부속한방병원 진료 현장에 도착할 수 있어, 이론과 임상을 자연스럽게 오가는 학습이 가능하다. 부인과, 소아과, 재활의학과, 피부미용센터 등 다양한 진료과에서의 실습 기회도 제공된다.

중화산캠퍼스 주변은 다른 대학가처럼 북적이는 번화가는 아니다. 말 그대로 아파트와 주택이 밀집된 생활권 중심지다. 일상적인 생활에는 불편함이 거의 없지만, 확실히 캠퍼스 감성이라는 정서적 풍경은 여기선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삼례에 있을 땐 삼례를 벗어나고 싶다가도, 막상 중화산동에 오면 그 캠퍼스가 그리워진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것도 결국, 인생이 주는 작고 익숙한 역설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논문과 연구, 학부생부터 시작하는 전문성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 강의실 모습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은 학부생의 연구 역량 강화에도 집중하고 있다. 교수진은 학생들이 학부 과정 중에 KCI급, SCI급 논문을 발표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지도를 아끼지 않으며, 실제로 매년 5~10편 이상의 논문이 학생-교수 공동 저자로 학술지에 등재되고 있다.

학생들은 논문 발표 외에도, 매년 열리는 한의과대학 최대 학술 행사인 진의제를 통해 자신의 연구 결과를 전교생 앞에서 발표하게 된다. 이 자리에서는 교수님들의 피드백도 직접 들을 수 있어, 실전 연구 발표 능력을 키우는 좋은 기회가 된다. 일부 학생은 이를 계기로 대학원 진학이나 해외 한의학 교류 프로그램을 준비하기도 한다. 단순히 치료법을 배우는 것을 넘어, 한의학이라는 학문의 미래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자라나는 것이다.

한의사를 향한 꿈, 두 공간에서 이어지다

완주 삼례의 전주캠퍼스에서 기초를 다지고, 중화산캠퍼스에서 실습과 진료를 경험하며 성장하는 6년의 여정. 환경은 다르지만, 학생들의 목표는 하나다. 바로 따뜻한 마음과 전문성을 갖춘 의술인이 되는 것.

우석대학교 한의과대학의 두 공간은 학생들의 시기별 학습과 생활에 맞춰 최적의 환경을 제공하며, 한의사의 길을 걷는 이들의 성장을 조용히 응원하고 있다. 23층 본관 아래에서 시작된 첫 발걸음은, 오늘도 환자를 향한 길 위에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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