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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한의약초고령사회의 필수 ‘노인 방문 돌봄’
김나희 / 민들레한의원 원장
지난해 한 국회의원은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자료를 근거로 한의원의 방문 진료 의사는 958명, 방문 건수는 12만 3천 건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한의약 방문 진료는 일반 의원보다 3년 늦게 시작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높은 수치다. 초고령사회 진입에 따라 가장 큰 문제로 떠오른 것이 바로 ‘노인 돌봄’이다. 지역민들의 건강한 내일을 위해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는 민들레한의원의 김나희 원장을 만났다.
환자의 존엄한 삶을 위해 방문 진료에 참여
봄을 시샘하는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월 말, 김나희 원장을 만나기 위해 대전을 찾았다. 김나희 원장이 근무하는 민들레한의원은 25년 동안 대전 지역 사회에서 의료와 돌봄을 실천해 온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부속 의원이다. 한의원 외에도 치과, 일반 의원, 주간보호센터, 건강검진센터, 지역사회의료센터 등 다양한 기관을 운영하며 정부의 방문 진료 사업이 시작되기 오래전부터 방문 진료를 해온 곳이다.
점심시간, 불이 꺼진 한의원에 들어서자 조심스레 인사하며 나오는 김나희 원장. 김 원장은 한국한의약진흥원에서 선물해 준 왕진 가방이 편의성이 좋다고 설명하며 방문 진료를 나갈 채비를 마쳤다. 민들레한의원에 등록된 한의재택의료센터 대상자는 30명이며, 재택의료센터 등록자가 아닌 단순 한의방문 대상자는 21명이다. 김 원장은 노인 환자뿐만 아니라 장애인 환자도 돌보고 있다. 가장 어린 환자는 23세라고 했다.
"오전 진료가 있는 수요일과 토요일을 제외한 시간대에는 방문 진료를 다니고 있습니다. 한의원 인근인 법동, 중리동은 물론 다소 거리가 있는 신탄진, 봉명동까지도 찾아갑니다. 가까운 거리는 걸어서 다니고, 먼 곳은 버스나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죠. 이렇게라도 기후 위기 탄소 저감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김 원장은 대전기후정의모임, 새만금신공항백지화공동행동 등에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지역 사회의 건강과 환경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그에게 방문 진료를 시작하게 된 계기를 묻자, 장애여성네트워크인 ‘마실 ’에서의 일화를 이야기했다.
"2022년, 마실의 회원 중 한 분이 투병 중 돌아가시면서, 자신과 같은 장애 여성들의 건강 증진을 위해 약 300만 원의 유산을 남기셨어요. 마실에서는 그 유산을 한의 치료에 사용하기로 했고, 생애전환기를 맞은 완경 여성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성 한의사를 찾다가 저에게 연락이 왔죠. 당시에는 제가 방문진료 시범사업 선정 한의원에 소속되지 않아, ‘방문 진료 수가 ’가 없어 따로 치료비용을 받지는 않고 마실에서 준 300만 원은 한약 원가로만 사용했어요. 자원 활동이었던 셈이지만 오히려 배우고 얻은 것이 더 많았어요."
김 원장은 방문 진료를 시작하기 전, ‘돌봄이 필요한 상태에서 존엄은 어떻게 유지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을 갖고 있었지만, 방문 진료를 경험한 후 그 질문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장애 여성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갱년기나 노화 증상 등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건강 문제에 대해 장애인들과 환자들이 더 많은 지혜를 가지고 있으며, 어떤 태도로 임해야 하는지에 대해 이분들이 더 잘 알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분들을 도우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이분들의 지혜를 경청하기 위해 방문한다고 느꼈다. 그 후, ‘인간의 존엄이 유지되기 위해 어떤 돌봄이 서로 제공되어야 하는가? ’라는 새로운 질문을 가지게 되었고, 자신이 방문 진료를 통해 얻은 깨달음을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다.

방문 진료로 생활 지원과 주거 환경 개선까지
김 원장을 따라 나온 지 5분도 채 되지 않아 도착한 첫 번째 환자의 집은 한의원 맞은편에 위치한 임대 아파트였다. 김 원장은 임대 아파트에는 대부분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소외계층이 거주하고 있으며, 방문 진료 대상자들 상당수가 이곳에 살고 있다고 전했다. 첫 번째 환자는 96세의 최고령 환자다. 김 원장은 문을 두드린 후 익숙한 듯 문을 열고 들어간다. 환자의 옆에 앉은 김 원장은 지난 방문 진료에서 처방한 평위산와 자음강화탕의 남은 양을 확인한 후, 다음 방문 진료까지 환자가 복용할 수 있도록 재처방했다.
"어르신께서는 2023년부터 지금까지 총 100회 정도 방문 진료를 받으셨는데요, 처음에는 장염과 탈수로 병원에 입원하셨다가 퇴원 후 섬망이 있고 기면(droway, 계속 졸음이 와 질문과 자극에 대한 반응 속도가 느리고 불완전한 상태) 상태였습니다. 다행히 점점 체력을 회복하시고 한의 치료를 받으시면서 건강도 회복되셨어요. 현재는 노화로 인한 어깨, 무릎, 고관절 통증을 호소하시는데, 그때마다 아픈 부위에 침을 놓아드리고 있습니다."
김 원장은 침을 놓기 위해 가방에서 진료 도구를 꺼내면서도 집에 가득 쌓인 간식은 누가 주었는지, 교회는 잘 다녀왔는지, 최근에 운동은 언제 했는지 등 환자와 미주알고주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음 환자의 집으로 향하면서 김 원장은 취약계층의 아슬아슬한 안전망에 대해 이야기했다.
"방문 진료 환자 중 친구들과 함께 복지관에서 무료 점심을 먹고, 그 후 천천히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하루의 큰 일과인 분이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분이 무료 점심 대상자에서 제외되면서 식사와 사회생활, 운동이 멈추었고, 하루하루 건강이 악화하기 시작했어요. 복지관에 가서 상의해 보니, 대기 중인 점심 대상자 중에는 결식노인이 많아 제 환자가 점심을 드시면 대신 굶게 되는 분이 있다는 답변을 받았어요. 이런 상황에서 제 환자분 점심을 계속 요구할 수도 없었는데요, 결국 그분은 급식 중단 후 3주 만에 사망하셨습니다. 그때 의료는 정말 작은 부분에 불과하다는 한계를 절실히 느꼈습니다."
이후 김 원장은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등 열악한 환경에 놓인 지역 주민들을 위해 건강 개선뿐만 아니라, 복지 제도를 찾아보고 알려주는 등 생활환경 개선에도 힘쓰고 있다. 한 환자가 "원장님을 만나려고 이때까지 살아 있었나 봐요."라고 말하는 걸 들었을 때,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고 한다.
건강 사각지대에 놓인 환자의 삶 전반을 살피다
다음 환자의 집을 찾았지만, 일 체험 학생들이 봉사활동을 하고 있어서 이후에 방문하기로 했다. 김 원장은 마지막 환자의 집으로 향했다.
마지막 환자의 집은 중리동에 있는 주택으로, 도보로 30분, 버스로는 20분 정도 걸리는 거리였다. 이번 환자도 독거노인으로, 가까운 가족을 잃은 슬픔에 오랫동안 힘들어하다가 최근에서야 조금씩 기력을 되찾게 되었다고 한다. 김 원장은 담담하게 환자의 이야기를 하지만, 그의 말투와 표정에서는 환자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고 걱정했던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다.
"어머니, 오늘 혈압이 조금 높네요. 몸이 좀 불편하신가요? 잠은 잘 주무셨어요?"
"계속 머리가 띵한 게, 혈압이 높을 것 같더라. 푹 자야 하는데 자꾸 끊어 자서 그런가 봐."
혹시 자신이 파악하지 못한 다른 문제가 있을까 걱정이 된 김 원장은 최근 신경 쓰이는 일은 없는지, 식사는 잘 챙겨 먹고 있는지 환자에게 질문을 쏟아낸다. 김 원장의 진심을 느낀 환자는 차츰 마음을 열고 두런두런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신체적인 아픔보다도 외로움이 더 견디기 힘든 법. 이야기꽃을 피우는 동안 환자와 김 원장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졌다.

어깨 통증을 호소하는 환자의 어깨에 침을 놓은 후, 김 원장은 어깨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직접 알려주었다. 항상 방문 진료를 마칠 때면 환자가 자주 하는 동작을 유심히 살펴보고, 그로 인해 뭉친 근육을 풀어주는 스트레칭을 알려준다고.

"방문 진료는 단순히 질병을 치료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의 삶으로 직접 들어가 그들의 생활 전반을 살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환자가 처한 환경을 직접 볼 수 있어서 진료실에서는 알 수 없는 중요한 정보를 파악할 수 있죠. 그래서 방문 진료가 없는 날에도 환자들이 스스로 건강을 챙길 수 있도록 꼭 필요한 건강 관리법을 알려드리려고 합니다. 지난해에는 건강 사각지대에 놓인 소상공인을 케어하는 신협의 ‘어부바 건강주치의 ’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습니다. 새벽부터 나와 종일 장사하고, 밤늦게야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며 소상공인분들이 정말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절실히 느꼈어요. 하지만 그만큼 만성 피로와 통증을 겪는 분들이 많았죠. 특히 음식점에서 일하는 분들은 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에서 장시간 머무르는 경우가 많았어요. 한의 치료 후 생활 개선 방법을 안내해 드리니, 많은 분이 무척 반가워하고 고마워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방문 진료의 영역이 확대되길 바라며
진료를 마친 후 방문 진료가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김 원장은 "저는 방문 진료가 제 체질인 것 같아요. 진료실에 있으면 답답하고 기운이 가라앉아요. 오히려 밖에 다니며 다양한 환자분들을 만나 치료해 드리는 게 더 즐겁습니다."라며 미소를 지었다.
김 원장은 아무 연고도 없는 대전으로 이사 온 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에 찾아가 "방문 진료를 하고 싶으니 뽑아 달라"고 무작정 요청했던 과거를 떠올렸다. 방문 진료를 향한 김 원장의 열정과 애정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방문 진료의 영역이 더 확장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 민들레에 들어왔을 때, 제가 평소 애정을 품고 있던 모유 수유와 산모, 신생아 돌봄 분야에서 방문 진료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었죠. 그러나 저출산과 고령화 문제로 대상자가 너무 적어 산모를 위한 방문 진료는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또 한의약 분야에서도 장애인 주치의 사업이 하루빨리 이루어지길 바랍니다. 누구나 살던 집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고 싶은 바람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이런 바람을 실현하려면 방문 진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