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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약인(人)원외탕전 산업의 안정화에 힘쓰다
서영석 / 대한원외탕전협회 회장
요즘은 한약 냄새가 나는 한의원이 거의 없다. 첨단 시스템으로 한약을 위탁 조제해 주는 원외탕전실 덕분이다. 대한원외탕전협회는 원외탕전실 산업의 안정적인 정착과 한의약 산업의 발전을 위해 힘쓰고 있다. 대한원외탕전협회의 서영석 회장을 만나 협회의 역할과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들어보았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대한원외탕전협회 회장 서영석입니다. 어릴 적 과학자가 되고자 했던 꿈을 가지고 서울대학교 물리학과에 입학했지만, 1980년대의 격동적인 시대 배경으로 인해 취업에 어려움을 겪어 학원 강사로 10년 동안 일했어요. 그러던 중 30대 중반에 새로운 진로를 고민하게 되었죠. 예전부터 인체를 다루는 학문을 공부하고 싶었는데요, 한의약이 인간에 대한 통찰을 깊이 있게 다루는 학문임을 깨닫고 한의대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한의대를 졸업한 후에는 20여 년 동안 임상 한의사로 활동했었는데요, 그간 쌓은 임상 경험을 토대로 임상 한의사들의 목소리를 더 잘 반영하고자 한약재 제조 및 유통 기업인 CY의 대표 이사직을 맡으며 원외탕전 산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대한원외탕전협회에 대한 간단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대한원외탕전협회는 원외탕전실의 발전과 한의약 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2022년에 설립되었습니다. 현재 협회에 등록된 회원사는 38개로, 협회는 회원들이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다양한 교육, 컨설팅, 정보 제공 등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외탕전실의 기술적, 법적, 경영적 문제를 해결하며, 한의약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와 홍보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대한원외탕전협회의 설립 계기가 궁금합니다.
우선 원외탕전실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 드리면, 원외탕전실은 한의사나 의료기관에서 내린 처방에 따라 한약을 조제하고 납품하는 시설입니다. 원외탕전실이 생기기 이전에는 한의사들 사이에서 조제하기 어려운 환제나 고제와 같은 한약을 서로 대신 조제해 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2008년 보건복지부에서 탕전실 운영 지침을 발표하면서 ‘원외탕전’이라는 개념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이후 2010년부터 원외탕전 기업들이 등장하기 시작했지만, 이와 관련된 정보나 시스템이 부족하여 여러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원외탕전실이 의료기관의 조제 위탁을 받아 한약을 조제하는 방식이기 때문에, 여러 기관에 위탁을 받아 공동으로 조제하는 과정에서 안전성과 책임성을 보장하는 체계가 필요했습니다. 이에 따라 2018년 보건복지부는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를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원외탕전 기업 간의 협조와 소통 체계가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공식적인 소통 창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던 차에 2022년 복지부 주관 인증 원외탕전실 CEO포럼에서 설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습니다.


원외탕전 산업의 안정적인 정착을 위해 대한원외탕전협회에서는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나요?
협회가 설립된 지 얼마 되지 않아 해결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그중 가장 시급한 것은 원외탕전실에 대한 법률적 근거를 마련하는 일입니다. 법률은 법, 시행령, 시행 규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원외탕전실 운영 지침은 법적인 효력을 가진 규정이 아닌 단순한 지침에 불과합니다. 현재 대부분의 원외탕전실은 한방 의료기관의 부속 시설로만 규정되어 있어, 설립에 관한 명확한 법적 근거가 부족한 상태입니다. 만약 중앙부처에서 이 지침을 철회하게 되면, 사업체의 설립 근거가 사라지게 되는 위험에 처하게 됩니다. 이런 문제는 개별 사업자가 해결할 수 있는 범위가 아니므로, 협회 차원에서 한의약 육성법에 원외탕전실 설립에 관한 근거 조항을 포함한 개정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제도적 근거의 미비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현재 원외탕전실의 규정 중에는 애매한 부분이 많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명칭 문제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외탕전실은 한방 의료기관의 부속 시설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에, 해당 의료기관의 이름을 사용해야 합니다. 공동 이용 계약을 맺은 한의원의 한약을 위탁 조제할 경우, 조제자 정보가 다른 이름으로 기재되는 일이 발생하게 되어 환자들이 혼란을 겪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명칭에 대한 개선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또한 한방 의료기관의 부속 시설은 1종 근린생활 시설에만 설치할 수 있다는 제한이 있습니다. 그러나 원외탕전실이 산업화되면서 큰 규모의 제조 시설과 창고가 필요하고, 폐수 처리나 전력 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이로 인해 공장과 같은 부지에 원외탕전실을 설치하는 데 있어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있습니다.


원외탕전실에서 한약을 조제하는 과정에서도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제약사에서는 조제 행위를 ‘제조’라고 표현하는데, '제조'는 단일 품목을 대량으로 생산하는 과정입니다. 반면 ‘조제’는 특정 환자를 위한 맞춤형 처방에 따라 한약을 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약사법에 따르면 의사는 진료와 처방만 할 수 있으며, 실제 조제 행위는 약사가 할 수 있습니다. 반면 한의사는 약사법의 예외로, 자신이 진료한 환자의 약을 직접 조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원외탕전실에서 조제할 경우, 반드시 한의사의 처방전으로 한약사가 한약을 조제해야 하므로, 원외탕전실에는 한약사가 필수 인력으로 고용됩니다.
그런데 한약사의 조제 행위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탕약을 조제하는 과정은 처방전에 맞춰 한약재를 선별하고 계량하며, 약탕기에 달이고, 포장과 배송까지 모두 포함되는데, 이 모든 과정이 한약사의 조제 행위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습니다. 핵심적인 조제 행위를 제외한 나머지 과정은 기계적인 단순 노무에 불과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 범위가 명확히 규정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하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기술 발전으로 인해 조제 행위가 자동화되고 있으며, 이러한 스마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도입하고, 이에 따른 한약사의 역할을 명확히 규정한다면 한의약 산업이 빠르게 발전할 수 있다고 봅니다.
협회에서 해결해야 할 마지막 문제로 공정 위·수탁을 꼽으셨어요.
현재 원외탕전실은 전국에 100여 곳이 운영되고 있지만, 각 원외탕전실의 시설 가동률을 확인해 보면 30%에도 미치지 않습니다. 100% 가동은 어려운 상황이지만, 한약품의 종류가 매우 다양하여 기계와 설비는 모두 갖추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각 회사가 개별적으로 조제 설비를 갖추고 있어 중복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로 인해 비효율성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반면에 영세한 규모의 원외탕전실은 설비 구축의 부담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정 위·수탁 시스템이 필요합니다. 특정 공정을 다른 원외탕전실에 위탁하면 시설 가동률을 높일 수 있으며, 설비 투자에 대한 재정적 부담도 줄어듭니다. 무엇보다 환자들에게 유리한 점은, 중복 투자가 감소하면 생산 단가가 낮아져 약을 더 저렴하게 제공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의 평가 기준은 무엇인가요?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는 크게 일반 한약 조제와 약침 조제로 나뉩니다. 일반 한약 조제는 84개의 항목을, 약침 조제는 168개의 항목을 평가합니다. 약침 조제의 평가 항목이 더 많은 이유는 약침이 신체 내부에 직접 약물을 주입하는 침습적 치료법이기 때문입니다.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큰 의료사고로 이어질 수 있으므로 멸균 시설과 무균 공정을 필수적으로 갖추는 등 엄격한 기준 아래 관리하고 있습니다.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가 처음 도입되었을 때, 주관기관은 보건복지부, 실행기관은 한국한의약진흥원이었습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은 주로 의약품 GMP 시설을 모델로 삼아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의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제도를 시행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이 발견되어 2021년에 개편되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협회가 설립되기 전이라 실제 운영자들의 의견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했습니다. 의약품 GMP 시설을 모델로 하다 보니 기준이 실무와 맞지 않거나, 다른 법과 충돌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올해 3월부터 3주기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 개편을 위해 전담팀이 구성되는데요, 이번 개편에는 저희 협회도 함께 참여하여, 실제 운영자들의 목소리를 반영하고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고자 합니다.
지난해부터 한국한의약진흥원과 협업하여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1:1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는데요, 해당 사업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한국한의약진흥원에서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제도를 처음으로 진행하면서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1:1 맞춤형 컨설팅’을 진행했었어요. 그러나 실무적인 부분에서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컨설팅을 받는 분들은 벽을 세우는 것부터 배수관의 위치나 크기 등 현실적인 고민을 많이 제기하셨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2023년부터 저희 협회가 ‘원외탕전실 평가인증 1:1 맞춤형 컨설팅’에 참여하여, 실무자들과 협력하여 건물 도면, 동선 등의 실무적인 부분과 서류 작성 방식 등 사무적인 부분도 꼼꼼하게 안내해 드리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원외탕전실과 비슷한 사례가 있나요?
원외탕전실은 한국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제도입니다. 중국과 일본도 한의약과 같은 뿌리를 갖는 전통의학이 있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이래 한의사 제도를 폐지했지만 양의사들이 여전히 한약을 많이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경우 대부분 쯔므라, 크라시에 등 대형 제약사가 제조한 한약제제 형태입니다.
중국에서는 한국의 원외탕전실에 자주 견학을 왔었는데요, 일본에서 사용하는 한약제제와 달리 한국에서는 원외탕전실을 통해 한의약의 근본인 ‘환자의 체질과 병증에 맞는 맞춤형 의학’이 실현되고 있어, 중국에서도 원외탕전실을 도입하게 되었습니다. 중국의 헌법에는 전통의학을 발전시킬 의무가 명시되어 있으며 중의사의 권한에 대한 규제가 없고, 중의학의 발전을 위해 많은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원 덕분에 발전 속도가 매우 빨라요. 큰 규모의 원외탕전실에 자동화 시스템이 도입된 것은 물론, 중의학을 이용하는 환자들도 많아 하루 조제 건수가 5천 건을 넘는 원외탕전실이 다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중국의 발전 양상은 현재 우리가 처한 규제와 관련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것으로 생각해 올해 협회 차원에서 중국의 원외탕전실을 방문할 예정입니다.
협회의 회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순간이 있다면요?
원외탕전실은 홍보와 재정적인 측면에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일부 한의사 중에서는 큰 규모의 원외탕전실을 보고 의료인이 아닌 사람들이 의료 시장의 핵심 자원을 갖고 간다고 오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원외탕전실은 한방 의료기관의 부속 시설로, 한의사만 설립하고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는 한의사가 진료에 집중할 수 있도록 조제 처방에 관한 문제들을 해결해 주는 파트너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일반인들은 아직 원외탕전실에 대해 잘 모르고 있습니다. 원외탕전실에 대한 신뢰도와 인지도를 높이기 위해, 협회 측에서도 홍보 활동을 강화하고자 합니다.
저희 협회는 회원 수가 많지 않아 운영에 있어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규모가 큰 회원사들이 많은 도움을 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또한, 어려운 상황에 부닥쳤을 때는 메신저의 단체 채팅방을 통해 회원사들과 의견을 교환하며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협회를 통해 서로 소통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한의약 및 원외탕전 산업 종사자,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한마디.
한의약을 과거의 의학이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지만, 저는 한의약이 미래의 의학이라고 믿습니다. 의학의 트렌드는 개인 맞춤형 의학으로 변화하고 있고, 한의약 또한 그런 특성이 있죠. 그래서 우리는 미래 의학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긍정적인 마음과 자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한의사뿐만 아니라 한의 산업에 종사하는 모든 분이 함께 긍지를 가지고 열심히 해나가자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