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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록 한의약경종의 죽음, 상한 게장 때문이었을까?
글쓴이: 한동하 / 한의사
조선 20대 왕 경종의 죽음은 오랫동안 역사학자들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병사(病死)였다는 설부터 과도한 인삼 처방, 심지어는 음식궁합을 이용한 독살이라는 주장까지 제기되었다. 과연 경종의 사망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조선왕조실록: 경종실록> 편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경종 4년 1724년 음력 8월 20일부터 4일간의 기록이다.
「밤에 임금이 가슴과 배가 조이듯이 아파서 의관을 불러 입진하도록 하고 약방제조가 합문 밖에 나아가 문안을 하였다(8월 20일). 약방에서 입진하고 여러 의원들이 임금에게 어제 게장을 진어하고 이어서 생감을 진어한 것은 의가(醫家)에서 매우 꺼려하는 것이라 하여 두시탕(豆豉湯) 및 곽향정기산(藿香正氣散)을 진어하도록 청하였다(8월 21일). 임금의 복통과 설사가 더욱 심하여 약방에서 입진하고 황금탕(黃芩湯)을 지어 올렸다(8월 22일). 임금의 설사 징후가 그치지 않아 혼미하고 피곤함이 특별히 심해 약방에서 입진하여 탕약을 정지하고 잇따라 인삼속미음을 올렸다(8월 23일).」
사건의 발단은 음력 8월 19일 저녁에 먹은 게장과 감 때문이었다. 경종은 대비전에서 올린 게장과 감을 함께 먹고 나서 밤새 복통과 설사에 시달렸다. 나중에는 정신이 혼미해지기까지 했다.
일부에서는 경종의 죽음이 게장과 함께 먹은 감 때문이라고 말한다. 게와 감은 음식궁합이 맞지 않다는 것이다. 당시 의관들도 의서의 내용을 들어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본초강목>에는 ‘대개의 경우 감과 게를 함께 먹으면 사람에게 복통을 일으키고 설사를 하게 한다. 이 두 가지는 모두 기운이 차갑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게를 먹고 난 후 홍시를 먹으면 토혈을 하면서 인사불성이 되었다는 사례를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일부 사례에 불과하며 경종의 죽음을 설명하기에는 과도한 추측이라고 볼 수 있다.
게장을 먹고 감을 먹더라도 심각한 위장장애를 유발하지는 않는다. 대비전에서 게장과 감을 왜 함께 올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게장과 감을 함께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죽을 수는 없다. 따라서 ‘음식궁합으로 독살을 했다’라는 당시 소론의 주장은 일종의 모함일 뿐이다.
사실 경종은 당해 음력 7월부터 식욕부진과 오한발열이 있었다. 학질(瘧疾, 말라리아)에 걸린 것이다. 약방에서는 감염병에 사용하는 성질이 냉한 약들을 처방하였는데 이로 인해 설사 증세가 생겼다. 설상가상 게장과 감을 먹고 배탈이 심해졌다. 그러나 단순 배탈이라기보다는 상한 게장에 의한 식중독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기록을 보면 초가을이기는 하지만 게장을 먹기에는 계절적으로 너무 이른 편이었다. 게장은 쉽게 상하기 때문에 옛날에도 찬바람이 불어야 게장을 만들어 먹었다. <승정원일기> 영조 9년 1733년 음력 8월 9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승정원일기> 영조 9년 1733년 음력 8월 9일 기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나온다. 「서명균이 아뢰기를 “송이버섯, 은구어(銀口魚), 게장이 요즘 새로 나오는 음식입니다.”라고 하니, 상이 이르기를 “게장은 이르다.”라고 하자, 윤순이 아뢰기를 “서리가 내리기 전에는 게에 독이 있다고 하지만 관계는 없습니다.”라고 하였다.」 라는 내용이다. 옛날에는 보통 게장은 서리가 내리면 담가 먹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게장이 쉽게 상한다는 것은 의서에도 나온다. <본초강목>에는 ‘무릇 게는 날 것을 삶든지 염장을 하든지 조(糟; 술 지게미)에 저장하든지 술에 담그든지 장즙(醬汁)에 담그든지 모두 맛이 좋다. 다만 오래된 것은 상하기 쉽다’라고 했다. 과거 게를 먹고 배탈이 잦았던 것은 분명하다.
게장은 상해도 맛이나 향취에는 전혀 변화가 없지만 대장균, 바실러스균, 장염비브리오균, 황색포도상구균, 노로바이러스 등에 의한 식중독을 유발할 수 있다. 가벼운 경우는 하루 정도 복통과 설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진정되기도 하지만 영유아나 고령자, 병환자 등의 경우는 치명적일 수 있다. 심각한 탈수로 인해서 저혈압성 쇼크로 사망에 이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의약에서는 식중독을 곽란(霍亂)이라고 했다. <동의보감>에 보면 ‘곽란이란 병의 근본은 음식을 절제하지 않아 날 것이나 찬 것을 지나치게 먹어서 속에 습열(濕熱)이 심해져 중초(中焦, 소화기)가 운행하지 못하고 제대로 승강(升降)하지 못하기 때문에 위로 토하고 아래로 설사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당시 의관들도 두시탕, 곽향정기산, 황금탕 등을 처방한 것을 보면 곽란(식중독)으로 진단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곽향정기산은 곽란을 치료하는 대표적인 처방으로 요즘도 식중독이나 급·만성 장염에 다용하는 처방이다. 인삼속미음(人蔘粟米飮)도 그렇다. 속미(粟米)는 좁쌀(조)을 말하는 것으로 삭힌 죽을 먹으면 갓난아이나 노인들의 장염 설사에 특효였다. 그러나 일부 의관들과 연잉군(훗날 영조)의 입김으로 인삼과 부자 투약에 집중하게 된다.
경종은 안타깝게도 음력 8월 25일 환취정에서 승하하고 만다. 게장을 먹고 난 후 6일째 되는 날이다. 혹자는 과도한 인삼의 투여가 경종 죽음의 원인이라고 말하지만, 인삼은 부작용이 있을지언정 죽음에 이를 정도는 아니다.
경종은 학질로 인해서 건강 상태가 안 좋은 상태였다. 따라서 이미 몸의 면역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상한 게장과 감이 더해지면서 상태는 더욱 나빠졌을 것이다. 지속적인 설사로 인한 탈수로 전해질이 불균형해지면서 쇼크가 왔을 것이다. 식중독에 걸리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탈수를 예방하기 위해서 물(소금+설탕)이나 이온음료 등을 충분하게 섭취해야 한다. 이 또한 구토하여 흡수를 하지 못하고 설사를 한다면 현대적인 수액요법이 절실하다. 당시에 수분공급은 구강을 통해서만 가능했기에 회복시키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경종의 죽음은 한의약 치료의 중요성과 함께 당시 식중독에 대한 의학적 이해가 부족했던 시대적 한계를 보여준다.
식중독으로 인한 사망은 오늘날에도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 장염이나 식중독에 걸리면 장이 스스로 독성 물질을 배출하려고 설사를 유발하는데, 이때 지사제를 무작정 사용하는 것은 피해야 한다. 충분한 수분 보충과 함께 장내 독성 물질을 배출하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만약 당시 내의원에서 간장이나 소금으로 간을 한 속미음만을 계속 먹이면서 곽향정기산 등을 꾸준하게 처방했으면 어땠을까? 의관들은 인삼과 부자를 먹여서 기운을 북돋을 것이 아니라 상한 게장을 먹고 나타난 식중독 치료에 집중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그의 운명이 달라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한의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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